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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박물관 기증 작품에 부치는 글


1987년의 한국현실을 직조할 때 가장 먼저 새겨야 하는 것은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자행된 박종철 고문치사일 것이다. 이 사건은 변혁의 불씨를 온 들녘으로 확산시킨 기폭제이자 민주주의의 깃발을 주검으로 들어 올린 신호탄이었다. 그만큼 그의 죽음은 우리를 당혹케 하고 피폐한 절망의 바이러스를 유포시켰다. 그러나 그런 슬픔의 밑바닥에서 발견한 것은 더 깊은 허무가 아니었다. 모리스 블랑쇼가 근대성이 쌓아 올렸던 거대한 이념의 잿더미에서 이성을 내려놓고 존재의 바깥으로 향한 것처럼, 예술가들은 그 스스로를 추방하여 예술의 바깥에 머물고, 바로 거기, 바깥에 선 타자를 재사유하여 세계변혁의 미학을 응결하기 시작했다.


1979년 비판적 현실주의에 기반 한 반모던, 탈매체, 탈제도, 탈권위적 작품으로 민중미술의 새 장을 연 <현실과 발언>의 동인이었던 김정헌은, 권인숙과 박종철로 상징되는 국가권력의 반인권적 패륜에서 민주주의의 붕괴를 목도한다. 그리하여 그는 예술의 바깥으로 가 정치독재, 관념독재, 자본독재의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의 미학’을 길어 올린다. 1987년 2월 개최된 <반고문전>에 출품된 <인권삼존불>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 자신의 고백처럼 이 작품은 ‘삼존불’과 멕시코 혁명 화가였던 다비드 시케이로스의 벽화의 한 장면을 혼용한 것이지만, 역사적 현실이라는 리얼리티에 의해 이 작품은 생동하는 불의 미학으로 상승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미륵이라는 삼존불의 원형에서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듯하다. 활활 타는 저 불은 다비의 불꽃이면서 동시에 폴 엘뤼아르가 노래했듯이 ‘동지가 되기 위한 불’,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비판적 현실주의로부터 개념적 현실주의로 전유한 일군의 작가들에서 김상돈은 가장 눈에 띄는 작가다. 그는 근대적 공간 구축에 총력전을 펼쳤던 20세기 한국사회의 이면을 자주 기웃거린다. 그런, 천연덕스러운 그의 태도는 그가 발견한 이미지들의 기표에서 자주 ‘황홀한’ 미의식으로 전환된다. 실상 그 황홀경이란 것은 현실 유토피아나 멋진 신세계를 지향했던 그 사회와 그 사회의 주체들이 만들어낸 기이하고 낯선 키치적 풍경들이다. 이번 기증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작품들은 수십 년간 동두천에 주둔했던 미군들과 상관한다. 딱히, 그야말로 ‘멋진’ 추억이랄 것도 없는 주둔지의 기억이 총과 칼, 휘장의 기념품으로 변환된 그것들. 김상돈은 그 오브제들이 발산하는 알고리즘의 파편들에서 미군의 평화인상이 아닌 전쟁과 폭력의 아우라를 몽타주하고 있음이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space99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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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쿠르베氏>를 사유하는 몇 가지 꼭지점

김종길 | 미술평론가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없는 저 강물에 지도받고 있다고



알 수 없이 모호한 그러나 명확한 하나의 질문을 던져 본다면!

<안녕하세요, 쿠르베氏>를 본 뒤 나는, 미술평론가의 예리하고 냉철한 혹은 따듯한 비평적 시선을 접고, 알 수 없이 모호한 그러나 명확한 하나의 질문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것은 오랫동안 작가/작품을 연구하고 전시기획을 수행해 온 나의 큐레이터로서의 내력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듯하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문득 떠 오른 ‘하나의 질문’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문장도 개념도 철학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은 기획자가 전시제목으로 건 “안녕하세요, 쿠르베씨”였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나요? 쿠르베씨! 인지, 어이 쿠르베씨 오랜만이오! 인지, 어쩐 일이오, 쿠르베씨! 인지…. 나는 혼자서 쿠르베씨, 쿠르베씨, 쿠르베씨 하며 전시장을 돌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2007년 프랑스 남부도시 몽펠리에의 어느 미술관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던 쿠르베를 떠 올렸다. 최소한 쿠르베에 대한 나의 관념적 지식들은 그 자리에서 그와의 만남을 호의적으로 만들고 있었으나, 막상 미술사 서적이 아닌 실물로서의 그는 말라비틀어진 빈 가죽과 다를바 없었다. 하여, 나는 물었다.


Only don't know : 오직 모를 뿐

Who are you? : 너는 누구냐?

- 숭산(崇山) 대선사의 설법에서


그런데 그 물음이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의 공간을 배회하는 동안 다시 떠올랐다. 물론 나는 영민하게도 기획자이자 평론가인 정현씨의 기획辯을 꼼꼼히 탐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탐독예습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낱낱은 해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완고하게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숨바꼭질하듯 자꾸만 자신의 내재적 공간으로 달아나 버리는 의미들을 쫓아서 겨우 찾아낸 의미들은 다음과 같았다.


파시즘을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역량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군중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즉 그것은 전체주의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오히려 암적인 몸체인 것이다. (…)

욕망은 왜 스스로 억압되기를 바라는가, 욕망은 어떻게 자신의 억압을 바랄 수 있는가? 이처럼 포괄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미시 파시즘밖에는 없다. 확실히 군중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군중들은 일종의 마조히스트적인 히스테리에 빠져 억압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나아가 군중들은 이데올로기적 속임수에 기만당하는 것도 아니다. 욕망이란 필연적으로 여러 분자적 층위들을 지나가는 복합적인 배치물들과 절대 분리될 수 없으며, 이미 자세, 태도, 지각, 예감, 기호계 등을 형성하고 있는 미시-구성체들과도 분리될 수 없다. 욕망은 결코 미분화된 충동적 에너지가 아니라 정교한 몽타주에서, 고도의 상호 작용을 수반하는 엔지니어링에서 결과되는 것이다.

-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 옮김,『천개의 고원-자본주의와 분열증2』409쪽에서


이 참조점에서 발견되는 의미소들은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와 어떠한 상관성도 없어 보인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지독하게는 지식인의 관습을 들통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관습적인 행태가, 그러니까 나의 시니컬하면서 멜랑콜리한 생각의 꼭지점은 두 작가의 작업/작품이 자본주의적 분열증을 형성하는 ‘분자적이거나 미시정치적인’ 군중들/시민들의 한 단면으로 몰고 간단 점이다. 왜일까?

동아시아의 근대국가 형성과 자본주의의 결합은 두 가지 면에서 ‘그야말로’ 좆 됐다. 첫째, 마을공동체와 같은 수천 년 공감의 연대를 파괴시켰다는 점. 근대국가로의 이행에서 가장 두드러진 긍정은 인간의 계급구조를 와해시켰다는 점일 게다. 그러나 근대성이니 합리적 이성이니 따위의 서구적 근대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구조를 경쟁으로 몰아갔고 그래서 거의 모든 인류는 ‘위험사회’에 직면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공감의 유전자를 압도했다. 그 안에서 우정이라는 말, 환대라는 말은 파멸과 종말의 끝에서 허우적대는 찢겨진 깃발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니 인간은 근대이후 쉼 없이 아팠다.

둘째, 자본주의 파시즘의 확산으로 결국 ‘자본독재’에 종속되었다는 점. 정치적 파시즘이 붕괴된 자리에 자본주의 파시즘이 널리 유포 되었다. 파시즘이 전체주의적 유기체를 지향하듯 자본주의 또한 자본독재에 의한 강력한 유기체적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자본에 의한 계급구조를 형성하며, 사회유기체론을 완성하려 든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본주의, 심지어 자유주의를 구분하지 않는 최근의 시민의식은 그래서 매우 계급적이다.

그런데 두 작가의 작업/작품은 20세기 동아시아의 그런 문제의식으로 파고든다. 그 공간은 미시적 공간들이며, 그래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혹은 어지러운 것을 어지럽다고, 또한 살고 싶다고 외치고 두들기고 날아다니는 ‘말’들의 뼈가 보인다. 들린다.


아픈 몸이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골목을 돌아서

베레帽는 썼지만

또 골목을 돌아서

신이 찢어지고

온 몸에서 피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흐르는데

또 골목을 돌아서

추위에 온 몸이

돌같이 감각을 잃어도

또 골목을 돌아서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 김수영,「아픈몸이」의 부분, 1962.5.30


철학적 혹은 개념적 전경들

근대이전이나 근대이후에도, 철학은 늘 인식의 편차뿐만 아니라 문화적 편차에서 소용이 갈렸다. 철학 내부의 내재적 가치, 이념, 정신의 순환과 변혁이 보편성을 확장하더라도 절대적 객관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별자들이 사유할 때 근원적으로 발생하는 ‘순환-差’ 혹은 ‘변혁-差’로서의 차이(差異) 때문이다. 플라톤의 시뮬라크르는 그런 차이를 부정했으나 들뢰즈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르”로 규정함으로서 탈근대적 사유를 확장시키지 않았던가. 차이는 지속적이나 자기 동일성이 없는 사건이다. 이데아와 현실 사이에서 쉼 없이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에 의해 철학은 분열 증식한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플라톤은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 비유하면서 관료, 시민, 노예, 검투사의 계급적 분할을 정당화 했다. 콩트는 플라톤의 그런 유기체주의적 신체론을 사회유기체론으로 이론화했다. 들뢰즈는 그런 사회유기체론이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통박하면서, 유기체주의는 분리차별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에 관계되는 슬픔이나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들뢰즈의 통찰은 슬프다. 그러나 그것이 첨예한 현실의 거짓 없는 표피이고 진실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유기체적인 못한 사회에 살고 있고, 각 사회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의 사화관계에서의 슬픔 기쁨 욕망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삶에 처해 있다.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국가 및 사회를 이주 이산 유랑 유목 회귀하는 사람들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단 얘기다. 그들은 사회유기체론을 거부하거나 인식하지 않는 자율적 삶 혹은 아나키스트적 태도를 갖지만 ‘분리차별’의 나날에 처한다. 그들은 늘 전체가 아닌 부분이길 원하나 ‘이익’이 무화된 배신과 배제, 질타, 무시, 소외의 꼭지점에 내 몰린다. 전체와 부분의 아름다운 관계항은 그들 사이에 흔적조차 없다. 그러니 우정과 환대의 역사는 성취된 바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20세기의 결핍이자 방치이다.


그것은 사소한 물음이거나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쿠르베氏>전에서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의 개념을 전용하고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가 그린 <안녕하세요, 쿠르베>의 ‘만남’을 통해 예술가와 메세나의 위상이 전복될 것이란 ‘근대적 징후’, ‘개별자로서의 예술가’의 가능성 또한 안개 속일 터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인식의 편차-문화적 편차’ 때문일 수도 있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본주의가 더 강고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전시의 기획자가 예술가를 ‘문화자본의 도구로서의 예술가’로 명명했을 때 그런 편차는 수평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사실 예술가를 인식하는 프랑스와 한국의 편차는 수직적이지 않은가.

기획개념과 이주영, 육킹탄 두 작가의 작업개념이 어떻게 교집합을 이루는지는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들의 현실인식과 창작동기, 그리고 창작과정 및 결과의 작품들은 여전히 사회유기체에 속박되었거나 강요당하고 또는 소속되기를 원하는 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그런 삶이 작품의 언어로 편집되어 전시장에 들어와 소통하는 방식은 흥미롭게도 그런 유기체적 사회를 비집고 들어가는, 무언가 좀 먹는, 그래서 ‘소속’이 아닌 ‘유목’, ‘이산’, ‘이주’의 떠돎을 클로즈업하는 것이다. 왜냐고? 속박하고 강요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소속될 수 없는 어떤 삶의 유영지를 떠돌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렀다고 가는 이들, 잠시 머물렀다 가는 곳들, 그 뒤의 흔적들-소리, 그림자. 그러나 작품 속의 인물, 사건, 상황과 창작 주체로서의 예술가의 상황이 어떻게 혼합되고 분리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어쨌든 예술가와 예술적 대상 간의 거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제 우정과 환대의 ‘공감’을 확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직면해 있다. 적자생존이나 무차별적 경쟁을 요구했던 20세기의 다윈주의, 계급적 자본주의로서 사회유기체론의 대안은 차이를 긍정하고 공감하는 ‘수평적 연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나는 사소한 물음들에 답한다.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닷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전문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6.10~187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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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의 내부 혁명을 위하여

 

 

김종길 | 미술평론가.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예술사) 교수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에서 ‘문화예술’은 교육의 부재를 확인하는 ‘반짝 이벤트’ 프로그램이 된 지 오래다. 교육철학이 피폐한 학교나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깜짝 쇼를 펼치거나 흥미유발 서커스를 위해 초대되니까. 그나마 이벤트의 감동수치가 높은 프로그램은 주 단위 혹은 월단위로 기획되기도 하지만, ‘시범성’ 프로그램은 근력강화 주사로 핏대를 세운 차력사들처럼 한 순간에 ‘문화예술교육’의 황홀경을 펼쳐내야 한다. ‘특종, 놀라운 세상’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사건을 일상처럼 기획해야 하는 곳이 현재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다.


