<안녕하세요, 쿠르베氏>를 사유하는 몇 가지 꼭지점

김종길 | 미술평론가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없는 저 강물에 지도받고 있다고



알 수 없이 모호한 그러나 명확한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본다면!

<안녕하세요, 쿠르베氏>를 본 뒤 나는, 미술평론가의 예리하고 냉철한 혹은 따듯한 비평적 시선을 접고, 알 수 없이 모호한 그러나 명확한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것은 오랫동안 작가/작품을 연구하고 전시기획을 수행해 온 나의 큐레이터로서의 내력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문득 떠 오른 ‘하나의 질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장도 개념도 철학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은 기획자가 전시제목으로 건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쿠르베씨! 인지, 어이 쿠르베씨 오랜만이오! 인지, 어쩐 일이오, 쿠르베씨! 인지…. 나는 혼자서 쿠르베씨, 쿠르베씨, 쿠르베씨 하며 전시장을 돌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2007년 프랑스 남부도시 몽펠리에의 어느 미술관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던 쿠르베를 떠 올렸다. 최소한 쿠르베에 대한 나의 관념적 지식들은 그 자리에서 그와의 만남을 호의적으로 만들고 있었으나, 막상 미술사 서적이 아닌 실물로서의 그는 말라비틀어진 빈 가죽과 다를바 없었다. 하여, 나는 물었다.


Only don't know : 오직 모를 뿐

Who are you? : 너는 누구냐?

- 숭산(崇山) 대선사의 설법에서


그런데 그 물음이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의 공간을 배회하는 동안 다시 떠올랐다. 물론 나는 영민하게도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정현씨의 기획辯을 꼼꼼히 탐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탐독예습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낱낱은 해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완고하게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듯 자꾸만 자신의 내재적 공간으로 달아나 버리는 의미들을 쫓아서 겨우 찾아낸 의미들은 다음과 같았다.


파시즘을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역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군중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오히려 암적인 몸체인 것이다. (…)

욕망은 왜 스스로 억압되기를 바라는가, 욕망은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바랄 수 있는가? 이처럼 포괄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미시 파시즘밖에는 없다. 확실히 군중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군중들은 일종의 마조히스트적인 히스테리에 빠져 억압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군중들은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 기만당하는 것도 아니다. 욕망이란 필연적으로 여러 분자적 층위들을 지나가는 복합적인 배치물들과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이미 자세, 태도, 지각, 예감, 기호계 등을 형성하고 있는 미시-구성체들과도 분리될 수 없다. 욕망은 결코 미분화된 충동적 에너지가 아니라 정교한 몽타주에서, 고도의 상호 작용을 수반하는 엔지니어링에서 결과되는 것이다.

-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천개의 고원-자본주의와 분열증2』409쪽에서


이 참조점에서 발견되는 의미소들은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와 어떠한 상관성도 없어 보인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지독하게는 지식인의 관습을 들통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습적인 행태가, 그러니까 나의 시니컬하면서 멜랑콜리한 생각의 꼭지점은 두 작가의 작업/작품이 자본주의적 분열증을 형성하는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군중들/시민들의 한 단면으로 몰고 간단 점이다. 왜일까?

동아시아의 근대국가 형성과 자본주의의 결합은 두 가지 면에서 ‘그야말로’ 좆 됐다. 첫째, 마을공동체와 같은 수천 년 공감의 연대를 파괴시켰다는 점. 근대국가로의 이행에서 가장 두드러진 긍정은 인간의 계급구조를 와해시켰다는 점일 게다. 그러나 근대성이니 합리적 이성이니 따위의 서구적 근대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구조를 경쟁으로 몰아갔고 그래서 거의 모든 인류는 ‘위험사회’에 직면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공감의 유전자를 압도했다. 그 안에서 우정이라는 말, 환대라는 말은 파멸과 종말의 끝에서 허우적대는 찢겨진 깃발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근대이후 쉼 없이 아팠다.

둘째, 자본주의 파시즘의 확산으로 결국 ‘자본독재’에 종속되었다는 점. 정치적 파시즘이 붕괴된 자리에 자본주의 파시즘이 널리 유포 되었다. 파시즘이 전체주의적 유기체를 지향하듯 자본주의 또한 자본독재에 의한 강력한 유기체적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자본에 의한 계급구조를 형성하며, 사회유기체론을 완성하려 든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본주의, 심지어 자유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최근의 시민의식은 그래서 매우 계급적이다.