학교에서 교양학습이나 특별학습도 아닌 지친 뇌 근육 활성화를 위한 찰나의 이벤트가 될 때 문화예술은 수치심도 없는 뻔뻔한 돈벌이가 된다. 사회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불려가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노래하고 입방정을 놀릴 때 문화예술은 앵벌이가 된다. 문화예술은 새 천년의 시대령을 넘어 와 그렇게 ‘분식교육’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서 추방당한 문화예술교육이 정부주도의 정책 속에서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정부에 더부살이하며 삯을 받아 연명하는 그런 문화예술교육은 우리가 키운 민주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독선과 아집에 항거하며 맷집을 키웠고, 주먹다짐과 격렬한 몸싸움도 불사하는 투사의 정신을 가졌으나 철학과 영혼은 광화문 근처나 여의도의 후미진 광장 귀퉁이 술집에 팔아먹었으니까. 둘은 ‘문화민주주의’로 이론화 되는 듯 했으나 철학이나 영혼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고, 그저 어딘가에 꽂아 둔 민주주의의 낡은 깃발 하나면 족했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은 낡은 패러다임의 수렁에 빠졌다. 하루속히 기대효과를 내야 하니 ‘속도주의’를 따르고, “너도 하면 나도 한다.”식 ‘평등주의’로 프로그램 질을 떨어뜨리며, “내꺼” “니꺼”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는 프로그램 도둑질을 우습게 알고, 사업성과를 최대한으로 부풀리기 위해 ‘최대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그 자신을 제외한 사회전반을 냉소하는 ‘냉소주의’에 물들어 있으니.


문화예술교육은 내부 혁명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안교육, 미래교육의 본질이 썩어갈 때, 양적으로 팽창한 별별 문화예술교육은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면으론 친(親)상업주의에 물든 진보지식인 사회의 얼굴을 반영한다. 그 모든 진보적 교육의 대안과 정책을 생산해낸 장본인들이 그들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대안교육도 잡아먹고 미래교육도 잡아먹는 괴물이 된 듯하다. 때때로 그들은 문화예술교육이 마치 교육의 만병통치약인양 선전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기성’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철학은커녕 교육방법론 하나 변변치 못한 프로그램으로 말이다. 이런 고질적 병폐를 변혁하지 않으면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할 것이다.

내부 혁명을 위해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이다. 둘째는 문화예술교육 철학입론을 위한 지적 사유의 전개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문화예술 유산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런 문화예술을 창출케 한 경전과 성인들의 기록은 헤아릴 수 없다. 문화예술교육이 대안이 아니라 인간학의 본질일 수 있음은 바로 그런 위대한 유산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론이 필요할까?

 


두 가지 방법론의 예시


문화예술교육 방법론에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이론을 생각해 본다. 두 이론은 예술작품 분석에 사용되고 있는 분석 방법론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궁극적으로 전인적 인간학을 목표로 할 때, 이 두 이론은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흥미롭게도 두 이론은 대상이 된 예술작품만의 해석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예술적 문맥, 즉 총체적인 이해를 요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작품과 연계된 역사, 철학, 문학(사), 예술(사) 등 인문학의 숲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론이 앞서 언급했던, 말 그대로 ‘콘텍스트(context:문맥)’ 이론이다. 이 이론의 방법론은 주로 문화적 배경에 의존한다. 독일 학자 바우어(H. Bauer)가 이 방법론을 성장시켰는데, 기존의 양식이론과 도상해석학에 의한 의미 분석이 오직 예술작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입했다. 대체로 예술작품은 그것들 간의 비교분석을 통해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식과 도상해석을 위한 비교대상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근접지역이나 동일 문명권에서 찾기 힘든 경우 바우어가 취한 방법은 문화적 배경을 역사인문학적 측면으로 넓혀 더 다양하게 제시해 보는 것이었다. 그럼, 뜻밖에도 아주 멀리 떨어진 문명권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들 문명과의 교섭관계를 확인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독일의 미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 제시했던 ‘층구조’(層構造, Schichtungsstruktur)이론이다. 그 이론의 해석구조는 이렇다. 여기 미술작품이 하나가 있다 하자. 작품은 전경(Vordergrund)과 후경(Hintergrund)이 있다. 전자가 감성의 단순한 요소, 즉 형태와 색채에 관련하는 반면, 후자는 보다 깊고, 보다 심오한 요소에 집중한다. 후자는 다시 네 개의 층으로 나뉘는데, 첫째, 3차원적인 것, 둘째, 생명력, 셋째, 심리적인 것, 넷째, 정신적인 것 등이다. 이에 대한 하르트만 본인의 설명.

 

“후경은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초상화의 전경 배후에서 나타나는 것을 더 가까이 관찰한다고 하면, 우선 첫 번째 층에서는 그려진 인물의 순순히 외적인 측면, 즉 물적인 것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서 단순한 전경의 이차원성에 대립된 삼차원이 나타난다. 그 다음에 비로소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생동감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다시금 심리적인 존재,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생명체에서 얼굴표정, 전체적 형상, 거동, 태도 등에 의해 만나게 되는 내면적인 것이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얼굴표정 속에 감춰진, 예컨대 렘브란트가 그의 초상화에서 깊이 있게 표현해낼 줄 알았던 인간의 운명 같은 것이 드러난다. 그림에서 관념적 측면으로 나오는 이 운명성 역시 가장 최후의 층은 아니다. 이것을 넘어서서 우리들 모두에게 적합한 보편적 인간성이 두드러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후경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인간의 정신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작품에 이입된 작가의 창의적인 정신일 것이다. 예술작품에서 도출된 그런 미의 목적과 정신의 재인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살아있는 정신과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을 겪게 되며, 마침내는 작품의 해석에 이르게 될 것이다.(권영필,『미적 상상력과 미술사학』,253~256쪽 참조)


두 이론이 문화예술교육 방법론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들 이론에 다양한 문화예술, 즉 탈춤이나 판소리, 우리 옷이나 가구, 심지어 한옥과 같은 건축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이론이 예술작품의 의미만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의도, 문화적 상관성, 그리고 인류의 정신까지도 파악하려는 매우 심도 깊은 방법론이란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예술교육이 문화교육이나 예술교육처럼 교양 또는 기능교육과 상관없이 인문정신의 성숙을 위한 매개교육이란 점과도 밀접하게 상관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을 적용할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사실, 한국 사회 문화예술교육의 기형적인 확장과 비현실성은 철학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부재가 우리 시대의 문화적 경향성, 즉 ‘아비투스(습속)’의 전형인지는 모르겠으나(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것이지만), 문화예술교육의 작동원리를 위한 ‘마이크로코즘(microcosm:소우주)’의 교육철학은 반드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철학을 위해 몇 가지 전제를 생각해 보았다.

 

철학을 위한 다섯 가지 전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을 추구할 것인 가에 대한 생각이 먼저 전제되어야만 위대한 스승과 만날 수 있을 터. 나는 여기서 다섯 개의 키워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①신화 : 참나(眞我)의 신령한 뿌리 ②영성 : 참나의 푸른 수액 ③역사 : 참나의 오래된 옹이 ④지혜 : 참나의 흰 그늘 ⑤공감 : 참나의 이웃 둥지 등인데, 이 다섯 가지는 서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하나면서 전체다.

 

① 신화 : 참나(眞我)의 신령한 뿌리


신화는 우리가 상실한 원문명의 가장 웅숭깊은 철학이요, 역사요, 사상이다. 신화는 “세계의 발생, 신들의 계통, 세계의 구조, 인간의 발생, 세계의 종말” 등을 주제로 하며, 사상을 개념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시적(詩的)인 이야기에 의해서 형상화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신성한 서술(敍述)’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신성한 전승 설화, 즉 여러 현실적 존재인 우주, 인간, 동식물, 특정의 인간행위, 자연현상, 제도 등이 어떻게 출현했는가를 들려준다.


신화는 ‘참나’의 신령한 뿌리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참나’의 재인식과 그런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성찰적 사유의 심오한 후경에 신화가 존재한다. 신화의 뿌리는 곧 참나의 뿌리이니 반드시 우리는 신화와 신화소의 맥점을 찾아야 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제주도에는 1만 8천여의 신이 있고, 그 중 ‘세경본풀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자청비로 그녀는 대지의 신이고 곡식의 신이다. 또한 생산, 양육의 여신이기도 하다. 일생을 제주신화 연구에 바쳤던 진성기 선생은 “신화는 인습에서 성장한 여러 신들의 근본 내력인 동시에 그것은 그대로 제주선주민의 시초를 설명해 주는”것이라 설명한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는 우리가 파악하기 힘들만큼 많은 신화가 잠자고 있다.


단군은 그동안 신화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요하문명의 발굴로 신화에서 역사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황하문명보다 1천년이나 앞 선 문명으로 연구되고 있다. 동북 3성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터전이었다. 바로 이곳이 요하문명의 발굴지인데, 이제 우리는 신화적 상상력에서 다시 역사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응결하는 다양한 인문지리학적 상상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② 영성 : 참나의 푸른 수액


문화예술교육의 형식주의가 낳은 가장 큰 폐단은 영성은커녕 인성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다움’의 실현을 위해 기획된다. 그 ‘다움’은 잘 성장한 나무들의 품격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영성의 ‘씨알트기’를 통한 인성의 완성에 그 핵심과제를 두어야 한다.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준비한 최소한의 사회적 윤리라면, 문화예술교육은 학교와 사회가 결코 성취하지 못한 인문학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기획하는 자발적 윤리에 가깝다.


영성은 내 안에 잠자는 ‘참나’의 본질이다. 그것은 어두운 페르소나(Persona:가면을 쓴 인격)일 때도 있으나 아브락사스(abraxas)의 실체이기도 하다. 아브락사스는 참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빛과 어둠 등 모든 양극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신성이다. 영성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영성의 ‘깨움’은 붉은 피를 푸른 피로 바꾸는 작업이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듯 육체를 영적 신체로 ‘탈아(脫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영성이 충만한 인간이 가장 사람답다.


③ 역사 : 참나의 오래된 옹이


나의 역사는 고사하고 아버지의 역사, 어머니의 역사,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증조부 증조모 고조부 고조모에 이르면 우리는 거의 공백상태다. 내 역사의 가장 큰 옹이가 어딘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그런 잃어버린 ‘나’의 역사를 체현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획될 필요가 있다. 나는 다시 너의 역사로, 우리의 역사로 넓어진다.


우리는 여러 문명의 역사, 국가의 역사는 기억하지만 지역의 역사, 가족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라는 주체에 대한 인식 없이 대타자에 대한 정체성만을 부르짖는 형국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한 ‘인정 투쟁’에 나서야 한다. 즉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를 둘러싼 세계의 역사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와 가족, 나와 지역사회, 나와 조국, 나와 문명, 나와 세계, 나와 우주로의 끝없는 확장선은 끊임없이 ‘나’를 묻는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언젠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탐사했던 권영필은 실크로드와 한반도의 역사적 연관성을 떠 올리며 이런 말을 남긴바 있다 ; “그 옛날 사마르칸트까지 갔던 고구려인의 투지와 웅지를 상기하면, 우리는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는 시야가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한마디로 역사를 통해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존재의 자기 확인이 가능해진다.”

‘나’의 확장선이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는 무궁하다. 그러나 역사적 인식 없는 확장선은 종착지 없이 굴러가는 열차와 하등 다를 바 없다.

 

④ 지혜 : 참나의 흰 그늘


지혜는 울음과 웃음을 구분하지 않는다. 슬픔과 기쁨도 구분하지 않는다. 지혜는 지식의 충만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구분하지 않는 명석함에서 온다. 우리는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다. 무엇이 슬프고 기쁜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슬픔이 한이 없다가도 기쁨이 오면 금방 웃는다.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강하다. 우리는 그 어둠에서 흰 그늘을 엿본다. 지혜는 그런 것이다. 참나의 내부에는 그런 감정의 빛 그늘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온전할 때 몸은 지혜로워진다. 그것들이 몸 안에서 ‘신명(神明)’을 이룰 때 지혜가 충만해진다. 시인 김지하는 신명을 ‘활동하는 무’라 했고, ‘율려(律呂)’라 했다 ; ‘율(律)’이란 운율 곧 질서, 코스모스를 말하며 생명의 펼쳐지는 힘을 말한다. ‘려(呂)’란 혼돈, 카오스를 의미한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2박이 ‘율’이며, 3박이 ‘려’이다. ‘흰 그늘’이라는 개념을 여기에 맞추어 보면, ‘흰’ 곧 밝음은 질서, ‘율’에 해당되고, ‘그늘’ 곧 어둠은 혼돈, ‘려’에 해당된다.
(이병창, 동아대 교수)


만약 우리 몸의 내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지혜는 독선이 된다. 그래서 지혜는 시인의 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시를 법문으로 하여야만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시작과 끝에 늘 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⑤ 공감 : 참나의 이웃 둥지


신화, 영성, 역사, 지혜가 있어도 공감하지 못하면 헛것이다. 다섯 개 철학적 키워드의 융합이 아니라 신화의 공감, 영성의 공감, 역사의 공감, 지혜의 공감처럼 각 개별적 키워드에 공감이 결합되어야 하며, 그것들이 크게 모여 공감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마치 큰 나무가 바람, 구름, 새, 곤충, 짐승들과 같은 온갖 자연의 생명을 그 안에 품듯이 문화예술교육도 그와 같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최근 펴낸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은 ‘호모 엠파티쿠스’라고 말했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이다. 공감은 문화예술교육 철학의 큰 울타리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하면,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이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실재로서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적 명제를 깔고 있다.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상상의 공동체’를 근대적 국가주의로부터 우주적 지구주의로 확장하는 꿈을 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우리 밖의 ‘상상의 공동체’와 만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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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의 형상조각 연구

- 큐브의 개념적 리얼리티 분석과 형상조각론

 

김종길

 

 



Ⅰ. 머리말

 

1987년 서른두 살의 류인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983년부터 <홍익조각회전>과 <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긴 했으나 조각계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6년부터라 할 수 있다. 그 해, 그는 세 번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7년,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조각을 세상에 알렸다. <'86향방전>(윤갤러리, 1986)의 인연으로 윤갤러리에서 첫 초대개인전 <'86향방초대전>을 갖게 된 것. 그로부터 1998년까지 네 번의 개인전과 예순 여덟 번의 단체전을 치렀다.

1986년부터 1998년까지 10여 년간 지속된 그의 조각적 대상은 대부분 벌거벗은 남자의 육체였다. 설령 그것이 “원형으로서의 남성(MAN)”이 내재되었거나 혹은 그것의 표상이라 할지라도 ‘남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강렬한 힘, 그는 남자의 육체에서만 표출되는 ‘강렬함’을 원했다. 그 강함이 육체의 근육과 같은 표피적 단단함인지, 지배와 같은 상징적 권력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자’의 육체로선 미흡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초기엔 여체작품도 했었죠. 그러나 여체는 美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엔 충분하나 제가 의도하는 강렬한 힘을 표현하는 데엔 부족하더군요. 남체보다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미흡했었죠.”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는 단순히 사실적 재현이나 심미적 형상추구 따위의 조각과는 거리가 먼 ‘표현적 리얼리즘’의 작품들을 쏟아냈다. 표현주의가 예술의 목적을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에 두고 선이나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었으며, 그래서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고,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듯이, 그는 표현주의를 밑 개념으로 하는 리얼리즘 조각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1999년, 21세기를 눈앞에 둔 1월의 어느 날 그는 마흔 세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한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분석함에 있어 학습기와 습작기를 대학/대학원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 탈교(脫敎)와 동시에 조각적 세계를 드러냈다. 모색기, 전성기, 완숙기와 같은 진화론적 세계구축은 그에게 없었다. 순환론이나 불교적 연기론과 같은 전통적인 철학개념을 적용하는 것 또한 무색할 만큼 그의 출현은 갑작스러웠고 또한 그렇게 사라졌다. 많고 적든, 로댕(조은정), 바를라흐, 렘부르크, 케테콜비츠(최태만), 자드킨, 만주(류인), 김복진, 권진규, 김광진(최열, 최태만)과 같은 선배들로부터 예술적 세례를 받은 것이 분명하고, 그 만큼 격정에 찬 에너지를 조각에 응결시켰다. 한 순간의 폭발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조각들은 그런 응결과 폭발의 증거들이다. 그러니 삶의 연대기를 나누고 나눈 것의 의미를 더해서 ‘작가/작품’의 입론을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그와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요절’(최열)의 운명적인 삶에 대해 또는 ‘실존적 성찰’(최태만)과 ‘존재적 절망․고독’(조은정)의 조형적 메타포에 대해 주로 다뤄졌다. 동국대(조병현, 2000)와 한남대(임정혁, 2006)에 제출된 두 편의 석사논문도 조형분석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선행 연구자들의 열정과 치밀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류인은 네 번의 개인전을 통해 조각적 분출의 다각적 면모를 한껏 과시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인체형상에 ‘큐브(cube:입방체)’를 결합시켰단 점이다. 그러니까 그의 응결, 폭발의 역동적 조각형상이, 어떤 예술적 세례의 마그마로부터 끌어올린 “포용과 배반, 숭고함과 천박함, 관용의 너그러움 뒤에 감추어진 포악과 잔혹성, 존엄성과 비열함, 자유와 존엄의 의지가 지닌 무게에 비해 공기보다 가벼운 인간의 무력함, 욕망의 열락과 덧없음, 내면세계로의 끊임없는 응축, 약탈과 자기모멸로 향한 달콤한 유혹, 절망, 고립, 탈출, 의식의 진보 등” 카오스적 혼돈의 부조리한 인간현실이라면, 큐브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혹시, 큐브야 말로 그의 작품을 해제하는 실제적인 단서는 아닐까? 남자의 육체와 그것이 뿜어내는 강렬함 또한 큐브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원고는 그런 의문 속에서, 류인 조각의 형상에 대한 비평적 분석보다는 육체를 결박하고 있는 큐브의 해석에 목적을 두고 쓴 것이다.

 

Ⅱ. 본론

 

그의 큐브는 사전적 정의처럼 정육면체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것은 길쭉한 좌대와 같고, 어떤 것은 몸을 옥죄는 덩어리처럼 보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억압, 굴레, 포박의 상징어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그런 인상으로는 큐브 본래의 개념을 간파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큐브는 그의 조각적 방법론인 표현적 리얼리즘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로도 보이기 때문에, 큐브를 분석하고 해석함에 있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필자는 먼저 10여 년간의 작품 중에서 큐브가 결합된 작품을 선별한 후, 그것의 형상성과 인체와의 결합구조를 분석하여 큐브의 개념적 리얼리티를 파악한 뒤 조각적 형상론에 접근하고자 한다.



 


1. 큐브의 형상성과 인체 결합구조

두 권의 도록에 실린 작품만을 대상으로 할 때 큐브가 등장하는 작품은 총 10점이다. 연도별로 보면, <밤-혼>(1986), <입산Ⅱ>(1987), <입산Ⅲ>(1987), <지각의 주>(1988), <尹의 辨>(1988), <尹의 辨Ⅱ>(1988), <그와의 약속>(1989), <정전停電Ⅱ>(1989), <급행열차-시대의 변>(1991), <동방의 공기>(1992) 순이다. 그 외 <그와의 약속>(마케트, 1988), <급행열차-작품스케치>에서도 볼 수 있다. 큐브는 작품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데, 그럼 개별적 작품을 살펴보면서 큐브의 형상성과 결합구조의 의미를 탐색해 보도록 하자.

<밤-혼>에서 큐브는 뒤로 축 늘어진 육체의 등허리를 받치는 기둥이다. 큐브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데다 육체마저 큐브 위에서 주검처럼 걸려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큐브는 등을 맞대고 있는 상단부 윗부분과 맨 아래 하단을 제외하면 붕괴 직전의 기둥일 따름이다. 기둥의 중간부위가 낡고 삭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육체는 생명이 소진된 거죽처럼 말랐고 팔 다리는 중력이 당긴 시위만큼 쳐졌다. 이 작품에는 절망의 뼈아픈 격통(膈痛)과 참혹한 상실, 그리고 죽음의 긴 그늘이 짙게 깔려있다.






<입산Ⅱ>의 큐브는 이마에서 명치까지, 귀에서 어깨까지의 두 면을 맞은편에서 똑같이 입방체로 그렸을 때 드러나는 사각의 매스(mass:덩어리)다. 거대한 두 팔과 머리만 있는 육체. 오른손으로 대지를 딛고 왼 손을 뻗어 앞으로 혹은 위로 상승하려는 이 육체의 중심에서 큐브는 형벌처럼 틀어박혔다. 마치 목에 찬 칼처럼 그것은 형벌의 도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큐브는 형벌도 형벌의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그를 둘러싼 어떤 세계와 관련이 있다. 예컨대, 그것은 그 자신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관념의 덩어리일 수 있으며, 그런 강고한 관념들의 독재가 지배하는 위험사회 및 제도일 수 있다. <입산Ⅲ>는 <입산Ⅱ>의 연속장면처럼 보인다. 왼손으로 다시 대지를 딛고 오른 손을 뻗어 나아가기 때문이다. 최태만은 이 작품에 대해 “시시포스(Sisyphus)나 아틀라스(Atlās)처럼 숙명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고통의 표상”이라 했고,
큐브는 그런 인간을 포박하고 짓누르는 것이라 했다. 형벌이든 관념이든 혹은 위험사회의 현실이든 그것이 이 육체의 고통의 표상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입산’의 큐브에 대한 그런 인식을 바꿔 그것을 예술가가 천형처럼 지고 갈 순수예술의 본령, 그것의 절대미학으로 상정해 보면 어떨까. ‘입산’의 육체는 인간의 근원적 표상이 아닌 예술가 주체라 생각하고…. 절대주의 주창자였던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는 흰 종이에 검은 정방형으로 절대적 관념의 순수 이데아를 표현했고,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자연물의 순수추상을 수평, 수직의 구조에서 발견했으며, 심지어 근대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조차 미학을 제도화 했으니 그 큐브에 대해 절대미학의 상징체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 황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류인은 대학 4학년 때 “기하학적인 것에 유기적인 것을 융합해 형상성을 배제한 실험 작업을” 한 바 있고, 1980년대 한국 미술계는 순수, 참여논쟁이 활발하기까지 했다. 자,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큐브와 형상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류인의 일지를 살펴보자.
 

 


“(기하학적인 것에 유기적인 것을 융합해 만든) 작품들에선 표현의 불확실함과 왠지 겉도는 감을 느꼈습니다. 내용보다는 재료에 빠지기 쉽고, 또 주제에 대한 안일함이 생기게 되더군요. 현대미술이 지니는 일반적인 관념과 형식논리에 빠지는 것보다 나의 체질에 맞는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체를 소재로 한 형상성 있는 작품이 등장하게 된 건지도….”

 

그의 말대로라면 ‘순수’의 그것은 내용보다는 질료라는 재료에 빠지기 쉽고, 주제에 대한 안일함이 생긴다. 한마디로 그것은 ‘관념과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형식논리는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형상성에 집중했다. ‘입산’의 육체는 그런 류인의 형상조각론의 시론일 수 있다.

<입산>연작의 형상성은 <지각의 주>에서도 이어진다. <지각의 주>에서 큐브는 두 개의 기둥이다. <밤-혼>의 기둥이 가늘고 긴 것이었다면, <지각의 주>는 대지에서 굳건하게 솟은 온전한 사각큐브다. 두 기둥은 앞뒤로 나뉘고, 앞의 기둥 상반부에서 남자의 벌거벗은 육체가 두 팔을 벌리며 깨어나고 있다. 기둥이 대지에서 솟았듯이 그 또한 이 기둥으로부터 탄생하는 듯하다. 이때, 기둥 즉 큐브는 대지로서 생명의 모반(母盤)을 상징한다.