그런데 두 작가의 작업/작품은 20세기 동아시아의 그런 문제의식으로 파고든다. 그 공간은 미시적 공간들이며, 그래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혹은 어지러운 것을 어지럽다고, 또한 살고 싶다고 외치고 두들기고 날아다니는 ‘말’들의 뼈가 보인다. 들린다.


아픈 몸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골목을 돌아서

베레帽는 썼지만

또 골목을 돌아서

신이 찢어지고

온 몸에서 피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흐르는데

또 골목을 돌아서

추위에 온 몸이

돌같이 감각을 잃어도

또 골목을 돌아서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 김수영,「아픈몸이」의 부분, 1962.5.30


철학적 혹은 개념적 전경들

근대이전이나 근대이후에도, 철학은 늘 인식의 편차뿐만 아니라 문화적 편차에서 소용이 갈렸다. 철학 내부의 내재적 가치, 이념, 정신의 순환과 변혁이 보편성을 확장하더라도 절대적 객관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별자들이 사유할 때 근원적으로 발생하는 ‘순환-差’ 혹은 ‘변혁-差’로서의 차이(差異) 때문이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는 그런 차이를 부정했으나 들뢰즈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르”로 규정함으로서 탈근대적 사유를 확장시키지 않았던가. 차이는 지속적이나 자기 동일성이 없는 사건이다. 이데아와 현실 사이에서 쉼 없이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에 의해 철학은 분열 증식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플라톤은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 비유하면서 관료, 시민, 노예, 검투사의 계급적 분할을 정당화 했다. 콩트는 플라톤의 그런 유기체주의적 신체론을 사회유기체론으로 이론화했다. 들뢰즈는 그런 사회유기체론이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통박하면서, 유기체주의는 분리차별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에 관계되는 슬픔이나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들뢰즈의 통찰은 슬프다. 그러나 그것이 첨예한 현실의 거짓 없는 표피이고 진실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유기체적인 못한 사회에 살고 있고, 각 사회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의 사화관계에서의 슬픔 기쁨 욕망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삶에 처해 있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국가 및 사회를 이주 이산 유랑 유목 회귀하는 사람들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단 얘기다. 그들은 사회유기체론을 거부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자율적 삶 혹은 아나키스트적 태도를 갖지만 ‘분리차별’의 나날에 처한다. 그들은 늘 전체가 아닌 부분이길 원하나 ‘이익’이 무화된 배신과 배제, 질타, 무시, 소외의 꼭지점에 내 몰린다. 전체와 부분의 아름다운 관계항은 그들 사이에 흔적조차 없다. 그러니 우정과 환대의 역사는 성취된 바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20세기의 결핍이자 방치이다.


그것은 사소한 물음이거나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전에서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의 개념을 전용하고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가 그린 <안녕하세요, 쿠르베>의 ‘만남’을 통해 예술가와 메세나의 위상이 전복될 것이란 ‘근대적 징후’, ‘개별자로서의 예술가’의 가능성 또한 안개 속일 터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인식의 편차-문화적 편차’ 때문일 수도 있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가 더 강고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전시의 기획자가 예술가를 ‘문화자본의 도구로서의 예술가’로 명명했을 때 그런 편차는 수평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사실 예술가를 인식하는 프랑스와 한국의 편차는 수직적이지 않은가.

기획개념과 이주영, 육킹탄 두 작가의 작업개념이 어떻게 교집합을 이루는지는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들의 현실인식과 창작동기, 그리고 창작과정 및 결과의 작품들은 여전히 사회유기체에 속박되었거나 강요당하고 또는 소속되기를 원하는 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그런 삶이 작품의 언어로 편집되어 전시장에 들어와 소통하는 방식은 흥미롭게도 그런 유기체적 사회를 비집고 들어가는, 무언가 좀 먹는, 그래서 ‘소속’이 아닌 ‘유목’, ‘이산’, ‘이주’의 떠돎을 클로즈업하는 것이다. 왜냐고? 속박하고 강요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소속될 수 없는 어떤 삶의 유영지를 떠돌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렀다고 가는 이들,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들, 그 뒤의 흔적들-소리, 그림자. 그러나 작품 속의 인물, 사건, 상황과 창작 주체로서의 예술가의 상황이 어떻게 혼합되고 분리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어쨌든 예술가와 예술적 대상 간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 우정과 환대의 ‘공감’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적자생존이나 무차별적 경쟁을 요구했던 20세기의 다윈주의, 계급적 자본주의로서 사회유기체론의 대안은 차이를 긍정하고 공감하는 ‘수평적 연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나는 사소한 물음들에 답한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전문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6.10~187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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