<尹의 辨>은 두 발을 120센티미터나 벌리고 선, 키 190센티미터 정도의 건장한 남자인데, 큐브는 얼굴을 감싼 두 손과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크럼을 짰다. 이 큐브는 <입산>연작의 큐브와 달리 H빔처럼 위아래가 뚫렸다. H의 아랫부분에 명치 위 어깨와 머리, 두 팔이 꽉 끼었고, 열린 윗부분으로 깍지 낀 두 손이 살짝 보일 뿐이다. 이 작품은 199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개최된 두 번째 개인전 출품작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아홉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尹의 辨>은 <급행열차-시대의 변>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터. 두 제목을 결합해 보면, ‘尹의 辯’은 곧 ‘시대의 변’이자 ‘급행열차’라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尹의 辨>이 <급행열차-시대의 변>중 맨 마지막 인물과 동일인물이다. 더군다나 그의 큐브가 철로의 H빔과 동일한 H빔이고. 그렇다면 <尹의 辨>의 큐브는 어떤 속도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尹의 辨Ⅱ>는 동명이작(同名異作)이다. 발에서 손끝까지 똑 같은데, 손이 쥐고 있는 물체만 다르다. 한 쪽은 긴 사각의 큐브이고 다른 한 쪽은 H빔이다. <尹의 辨Ⅱ>의 큐브는 손이 쥐고 있는 큐브가 아니라 상반신 전체를 옥죄고 있는 각목이다. 12개 각목에 못을 박아 만든 비정형의 큐브에 거꾸로 쳐 박힌 육체, 찢기는 고통으로 말라서 비틀어진 두 발을 두 팔처럼 들고 호소하는 육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으로 부여잡고 있는 굵은 두 손. 발가락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두 손의 손가락의 근육과 마디마디가 소름으로 뒤틀렸다. 이 작품에 대한 시인 조용훈의 시적 묘사는 고통의 강도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가 묶였다. 갇혔다. 가녀린 종아리와 허벅지는 이제 툭, 뼛가루로 부서져 날린 것이다. 가는 종아리에 대비되는 큰 발은, 이미 종말을 예견하고 전율한다. 그러니 포기하라. 고통은 인내를 조롱하며 속살을 유린하고 난폭하게 찢지 않는가. 저항은 오히려 고통을 연장시키고 끝내 추잡하고 비굴한 신음을 강요할지 모른다. 손이 그 통증을 대변하지 않는가. 유독 강한 손. 그러나 고통에 일그러졌다. 생의 한 끝을 잡으려고 안간힘이다.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틀은 더욱 견고하게 속박할 것이다. 곧 고통의 강도만을 증언하고 육체는 이제 잘려 나가리라.”






미셀 푸코는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을 ‘생체 권력(biopower)’이라 했다. 그것은 마치 기계장치처럼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통제 메커니즘이다. <尹의 辨Ⅱ>의 큐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육체를 옭아 맨 육체의 감옥이며, 생체 권력이다. 그런 그가 고통을 인내하며 부여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속도다, 급행열차의 속도!

<그와의 약속>에서 큐브는 덩어리가 아닌 선(線)이다. 가슴 아래가 뚝 절단된 육체. 한 손으로 대지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내밀어 무언가를 청하는 손과 시선. 몇 개의 철근을 용접해 덧 댄 큐브는 이 육체의 지지대다. 큐브는 그래서 ‘그와의 약속’이 이렇듯 연약한 지지대에 의해 겨우 지탱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정전停電Ⅱ>의 큐브는 사지가 절단된 토르소 어깨 위에 틀어박힌 사각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가슴에서 돌출된 육체의 얼굴이 있다. 류인은 “내 작품은 자연히 작품 내부에 갖추어진 심리적인 내면구조, 갈등, 억압된 상태를 내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고, 또한 ‘스스로를 억압하는 인체’를 탐욕하기도 했는데, <정전停電Ⅱ>은 잔혹하게 절단된 육체가 기립하여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를 타전한다. 큐브는 저항과 응시를 속박하고 있는 강력한 틀 같으면서도 타전의 진정성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산한다. 대립적이지 않은 역설이 그 내부에 있다.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큐브는 속도에 대한 강박증이고, <동방의 공기>는 <尹의 辨>과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창조적 합작에 의해 탄생한 해체적이고 분열증적인 큐브를 보여준다. <동방의 공기>는 <尹의 辨>의 육체와 같지만, 큐브는 <급행열차-시대의 변> 맨 앞쪽 인물과 그의 두 팔에 걸린 덩어리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목 없는 육체 뒤로 상반신을 덧붙여 이중인체를 만든 뒤 긴 쇠 파이프를 목에 꽂았다. 큐브는 육체로부터 이탈되듯 두 갈래로 쪼개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동방의 공기>야 말로 억압이나 굴레, 속박이 아니라 해방일 것이다.

 

2. 큐브의 세 가지 특징과 의미

열점의 작품에 결합된 큐브의 형상성과 결합구조 분석에 의해 추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밤-혼> : 기둥, 뼈아픈 격통, 참혹한 상실, 죽음의 그늘

<입산Ⅱ> : 형벌, 형벌 도구, 지독한 관념, 관념독재 사회

<입산Ⅲ> : 숙명, 근원적 고통, 표상, 순수본령, 절대미학

<지각의 주> : 기둥, 온전한 사각, 탄생, 대지, 생명모반

<尹의 辨> : 스크럼, H빔, 시대의 변, 급행열차, 속도

<尹의 辨Ⅱ> : 동명이작, H빔, 각목, 비정형 큐브, 거꾸로 박힌 육체, 고통의 소름

<그와의 약속> : 선(線), 절단된 육체, 철근, 육체 지지대

<정전停電Ⅱ> : 사각 프레임, 심리적 내면구조, 갈등, 억압하는 인체,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

<급행열차-시대의 변> : 속도강박증, 해체적․분열증 큐브

<동방의 공기> : 이중인체, 이탈, 해방

 

이렇듯 다양한 작품의 키워드를 분류하고 묶어서 다시 몇 개의 특징으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순수관념의 추상과 현실리얼리티의 대응이다. <밤-혼>, <입산Ⅱ>, <입산Ⅲ>, <그와의 약속>이 여기에 속한다. 네 작품의 큐브는 각기 다르나 형벌과 같은 도구의 형상으로서 근원적 고통과 절망, 상실, 그늘로 상징된다. 이러한 상징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는 창작의 아이디어를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관심 있는 문자를 오려서 이를 조합”하며 떠올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은정은 “아무리 무심한 상태에서 시작했다하더라도 신문의 사회면은 인간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체라는 점에서, 또 언어를 분절시켜 얻는 이미지의 파편화는 그가 작품을 구조적으로, 언어분석적인 관점에서 시작한다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또한 그의 작품이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있는 모습과 이유에 대한 되물음이며, 확인”이라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입산Ⅱ>과 <입산Ⅲ>이 제작된 1987년의 한국현실은 어떤 현실이었을까? 그 1년의 사회정치사를 간추려 보면,

 

1월 14일, 박종철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치사. 2월 7일, 박종철 추도식 및 추도집회. 2월 8일, 김만철 일가 탈북 망명. 2월 12일, 국내 첫 에이즈환자 사망. 4월 13일, 전두환 특별성명, 4.13호헌 조치. 6월 9일, 연세대 이한열, 시위 중 최루탄 피격으로 의식불명. 6월 10일,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 고문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 시민대회, 6월 14일, 전두환, 안보관계 장관 및 군, 치안 책임자 회의 소집, 전국적 시위 해산을 위한 군 출동 준비 지시. 6월 25일, 김대중 가택연금 해제. 6월 26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평화대행진(6월 항쟁의 절정을 이룸). 6월 29일, 노태우, 관훈동 민정당사에서 6.29선언 발표(직선제 개헌 및 김대중 사면, 복권 수용). 7월 9일, 이한열 영결식. 8월 17일, 울산 현대그룹 6개 사업장 노동자 4만명 연합 가두시위. 8월 19일 전대협 결성. 8월 29일, 대전 오대양주식회사 사장 박순자와 32명, 용인공장에서 집단변사(오대양사건), 11월 29일,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858여객기,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 승객 전원 사망.

 

연표를 줄이고 줄여도, 거의 매달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는 참혹한 절망과 상실, 죽음의 그늘, 지독한 관념과 그런 관념독재의 사회를 경험했으며, 이를 조각에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상징은 ‘순수관념의 추상’이라는 하나의 응집된 큐브로 완성되었다. 그는 순수관념의 추상이란 것이 탐미주의자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라며 그것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찾는 건 일종의 의무지만 탐미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 아름다움이란 것에는 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을 가치가 없습니다. 혼자만의 만족을 저는 싫어합니다.”라고. 그러므로 그의 조각적 ‘현실’은 그런 ‘추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고행에 가까운 ‘입산’이며, 절대적 ‘약속’이어야 했다. 심지어 그의 육체는 발목 잡는 모든 것이 절단된 두 팔이어야 했다. 그것은 또한 질료에 과도한 개념적 관념만을 쏟아 부었을 뿐 현실도피, 현실부정으로 일관했던 1980년대 추상조각에 대한 반기였으며, 그런 저항으로부터 형상조각의 진정성을 확보하려 했던 그의 조각적 결의이기도 했다.

둘째는 창조적 모반과 질료이다. <지각의 주>, <정전停電Ⅱ>, <동방의 공기>가 그렇다. <지각의 주>는 1990년 제9회 국전에 출품된 <아들의 하늘>에서 더 구체화 되는데, 최태만은 <지각의 주>와 <입산>연작, <아들의 하늘>을 헤르만 헤세의 소설『데미안』에서 아프락사스의 상징을 빗대어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류인의 아프락사스는 인간이 스스로 옭아놓은 생존의 올가미, 그 가위눌림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류인의 작품 속에서 한 건장한 청년이 박차고 나오려는 올가미는 그의 의식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있는 ‘생존의 당위성’이며, 또한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모반이자 그 위기의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세계의 파괴로부터 획득되는 새로운 생명’에 다름 아니었다. 육체가 아닌 큐브 ‘주(柱:기둥)’는 신세계를 위한 파괴된 세계이면서 동시에 신세계의 모반이다. 그것은 창조적 질료라고도 할 수 있다. 구약성서는 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아들의 하늘>이 알(모반 또는 생령이 깃든 흙)로부터 깨어나는 생명의 본질과 연속성을 형상화 한 것이고, <지각의 주>또한 대지로부터 솟아오른 육체일 때 큐브는 창조적 모반과 질료가 된다. 그리고 그 육체는 새 생명이요, 해방이다. <정전停電Ⅱ>과 <동방의 공기>는 <지각의 주>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기둥이나 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전停電Ⅱ>의 큐브는 토르소와 거의 합일된 상태에 있고, <동방의 공기>는 조각조각 갈라지고 터져서 부스러지고 있으니 모두 ‘흙’의 상태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프레임과 갈등, 억압이 해체되고 흩어진 상태, 거기에 해탈의 육체가 있을 것이다.

셋째는 속도에 대한 저항이다. 그 속도는 생체권력, 즉 통제 메커니즘의 민주적 화해 없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것을 말한다. 1988년, 89년, 90년, 91년, 92년…, 한국사회는 숨 쉴 틈 없이 달렸다. 하치타 마유미(김현희)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동구권 국가 최초로 헝가리가 서울무역사무소를 개설했으며,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서정의 납치사건, 한겨레신문 창간, 6.10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및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 구성, 철도 총파업, 광주전남지역 재야단체 108명 광주학살 진상촉구 연좌농성, 지강헌 등 탈옥수 일당 서울 북가좌동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 주장 끝에 사살, 전경환 구속, 농민 1만여 명 농협민주화 시위…, 그리고 중국 정부는 텐안먼 민주화 시위를 무력진압 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소련이 해체되었다.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시대령의 미끄럼은 급했다.


<尹의 辨>, <尹의 辨Ⅱ>, <급행열차-시대의 변>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독주, 군부독재정치의 반민주적 독주, 언론의 독주, 폭력의 독주, 개발의 독주, 죽음의 독주에 대한 ‘맞섬’이었다. 그러나 그 맞섬의 저항은 좌우의 불일치, 부조화로 치달아 갔으며, 그런 모순에 찬 세계인식은 극단적인 육체표현으로 제시되었다. 고깃덩어리 같은 육체는 H빔에 갇혔고, 두 발을 벌린 채 철로 위에 늘어서서 온 몸으로 맞섰던 육체는 텅 비었고, 악어 이빨 같은 손가락으로 빔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는 물구나무는 화석인류다. 그의 육체는 쇳소리로 우는 숯에 다름 아니다.

H빔은 근대화, 현대화의 한 상징이다. H빔의 출현은 세계 도시의 마천루를 형성시켰다. 에펠탑은 순전히 고강도 H빔만으로 세워졌고, 뉴욕의 많은 근대 도시들도 H빔을 뼈대로 세워졌다.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었던 최초의 네트는 H빔 철로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가속도는 모두 철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1세기 현대 도시의 마천루는 아예 완전한 뼈대를 구축한 뒤 살을 덧붙인다. 거대한 배의 갈비뼈, 평야를 뒤덮는 아파트의 척추, 엄청난 속도의 고속철 정강이에 모두 H빔이 쓰인다. 그런 H빔의 문명 구조적 메커니즘은 멈출 줄을 모른다. 세 작품의 큐브는 그런 메커니즘의 굴레 속에 놓인 인간의 실존을 탁월한 기획력과 형상성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3. 큐브의 해석으로 드러난 류인의 형상조각론

류인의 조각은 큐브의 해석과 더불어 동시에 드러났듯이 구체적인 현실모티프에서 형상의 원형을 찾았다. 그의 조각이 특정한 인물 혹은 사건의 실체나 그 주체를 형상화 했다기보다는, 현실적 이슈에서 형상의 상징적 주제를 길어 올렸단 얘기다. 그는 관념적 추상이나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형상만으로는 격변하는 한국현실의 개념적 리얼리티를 표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상조각이야말로 시대와 역사, 현실의 조형적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있는 그릇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 실체를 <입산>연작의 큐브 해석에서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입산>의 큐브는 일반적으로 억압과 속박의 굴레로 판단되지만, 예술가의 천형으로 받아들이는 순수예술에 대한 관념적 본령일 수 있고, 그는 그런 ‘순수예술의 본령’이란 관념을 깨부수고 형상조각의 강인한 육체를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형상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쉽게 그의 작업일지에서 그 단서들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 고깃덩어리들은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라거나, “메마른 이 시대의 한 인간”이라 말하고, 그런 인간 형상의 추구가 “내가 살아있는 기준”이며, 또한 그런 형상이야말로 “인간의 복잡한 심리표현의 최적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얻고 “이 땅의 현실이 주는 억압에 고통 받고 또 이를 이겨”내려 애쓰며, 그럼으로써 탄생한 조각들이 “충격적인 감흥이 곧바로 되살아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또한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모든 조각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현실”로서 “내 이웃의 고통과 동 세대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그의 형상조각론은 철저한 당대 현실과 그 현실 속의 인간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현실부정이 아닌 현실긍정의 힘으로 살아있는 그 시대의 민중, 깨어있는 민중, 역사적 주체로서의 강인한 민중이 그의 형상조각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것을 1980년대의 사회벽혁운동이 추구했던 노동자, 민중의 계급운동과 상관해서 분석하는 것은 다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의 민중은 있는 그대로의 민중, 무엇으로부터도 한계 지을 수 없는 해방적 민중의 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시대와 역사, 현실로부터의 상징적 민중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그런 민중의 상징으로부터, 그 실체적 진실로부터 ‘실존적 인간의 표상’을 형상화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런 민중의 표상으로서의 실존적 인간이 ‘육체의 해체’를 통해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 형상조각의 개념과 류인 조각의 형상성

형상조각은 사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때의 형상성은 ‘재현의 형식’뿐만 아니라 추상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더라도 형상으로부터 전제된 작품일 때, 그 시대적 구체성을 인정하는 한에서 제한될 수 있다. 형상의 개념은, 표현주의에서처럼 작가의 관심이 사물의 재현이라는 형식의 문제보다는 내용에 보다 비중을 둔 경우이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품이 ‘시대적 리얼리티를 내포하고 있는가’이다. 김성호는 그런 형상조각이 “재현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넘어서고, 사물의 본질에 육박하여 삶을 반영하는, 그래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형상미술”이라고 정의할 때, 그것에의 온전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상미술의 개념은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프랑스 미술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쟁을 겪은 작가들은 사실적 재현만으로는 자신들이 체험한 그 참혹한 상황을 표현할 수 없었다. 비정형의 미술인 앵포르멜이 등장하고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이 대두 되었던 것은 그런 시대적 상황이 존재했기 때문일 터이다. 파리에서 결성된 ‘옴 테므앵(Homme-Temoin)’이란 그룹은 그 출발점이었다. 그룹 명칭의 의미는 ‘시대의 증인’이다. 이 그룹의 발기인에 베리나르 로르주(Bernard Lorjou),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등이 참여했으며, 1948년에 창립전을 열었다. 비평가 장 부레(Jean Bouret)는 이 전시의 팜플릿 서문에서 “회화는 시대를 입증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의 공포나 전후의 실존적 분위기 속에서 전후 도시인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압박과 고독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조각이 그런 형상미술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1980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형상조각에 앞서 사용되고 있던 구상조각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장르 분과개념으로 사용되면서 보편화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개념은 시대적 리얼리티보다는 재현의 조각 작품 전체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즉 프랑스와 달리 우리 미술계에서 구상조각(넓게 구상미술)은 ‘재현성’그 자체에 한정되는 정적구조를 취해온 게 사실이며, 이는 모순에 찬 현실과 부조리한 현실을 내포하는 당대성의 조각을 적극적으로 형성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조각의 위기는 매체의 진부성이 아니라 시대성을 상실한 채 재현의 장식적 요소만을 추구하는 그런 ‘구상조각’의 세태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에 있어 형상이란 본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미학적 개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형상조각의 형상은 하나의 꼴이며 대상이며, 구체적 실상이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라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형상은 신의 형상을 빗댄 형상이다. 인간은 신의 모방된 형상이란 얘기다. 조각가의 형상추구는 이러한 신의 창조성에 대한 대리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생령이 된’ 사람의 형상에 다가가기 위한 조각가들의 열망과 추구는, 서구조각사의 전모를 밝히는 주요한 단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허버트리드는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나 그 외에 주술적인 용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실존을 형상화하려는 수단으로서 조각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이는 그리이스 신화인 ‘나르시스(Narcisse)’에서 살필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심상(心象, idea)’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그가 이러한 주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형상’은 ‘의식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는 말한다. “인류가 그들 스스로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이미지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이미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는 의식의 일부로서 보아야 한다.”


류인은 장 부레(Jean Bouret)가 형상미술에 대해 시대를 입증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작품에 대해 전쟁의 공포나 전후의 실존적 분위기 속에서 전후 도시인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압박과 고독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듯이, 그는 1980년대라는 한국적 현실 속에서 민중들의 ‘정신적 압박과 고독’뿐만 아니라 시대가 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했던 폭력적 징후들을 실체화 했다. 그것은 또한 그가 인간에 대한 ‘심상’을 외부세계에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언어이기도 했다.

 



나. 육체에 대하여

류인의 형상조각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표현주의에 기반한 표현적 리얼리즘이다. 그의 표현주의는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육체의 왜곡과 변형은 기본이고 과감한 분절, 절단, 절단된 신체의 조합, 오브제 결합 등을 시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형상은 시각적 충격은 물론이고 주제와 내용까지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바로 거기에 그가 남자의 육체를 통해 드러내려 했던 ‘강렬함’이 있다. 그 강렬함은 시대의 모순에 맞섰던 인간의 실존적 자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육체의 두 속성인 존재와 의식을 구분하지 않고 합일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잔혹하게 해체된 육체는 형상성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려는 실험적 의지이면서 동시에 실존의식을 내재한 미학적 오브제이기도 한 것이다.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신체를 “자기보존과 생성의 욕망”이며, “능동적인 변용의 능력을 통한 부분들의 결합체”라고 생각했다. 들뢰즈(Gilles Deleuze)도 스피노자의 신체개념을 이어받아 전체와 부분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듯이 신체와 기관 또한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유기체주의적인 신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르면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오히려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라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신체’로 한정되지 않는 보다 폭넓은 변용역량을 가진 신체를 뜻한다. 그는 그래서 “신체를 유기적인 큰 덩어리로 만들려고 기관들과 필연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유기체를 거부”한다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해 “유기체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기” 때문이라 했다.


유기체주의적 관점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이는 플라톤(Platon)이었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 비유하면서 관료, 시민, 노예, 검투사의 계급적 분할을 정당화하려 했다. 콩트(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는 플라톤의 신체론을 사회유기체론으로 이론화했다. 그러나 들뢰즈는 그런 사회유기체론이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통박하면서, 유기체주의는 분리차별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에 관계되는 슬픔이나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류인의 육체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의 육체는 시민, 노동자, 자본가, 농민, 학생 등과 같은 어느 특정계급의 육체라 할 수 없다. 그 모두를 대변하는 대변자도 아니다. 그의 해체된 육체는 근원적으로는 생명을 가두고 있는 육체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며, 그렇게 시대와 역사의 주체들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가 기하학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을 융합하는 실험을 통해 ‘표현의 불확실성’에 도달했던 경험은 ‘가둠’이라는 자기 유폐적인 유기체 미학의 체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육체를 해체하여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다. 큐브에 대하여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큐브>는 17,576개 살인미로의 방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여섯 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육면체의 방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모를 뿐 더러 그들이 어떻게, 왜 이 방에 오게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 그들은 곧 자신들이 마치 육면체의 색깔 맞추기 퍼즐처럼 모두 똑같은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섯 명의 사람들은 각각 경찰, 젊은 수학도, 여린 자폐아, 여의사, 전과자, 그리고 이 미로와도 같은 공간에 대해 말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한 사내다. 이 정육면체의 방들은 각각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 그들은 모두 이 감옥 같은 방에서 나오기 위해 이 시스템보다 더 영리해져야만 한다.” 영화의 캐릭터 이름은 모두 감옥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류인의 큐브는 상실, 고통, 갈등, 억압, 해방에 관한 조각적 장치다. 그 장치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그의 많은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육면체의 큐브와 결합되어있다. 조각적 형상으로서의 그 육체는 큐브의 미학적 개념과 상관없이 큐브와 동거한다. 부정과 긍정의 충돌로서 또는 어떤 숙명의 알레고리로서 큐브는 형상의 상징을 보완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주요한 개념이 된다. 큐브에 갇힌 대부분의 육체는 그 큐브로부터 탄생, 자각-탈각, 탈주, 해방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자해충동’을 일으킬 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큐브는 육체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즉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운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로부터의 이탈을 꿈꾸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육체는 그래서 분열증적인 히스테리를 표출하기도 하고, 강박증에 사로잡힌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탈리와 류인의 큐브는 뼈아픈 격통과 참혹한 상실, 죽음의 그늘, 지독한 관념, 관념의 독재, 절대미학, 속도-강박증, 절단된 육체, 억압하는 육체,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 이탈, 해방 등 공통의 키워드를 갖는다. 류인의 큐브가 결박적인 상태로 자주 등장하는 매스의 상태이지만, 그 상징으로 보면 나탈리의 감옥과도 같은 큐브의 비사회적 공간, 미로의 공간, 치명적인 함정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류인의 육체가 1980년대의, 아니 현대인의 실존을 표상하는 것이듯이 큐브는 현대인의 그 실존적 시스템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Ⅲ. 결론

 

류인의 조각에서 큐브는 단순히 인체 형상의 부수적 오브제라 할 수 없다. 그의 조형적 육체는 실존을 표상하기 위한 장치로서 큐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또한 의미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큐브는 육체와 더불어 다양한 형상태를 취하면서 육체의 형상성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독립적 구조로서의 상징을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상보적이기도 하고 상충적이기도 하다. 상보와 상충의 양가적 의미는 큐브와 육체가 어떻게 결합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재질과 상황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큐브의 중요성은 그것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곧 류인의 전체 형상조각론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겠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그의 조각이 어떤 관념적 형상, 신화적 형상이 아니라 현실리얼리티에 기반한 표현적 리얼리즘이란 결론의 도달이다.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언급되고 주장된 개념들이 이렇듯 자칫 간과될 수 있는 조형적 부분의 해석을 통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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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문화 겨울호

2010.10.28 14:06 from 분류없음

황해문화 겨울호를 위해 <행궁동 사람들>의 리뷰 원고 앞부분을 새로 고쳐썼다.




공감하라, 그래야 공존할지니

- 공공미술의 공공성과 ‘공감’의 뒷담화를 위하여

 

   

9월26일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에 이화마을의 날개벽화가 떴다. 방송이후, 이승기처럼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급기야 주민들은 벽화를 지우라고 작가에게 요구했다. 작가는 “다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우리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상처와 불편을 담보했다”며 10월 4일 결국 벽화를 지웠다. 이 사건으로 공공미술이 뉴스의 이슈가 되었다. 물론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새천년을 맞아 ‘미술의 해’라고 호들갑 떨며 ‘공공적’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때가 벌써 10년 전인데, (위의 뉴스와 상관없이) 사실 최근에 와서야 공공미술의 진정성이 언급되는 듯하다. 중앙 정부 중심의 공공미술지원 사업이 지방 정부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양상이지만, 실제로는 공공미술이 아트레지던스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들과 혼융되며 나타나는 ‘충격파’일수도 있다. 이제 와서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공성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공공미술이어야 하는지 따져 묻는 것은 뒤떨어진 시대의식일 수 있으나, 어쩌면 이 시기가 가장 적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하는 존재, 인간


최근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주요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책의 정식 출간일이 10월 10일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쟁사회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심지어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물/유전학자들이 최근 인간들의 공감의식을 가능케 하는 ‘공감뉴런’(empathy neuron.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에 주목했다.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아픔에 대해 ‘참 안됐다’하며 동정(sympathy)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다. 다시 말해,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의 동정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리프킨은 인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얘기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다윈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다윈주의가 인간의 충동을 자신의 개인적 생존과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의 구현에서만 찾는 한계를 비판했다. 그는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예지했는데, 즉 ‘적자생존’과 ‘경쟁’, ‘부의 집중’을 부른 낡은 경제 패러다임 대신 이제 세계는 ‘협력과 네트워크, 오픈 소스, 경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제, 곧 ‘분산 자본주의’라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리프킨의 ‘공감’개념은 현 단계 한국 공공미술이 상실한 핵심어이다.

 

소통공간을 위한 미술,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근대적 미학개념으로 볼 때 불합치 개념이다. ‘공공’의 개념과 ‘미술’의 개념이 합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개념을 소유(컬렉션)와 향유(전시)의 차원으로 구분한 뒤, 향유의 개념에서 추출해 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다수의 공공이 소유하고 향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대미술관의 출현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성장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미술관이었지 미술 자체의 공공성 담론과는 무관했다. 또한, 근대이전까지의 교회미술에서 공공적 개념의 미술활동을 살펴볼 수는 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율성을 획득했다. 미술의 종교적 창작활동(천정벽화, 성당 외벽 장식조각, 유리그림 등)을 21세기 공공미술의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교미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고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사회주의리얼리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34년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사실주의 묘사방법론을 취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자를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를 목표 삼는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한 미술활동은 구 소련이나 동독,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로파간다(宣傳, propaganda)로서의 공공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통치하의 로마에서 ‘신앙의 보급’(데 프로파간다 피데)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때의 라틴어 ‘프로파간다’를 말 그대로 ‘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상의 포교활동이 현재 프로파간다의 어원이며, 사회주의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단 얘기다. 그들은 공공적 공간에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한 벽화, 조각, 문장 등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을 위한 미술이었지 결코 인민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의 공공성은 국가주의적 공공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주지하듯 공공미술(Public Art)은 공공의 대중을 위해 제작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이다. 한마디로 그 작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작용을 하며, 무슨 내용을 가졌던 간에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대중을 위한’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그 미술은 자율성과 상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렛은 미술계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어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서 공공미술을 생각해 냈다.


이후 공공미술은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 ‘스트리트퍼니처’, ‘환경조형물’ 등과 같이 일종의 오브제 설치미술로 이해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 개념이 사회적 비판성을 내포한 미디어아트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제니 홀저(Jenny Holtzer)의 전자게시판 문자 작업과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광고판 작업, 건축물에 문명 비판의 영상을 만든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프로젝션 작업 등은 공공성에 대한 공간과 장소의 역할을 심화시키면서 ‘발언’의 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공공미술이 실현되는 장소를 단지 물리적 장소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한다.

 

소통에서 공감으로


기업의 사회환원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이 사용되고(포스코는 포항시 공공미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 외 여러 유형이 있다.), 정부의 소외계층 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이 사용되며, 심지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을 투입하고 있다(문화부의 공공미술추진사업과 문전성시프로젝트사업이 그것이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안양시가 공공성 확장과 문화도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와 유사한 공공미술 지원 사업은 이미 전국적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주도의 이런 공공미술이 과연 대중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주창하며 그 실천의 최전선에 있었고, 최근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사회적 미술로서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잔 레이시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개념은 “참여에 기초하며, 폭넓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직접 관계가 있는 쟁점에 관하여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하는 모든 시각예술”로 1960년대의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열린 소통과 상호 작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는 공동체 예술을 꿈꿨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중시했고, 사회적인 현안들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미 우리시대에도 당면한 문제들인 노숙자, 실업, 에이즈, 증가하는 노년인구, 이민자, 성/인종 차별, 도시민들의 소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관심과 시대에 정합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작업 속에 융합시키면서 예술, 사업, 산업, 미디어, 노동, 사회사업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보다 현실에 뿌리 깊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취했던 공동체 예술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미술에서 다뤘던 현안들에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도 그들과 유사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공공미술로서의 공동체 예술론에 덧붙여 ‘공감의 미술’이 되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이슈나 현안들을 공공미술의 의제로 설정한 뒤 공동체 예술로 저항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주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와 지역주민,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공감하는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은 결코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으로 등장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조형물과 무엇이 다른가. 기념비적 공간과 장소에 세워진 수많은 조각들, 공공적 장소라 불린 광장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환경조형물들, 공항과 지하철, 학교와 거리에 그려진 벽화들은 정치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교도적이며 훈육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공공미술조차 예술가들의 독단과 과잉 미의식, 허위에 가까운 공동체성으로 빚어진 쓰레기가 많다. 그런 것들에는 눈곱만큼의 공감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미술은 공감의 미술이어야 하고,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 설령 융합과 충돌의 개념적 결과가 과거의 공공미술과 다른 새로운 공공미술일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공감’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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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in Progress

2010.10.28 13:54 from 분류없음

Memories in Progress

9.2-10.10

마이클슐츠갤러리

 

 

동학에서 식민, 해방, 미군정, 4.3, 전쟁, 5.16, 4.19, 독재, 산업화, 5.18, 대투쟁, 사회변혁, 문민, IMF, 국민, 참여, 그리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정치적 키워드는 우리 현실이 얼마나 격변했는지 일깨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 중의 하나는 억압, 통제, 감시를 견디지 못한 ‘기억’이다. 크고 작은 사회정치적 사건의 쌍방향 주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강제적으로’ 기억상실을 요구받았고, 그런 문제의식은 사회전체 기류를 형성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예술조차도 그런 폭력적 사회를 증언하지 못해 오랫동안 불임의 시대를 가져야 했단 사실이다.


봇물이 터진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1978년 현기영이 4.3항쟁의 북촌리 학살사건을 「순이 삼촌」으로 승화시켰고, 1980년 홍성담은 5.18민주항쟁을 ‘오월 판화’로 길어 올렸다. 1980년대는 시대, 역사, 현실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했고, 그 만큼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예술가들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기획하지 않는다. 탄압의 시대, 억압과 통제의 시대로부터 민주 자율성의 시대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개인의 정치성에 대해 말할 뿐 그것을 사회화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술에 있어 ‘정치적인 것’의 요구는 예술적 패션이거나 대중 상품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가라타니 고진은 1970년대까지의 30년 일본문학을 해체 분석한 후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포했었다. 문학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완전히 상실하고 대중 통속문학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마침표였다. 그러나 그가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문학을 발견하고는 놀라워했다. 당시 우리문학은, 아니 예술은 그런 주제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우울하게도 우린 고진이 선언했던 근대문학 혹은 근대예술의 종언을 받아 들여야 할 만큼 통속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무수한 개발, 재개발지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기억 지우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견뎌온 근대화의 사건들을 깡그리 ‘기억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기억 투쟁’은 학술적 언사일 뿐 현실에서 거의 실천되고 있지 않다!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한 달 여 동안 진행된 핀란드와 레바논의 두 작가 전시 <Memories in Progress>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한국전쟁 60년, 4.19혁명 50년, 5.18광주항쟁 30년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떠올리며 살펴 본 그들의 작품은, 예술이 ‘사건의 증언’ 이후 사회심리적 기억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예컨대, 현기영과 홍성담 이후의 2세대, 3세대 작가들이 1세대의 ‘증언예술’에서 더 나아가 현대사의 사건들을 어떻게 환유해야 하는지의 지평을 예시하고 있단 얘기다. 그것은 1911년에 태어나 세계전쟁의 잔혹한 공포를 체험한 뒤 인간을 근원적인 악으로 제시한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의 예술세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상륙한 소년들의 원시적 삶에서 인간사회의 이기적 집단성과 폭력성을 전체주의적 ‘계급사회’ 형성과 그 사회의 존속을 위한 ‘배제’의 숙청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야르모 마에킬라에


흥미롭게도 핀란드의 작가 야르모 마에킬라에(Jarmo Maekilae. 1952- )의 회화 작품은 골딩의 그런 남성주의 사회체제의 근원적 악을 소년들의 기이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소년들은 마치 골딩의 소설 속 아이들이 그들만의 계급사회를 구조화하면서 그 구조를 부정하는 아이를 배제했듯이, 회화 속 소년들 또한 일군의 무리를 형성하며 무언가를 사냥하고 부순다. 오래된 숲의 녹음과 평온한 빛이 번지는 아름다운 숲에서 그들의 섬뜩한 ‘놀이-퍼포먼스’는 충격적인데, 무인도의 그것처럼 인간의 파괴적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자연의 농밀한 영혼 속에서 펼쳐지는 소년들의 광기와 살해, 음모, 배제의 풍경은 그래서 숲을 삽시간에 불온한 안개 끝으로 몰고 간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이 우리의 아버지들이었고 그래서 바로 우리일 수도 있다는 반전스토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모하메드 사이드 발바키(Mohamad-Said Baalbaki. 1974- )는 그의 조국 레바논을 둘러싼 내전과 외전, 그리고 그로인한 난민과 유랑의 삶을 회화로 직조했다. 레바논은 그가 1살 무렵인 1975년부터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에 휩싸인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 게릴라와 이스라엘간의 무장투쟁은 레바논을 거의 황폐화 시키고 말았다. 그 자신 또한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었으며, 유랑을 체험했다. 그는 유대인 빈민가에서 인종과 종교적 삶까지 점령당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난민과 유랑의 상징으로서의 ‘더미들’로 형상화 되었다. 또한 오직 ‘외침’의 소리, 발언의 목청만을 가져야 했던 상황을 통해 그의 시대를 고백하고 증언하며,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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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경 리뷰

2010.10.27 20:07 from 분류없음



<2010년 하반기 오늘의 작가 배형경-생각하다, 말하다>

10월 15일 - 11월 11일

김종영미술관


2004년, 당시 인사동 학고재에서의 개인전은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가 주제였다. 2001년 모인화랑 전시는 “부처를 닮다”였고, 1999년 금호미술관 전시는 “바라본다”와 “생각한다”였다. 그 이전, 1994년의 작품들은 “손과 발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했고, “거푸집에서 이제 막 생을 얻은” 형상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작품들은 성장과 변이를 반복하는 듯하고, 그 사이에서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의 생철학을 탐색하는 듯하다. 아프락사스의 알이 탈각(脫殼)의 과정을 통해 새 몸의 신화를 실현하듯이 말이다.

그는 ‘바라 봄’과 ‘생각 함’의 존재 형상을 ‘부처’에서 찾았는데, 그것은 이미 1994년의 ‘덩어리’였을 때부터 시작된 그의 일관된 형상조각론으로 생각된다. 인간 형상의 궁극과 근원의 굴착지에서 그가 발견한 것이 곧 부처라는 얘기.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인간 부처는 종교적 도상도 아니고 상징적 모뉴멘트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면서 부처이고 부처이면서 인간인 ‘人佛合一’의 어떤 것이었다. 부처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는 것인지, 인간에게서 부처의 본질을 찾는 것인지는 이후의 작업들이 다만 하나의 단서였을 따름이다.


1999년의 ‘생각한다’가 108개 나무상자 속 결가부좌 인물이라면, 2001년의 ‘부처’는 그런 생각의 집적이 만들어 낸 본질적 형상이었다. 그는 부처를 인간의 본질과 합일, 접목시켜야 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를 닮다”에서 청동부처와 투명한 플라스틱부처를 똑 같은 거푸집에서 꺼내 전시했다. 두 인물/부처는 욕망 없는 사람들의 신실한 소망으로 읽힌다. 온갖 잡상의 근원인 머리(佛頭)를 제거했으니까. 결국 그가 사람과 부처를 합일해 가는 과정에서 선택한 본질의 한 형상은 목 없는 반가사유상이었다. 2004년의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에 등장한 작품들은 그렇게 목이 없거나 벌거벗었고, 몸은 반가사유의 모습이다.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지에 놓인 것처럼 보이고, 또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깊은 침묵에 든 것으로도 보인다. 제거된 불두는 이곳저곳에서 뒹굴고 있다.

2010년의 ‘생각하다’와 ‘말하다’는, 다시 원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원점은 동일반복지가 아니라 상승하거나 더 깊어지면서 회전하는 사유지다. 나는 그 사유지에서 그가 드디어 십 수 년 간 찾아 헤맸던 ‘人佛’의 본질성에 근접했음을 발견한다. 주지하듯 그의 형상은 남녀 인간의 성체를 구분할 수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형상은 우리 내부의 본질적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궁했고 탐색했으며 또한 악취의 껍질을 벗겨낸 그 형상은 그래서 순수형상의 실체이면서, 진리이다. 부처 형상이 남녀 구분, 합일을 따지지 않는 그 모든 것의 성체이듯이 그의 형상은 태초의 형상들로 기립해 있다. 이미 그 화두는 수년 전에 완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그 이후, 그러니까 최근 몇몇 전시에 출품한 개별적 작품들에서 그런 형상들과 더불어 부적이나 나무 혹은 어떤 덩어리들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역설적인 결론일지 모르겠으나 그는 그가 집요하게 찾아 나선 본질로서의 형상이 이 현실의 모순과 실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그것은 페르소나의 실체조차도 결코 완전한 진리일 수 없다는 현실적 장벽에서 비롯된다. 왜 인간은 운명적인 삶 속에 처해 있으며, 그것을 극도로 거부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들에는 다시 어깨위에 머리맡에, 주변에 해소할 수 없는 ‘운명적’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그의 쉼 없는 ‘생각’과 ‘말’은 그렇게 놓인 조각들의 침묵 속을 떠돌고.


배형경의 조각은 권진규와 김광진, 그리고 류인으로 이어졌던 한국 형상조각의 아름다운 계보이며, 특히 여성조각이 보여주는 심미성의 깊이를 가장 극적으로 표출해 낸 작품들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성취하지 못한 인간의 본질적 형상에 대한 증거들이며 그 실체다. 권진규의 작품은 인간본성이 조각을 통해 노출된 드문 경우였다. 그는 건칠 작업과 테라코트를 통해 외형의 페르소나가 사라진 격조 넘치는 불상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비구니’작품은 불상이라는 조형적 형식을 따르지 않고 사람 본래의 모습에서 부처를 끄집어냈다. 그러나 배형경은 권진규와 달리 한국 불상조각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 인도의 간다라까지 넘나들며 연구를 지속했고, 동북아시아의 불교조각을 자신의 작품의 한 테제로 들여와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 의해 사람의 몸이 부처 몸으로, 즉 불상으로 표현된 신성의 이미지에서 사람의 실체적 실존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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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한국사회와 풍자의 ‘은유적 현실’

- 설총식의 동물 의인화 기법과 신형상 조각론

 

신형상 조각과 특징 : 현실적 은유와 풍자


2009년의 조각계를 개괄, 정리하며 나는 2000년 이후 한국 조각계의 한 특징이 신형상주의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신형상 조각과 신개념 조각은 2000년 이후 후기 신세대 조각가들에 의해 실험된 탈근대적 전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대적 지층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을 이룬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사회변혁 운동에 동참했던 민중미술로부터 비판적 현실주의의 미학을 전수받았고, 컬러텔레비전의 등장과 88서울올림픽,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현란한 이미지 속에서 ‘탈-모던, 탈-제도, 탈-권위’를 내세웠던 당시 청년작가 세대의 ‘신세대론’을 흡수했으며, 대안공간의 ‘얼터너티브 정신’을 형성했다. 또한 인터넷의 일상화와 글로벌 네트워크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세대론(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의 편협성을 확장해 글로벌 후기 신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현재)로 층위를 구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한국미술2010』(월간미술) 그리고 신형상 조각의 기수로는 이원석을 필두로 박장근, 설총식, 이종희 등을 내세웠다. 이들의 신형상조각론을 잇는 후기 신형상 조각이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에서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신형상 조각의 특징은 근대 조각의 선구자 김복진에서 현대 형상조각의 계보를 잇는 권진규, 심정수, 최병민, 임송자, 김광진, 정현, 류인, 배형경, 박희선, 이원경, 구본주 등의 형상조각이 표출했던 존재에의 자각, 시대현실의 응축, 인간형상에 대한 심미적 깊이, 전통과 역사에의 침윤 등의 상징을 계승하되 새로운 조형언어로 전환하는 데에서 찾아진다.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첫째, 형상 외부의 시각적 장치가 화려해졌다는 점이다. 선배 세대들의 작품들이 형상성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인해 주제나 형상 모두 대체로 어둡고 무거웠던 것을 상기해볼 때, 이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밝다. 그것은 다양한 채색기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존재와 시대현실에 대한 비판적 현실주의의 개념을 놓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논쟁적인 내용에서도 그렇다. 둘째, 은유와 해학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주로 인체형상에 대한 집요한 탐색과 변형, 파괴를 통해 ‘발언’했던 앞 세대와 달리 이들은 우화적 형상을 곧잘 도입한다. 우화를 통한 현실적 은유와 풍자는 이전 조각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형상주의 조각의 보편이다. 셋째, 위의 두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작가들이 즐겨 취하는 방식인데, 전시공간연출을 극적인 구조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별적인 한 조각의 상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천착했던 독립적 형상성에서 군상이나 집단 혹은 스토리텔링에 의한 극적 장치를 구상한 뒤, 이를 전시연출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관객과 더불어 소통하려는 ‘참여적 적극성’이 아닐까 한다. 설총식의 경우, 위의 세 가지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과정을 통해 여기에 이르렀을까?






모순에 찬 한국사회의 풍자 : 동물 의인화


학생시절인 1994년 <거리미술전 전야제>에 참여하며 현실적 조형감각에 눈떴던 설총식이 1996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2년 첫 개인전을 개최하기까지의 여정은 “근본적으로는 나의 환경과 인간으로서 갖는 실존성,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시점”(첫 개인전 도록에 실린 작가노트)이라는 고백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러니까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국사회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이를 극복했던 심각한 경제위기의 시기이다. IMF가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가맹국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탄생하였다고는 하나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라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촉진은 결국 수출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한국경제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졸속 성장 전략에 의해 기형적으로 비대해 진 상황에서 누적된 무역적자라는 허기를 견디지 못해 결국 기절초풍으로 쓰러진 형국이면서, 동시에 천박한 자본주의 졸부들이 그저 먹고살만해 졌다고 물 쓰듯 돈을 쓰다 쪽박 찬 스토리이기도 했다. 애면글면 죽어나는 것은 대다수의 민중들이었다.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수년간 지속된 강도 높은 경제개방과 구조조정으로 기업파산이 줄을 이었고, 그로인한 심각한 불경기와 실업사태는 한국사회가 어떤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하는지 되묻게 만들었다. 350만 명의 국민이 약 21억 3천 달러어치의 금을 모았던 이때의 기적적인 사건은 사실 기적이 아니라 못난 국가를 탓하지 못한 민중들의 뼈아픈 통한일 터.


19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의 사회변혁운동과 1990년대 후반의 자본주의 세계화 모순을 스무 살과 서른 살의 나이에 겪어야 했던 설총식은(그는 1968년생이다.), 그가 대학시절 학습했던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 dialectical materialism)’으로서의 세계를 피부로 인식하게 된다. 한 마디로 그것은 모순에 찬 세계의 사유철학인 변증법의 논리로서만 해석 가능한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와 역사, 그리고 그 세계 내의 자기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이었다. 가족의 절대적 가치를 위해 힘겹게 자신을 낮춘 어느 청소부의 초상을 통해 숭고의 미를 표출한 <청소부 K씨 가정을 위한 중도>나 IMF 직전의 실직자가 벌거벗은 자신을 상품으로 내 놓은 <Sale '97>, IMF를 아버지들의 세대인 ‘기성세대’의 처절함으로 상징화 한 <비명>, 세기말의 불안과 실존적 두려움을 탁월한 형상성으로 묘파한 <세기말 비가>, 그리고 샐러리맨의 한계상황을 자본의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로 은유한 <무제>는 바로 IMF전후의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한 수작들이며, 이때 이미 그의 신형상 조각의 조형언어가 형성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타 조각가들에 비해 우화적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의 비장의 전술, ‘동물 의인화’를 통한 인간 풍자의 조형작품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예컨대, 무한 경쟁사회의 기득권 싸움을 양장입고 꽉 다문 표정으로 묵묵하게 앉아 있는 두꺼비형상에 비유한다거나(<자리>), 북어대가리처럼 입을 쩍 벌린 채 낚시 바늘에 꿴 샐러리맨 물고기들이 그것이다(<무제>). 이후, 그는 구본주식 형상조각에서 벗어나 그 자신의 독자적 작풍(作風)이랄 수 있는 동물 의인화 작업을 심화시킨다. 참, 그가 실직의 시대를 풍자했던 첫 개인전의 주제는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2002. 관훈갤러리 신관 2층).

 




은유적 현실 : 인간 사회학과 비판적 현실주의의 뼈대


첫 개인전을 치룬 뒤, 그는 IMF와 더불어 급속하게 상실해 가는 ‘가장의 권위’에 대해 고민한다. 21세기 벽두부터 언론에 오르내린 40대 가장의 실직과 명예퇴직(일명 명퇴),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흡연, 살아남기 위해 줄타기의 명수가 되어야 하는 이 기인들의 모습은 IMF를 건너 온 멋진 투사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렵게 살아남았던 직장은 그들의 존재감을 부담스러워 하고, 겨우 견뎌낸 가족의 빈곤은 날로 커져만 가는데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자리 만들기>(2004. 관훈갤러리 특별전시관)라는 주제어를 끌어 올려 두 번째 개인전을 치른다. 다섯 유인원으로 분장한 다섯 아버지의 형상은 이 시대 가장의 당당한 풍채(風采)가 아니라 자기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혹은 자리 확보를 위해 온갖 처신을 구사하는 슬픈 초상이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처연하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공허함이 가득한 눈빛이 그렇고, 공세적이지 못한 꿈 뜬 동작이 그렇다. 그들은 거울을 보듯 세상을 보고, 구경꾼이나 방관자처럼 무언가를 관망하며, 아무것도 없는 중심을 향해 으르렁 거린다. 그들에게서 ‘남성 중심사회’ 권력자의 폭력적 위풍당당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5년, 첫 개인전에서부터 선보인 동물 의인화의 전 작품을 전시한 <은유적 현실>(갤러리 도올)은 그가 그렇게 은유하고 풍자해 온 현실에 대한 재성찰의 계기였다. 이미 전시 제목에서 예감했듯이 그는 자신의 동물 의인화 작업을 ‘은유적 현실(Metaphorical Reality)’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우화적 상상이나 가벼운 풍자, 해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첨예한 현실이란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은유적 현실’은 우화이되 인간 사회학의 관점을 상실하지 않으며, 풍자이되 비판적 현실주의의 개념적 뼈대를 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은유적 현실’이라는 개념정립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2007년, ‘은유적 현실’에 ‘콤플렉스(Complex)’를 부제로 단 관훈갤러리 신관에서의 제3회 개인전은 해석 가능한 현실적 풍경을 역시 동물 의인화를 통해 재현했다.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 컬러풀해졌고, 의인화 한 동물들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The walker>만 보더라도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그가 채색에 매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곰에서 고양이, 제비, 사자, 뱀, 부엉이로 이어지는 동물 형상의 선택은 메타포가 훨씬 깊어졌음을 말해준다. 곰이 부지런한 뚜벅이를 표현한 것이라면, 고양이는 날렵하고 간사한 것을, 제비는 ‘철새 정치인’이라 부르듯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집시를, 사자는 남성성에 깃든 성적 욕망과 폭력을(뱀은 사자의 성기로 표현된 것이다), 부엉이는 밤을 잊고 노동하는 예술가를 은유한 것이다. 각각의 동물들이 내포한 은유적 상징을 적절한 동세와 표정으로 형상화 한 것도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자화상


2010년 올해 전시는 2007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러니까 ‘은유적 현실’의 대주제 아래서 그가 이번에 탐색한 세부주제는 ‘욕망과 관계’이다. 이 세부주제를 그는 다시 세 개의 이야기로 나눠 표현했는데, 첫째는 물질 만능주의, 속물주의에 맹신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그린 것으로 카라칼이라는 고양이 낚시꾼이 물고기 인간을 낚는 것에 비유했다. 그 옆으로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사마귀(양귀비를 연상케 하지만 결단코 그녀의 풍만한 여체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의 농염한 자태가 ‘유혹’의 상징으로 서 있다. 첫 개인전에서 등장한 바 있는 물고기 인간이 여기에서 재등장하는 재미가 있다. 그는 마른 북어처럼 거의 무방비적 상태로 걸려 있는 <무제>와 달리 여기선 낚시 바늘을 향해 두 손 벌리고 달려드는 ‘욕망’의 화신들로 묘사하고 있다. 물질이 곧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살아가는 현 시대의 인간상에 대한 비참한 통찰일 것이다. 우리는 세대를 호칭할 때 해방동이 세대, 베이비 붐 세대, 4.19세대, 386세대, X세대와 같은 어법을 통해 한 세대의 역사성과 그 시대현실의 정치성 등을 상상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88만원’ 세대와 같은 자본 상징어가 통용되면서 비정규직, 청년실업률, 최저임금과 같은 키워드로 그 세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세대들에겐 자본획득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며 진리인 것일까? 물고기 인간은 그런 청년 세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다. 둘째는 남녀의 삼각관계를 한 마리 여우(여자)와 두 마리의 늑대(남자)로 표현하고 있다. 관계로서의 여자와 남자는 늘 호의적이면서 동시에 적대적이다. 호의적인 것과 적대적인 것의 상대성은 사실 다르면서 같다. 늑대로 의인화 된 두 남자는 이 양면성의 실체라 할 수 있다. 그는 때때로 우호적이나 느닷없이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우는? 그가 연출한 장면에서 여우는 남자들의 그런 관계의 바깥에 서 있다. 관계의 지형 안에 있는 듯하나 그는 독립된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는 사실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이다. 세 번째는 시간에 대한 성찰을 다룬 것으로 사막여우와 나무늘보가 등장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발을 디딘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막여우의 표정은 해 맑다. 느린 시간의 결을 오롯이 마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사막일 터인데, 사막여우로 형상화 된 인물은 그래서 마치 참선에 든 수도승처럼 그윽하다. 시계바늘 위에 올라 탄 나무늘보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유유자적의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설총식의 이번 작품들은 우리가 아직도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나는 해 맑은 사막여우에서조차 희망의 돛을 발견하지 못한다. 남북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더 큰 관계들은 적대적이지 못해 안달이고 청년 실업률은 위험수위에 육박하며, 사막을 향해 치달아가는 ‘폭도형’ 개발주의는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시계를 바라고 앉은 사막여우와 나무늘보는 멸종의 도래에 대해 경종 울린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 공감의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회, 공감의 언어를 상실하고 있는 사회, 2010년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바로 설총식의 우화이며 우울한 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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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그래야 공존할지니

; 행궁동 사람들-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트워크화 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활동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戰意)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제로섬 게임은 끝나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 제레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중에서

 

 

경쟁사회에서 공감사회로


최근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정식 출간이 10월 10일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쟁사회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심지어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는 생물학자들이 최근 인간들의 공감의식을 가능케 하는 ‘공감뉴런’(empathy neuron.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에 주목했다.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창현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아픔에 대해 ‘참 안됐다’하며 동정(sympathy)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다. 다시 말해,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의 동정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리프킨은 인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얘기. 이런 그의 주장은 다윈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다윈주의가 인간의 충동을 자신의 개인적 생존과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의 구현에서만 찾는 한계를 비판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예지했는데, 즉 ‘적자생존’과 ‘경쟁’, ‘부의 집중’을 부른 낡은 경제 패러다임 대신 이제 세계는 ‘협력과 네트워크, 오픈 소스, 경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제, 곧 ‘분산 자본주의’라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리프킨의 ‘공감’은 현 단계 한국의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공공미술, 대중을 위한 미술


공공미술이란 개념은 근대적 미학개념으로 볼 때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근대,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개념은 소유(컬렉션)와 향유(전시)의 차원으로 구분한 뒤, 향유의 개념에서 공공성을 추출해 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다수의 공공이 소유하며 향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대 미술관의 출현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확장되긴 했으나 그것은 공공미술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또한, 근대이전까지 종교미술에서 공공적 개념의 미술활동을 살펴볼 수는 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종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율성을 획득했다. 미술의 종교적 공익활동(천정벽화, 성당 외벽 장식조각, 유리그림 등)을 20세기 공공미술의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교미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고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사실주의 묘사방법론(진실성과 구체성으로서)을 취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자를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를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한 미술활동은 소련, 구 동독,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로파간다(宣傳, propaganda)로서의 공공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통치하의 로마에서 ‘신앙의 보급’(데 프로파간다 피데)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때의 라틴어 ‘프로파간다’를 말 그대로 ‘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상의 포교(布敎)라는 ‘선전활동’이 현재 프로파간다의 어원이며,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단 얘기. 그리하여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적 공간에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한 벽화, 조각, 텍스트 등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위한 미술이었지 결코 인민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의 공공성 또한 현재의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공공미술(Public Art)은 장소, 기능, 내용적인 측면에서 공공의 대중을 위해 제작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이다.
한마디로 그 작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작용을 하며, 무슨 내용을 가졌던 간에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대중을 위한’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그 미술은 자율성과 상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1967년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렛은 미술계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어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서 공공미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후 공공미술은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 ‘스트리트퍼니처’, ‘환경조형물’ 등과 같이 일종의 오브제 설치미술로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그 개념이 사회적 비판성을 내포한 미디어아트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제니 홀저(Jenny Holtzer)의 전자게시판 문자 작업과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광고판 작업, 건축물에 문명 비판의 영상을 만든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프로젝션 작업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공공미술 개념은 공공미술이 실현되는 장소를 단지 물리적 장소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하며, 그런 의미에 맞는 작품으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 일시적 작업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공성에서 공감의 미술로


기업의 사회 환원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이 사용되고(포스코는 포항시 공공미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 외 여러 유형이 있다.), 정부의 소외계층 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이 활용되며(문화부는 공공미술추진위를 발족시켜 지원 사업을 펼쳤다.), 심지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을 투입하고 있다(문화부의 문전성시프로젝트사업이 그것이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안양시라는 지방정부가 공공성 확장과 문화도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와 유사한 공공미술 지원 사업은 이미 전국적이다. 21세기 초입에서 한국 미술지형의 화두는 당연히 공공미술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공공미술이 대중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나는 최근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잔 레이시의 사회적 미술로서의 ‘새 장르 공공미술’에 주목하고자 한다. 수잔 레이시의 ‘새 장르 공공미술’의 개념은 1960년대의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열린 소통과 상호 작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는 공동체 예술을 꿈꿨다. ‘새 장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중시했고, 사회적인 현안들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미 우리시대에도 당면한 문제들인 노숙자, 실업, 에이즈, 증가하는 노년인구, 이민자, 성/인종 차별, 도시민들의 소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관심과 시대에 정합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작업 속에 융합시키면서 예술, 사업, 산업, 미디어, 노동, 사회사업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보다 현실에 뿌리 깊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 장르 공공미술’이 취했던 공동체 예술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미술에서 다뤘던 현안들에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도 그들이 주목했던 키워드와 유사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공공미술로서의 공동체 예술론에 덧붙여 ‘공감의 미술’이 되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이슈나 현안들을 공공미술의 의제로 설정한 뒤 공동체 예술로 저항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주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와 지역주민,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공감하는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은 결코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다.


21세기 벽두의 활기찬 공공미술 활동이 은연 중 어떤 장벽에 부딪힌 것은 공감의 연대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기업이든 정부든, 예술가 주체든 지금까지의 공공미술은 기금 대비 기대효과를 충족하는 일종의 ‘사업’으로서의 공공미술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뉴타운 재개발 구역의 철거지에서 혹은 탄광촌에서, 쪽방촌에서 그리고 쇠락한 포구에서 펼쳐진 공공미술은 예술의 시각적 장치를 극대화할 뿐 그 곳 주민들의 상실감을 ‘공감의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상실의 정서를 나누면서 공감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예술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공공미술은 공감의 미술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으로 등장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조형물과 무엇이 다른가. 기념비적 공간과 장소에 세워진 수많은 조각들, 공공적 장소라 불린 광장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환경조형물들, 공항과 지하철, 학교와 거리에 그려진 벽화들은 정치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교도적이며 훈육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나는 한국의 많은 공공미술프로젝트조차도 예술가들의 독단과 과잉 미의식, 허위에 가까운 공동체성으로 빚어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눈곱만큼의 공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감의 미술을 표방하라!


‘행궁동 사람들’은 공감의 예술을 표방했다.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내용이 공감의 개념을 얼마큼 실천해 냈는가는 일단 차후의 문제로 놓더라도 기획의도가 그것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들의 활동에 주목했다.

행궁동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철거 예정지였다. 화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수원시는 화성의 내부 도심지역을 옛 화성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행궁복원과 더불어 그 주변 일대는 우선 대상지가 되었다. 그 계획은 행궁복원과 함께 일정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행궁동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알고 있었고, 시가 건물이나 땅을 매입하고 나면 곧 떠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프로젝트가 진행된 ‘대안공간 눈’주변의 행궁동 골목은 얼마동안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내력은 다음과 같이 기획취지에 반영되어 있다.

 

“수원시 행궁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안의 행정구역으로, 문화재 보호와 화성 성곽 복원에만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인해 행궁동의 주거형태는 매우 낙후 되었으며 확정되지 않은 보상에 대한 기대와 실망 속에 삶의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프로젝트는 세 개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기획전시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 둘째,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 셋째,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다.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은 행궁동 사람들의 “삶을 마을 곳곳에 작품으로 표현해 유물로서의 화성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화성을 탐색”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나 대부분 벽화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그중에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껠 심브리의 작품에 감동했다. 그는 자신이 그려야 할 주제와 장소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은 실제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벽화는 놀라운 상상력만큼이나 퀄리티가 높았다. 수원(水原)이 물의 도시임을 착안, 금보여인숙 출입구 양옆의 긴 담에 한 마리의 물고기를 그렸고,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드는 오래된 담에는 작은 물고기들과 큰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거대한 은빛 물고기와 흰 새는 1970년대 풍의 세월이 가라앉은 고즈넉한 이 동네의 명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 여인숙 주인과 만나기 위한 그의 긴 기다림은 공감의 에피소드이기도 할 것이다.


그 외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강제욱, 김성래, 오상미, 최혜정&김보라, 한애숙, 틸만 크릭(독일)의 작품들도 인상 깊었다. 대체로 골목의 벽화 프로젝트보다 나는 이 기획전시가 공감의 미술을 잘 구현해 냈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영상작업을 제출한 오상미의 경우 첫 공공미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대한 소소한 장면들, 사람들에 주목하여 지역성의 향취를 잘 길어 올렸고, 최혜정&김보라는 경로당 할머니들과 함께 ‘늙음’의 상실감을 삶의 원숙기에 핀 진향의 꽃으로 치환함으로써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틸만 크릭이 인터뷰한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가 아님에도 ‘마을 뉴스’로 인식되었다. 사실 주요 언론이 다루는 이슈는 살인과 폭력, 사기, 어떤 화제들에 집중된다. 일상의 대중적 삶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틸만 크릭의 소소한 인터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행궁동이 주목한 이슈일 수 있고, 그들의 뉴스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마을 뉴스라는 새로운 지역 언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마을 뉴스와 같은 최소 단위의 지역적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애숙이 그린 연필 초상화 또한 공감의 언어였다. 그의 인물화는 전신사조의 진실성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그들을 그리기 위해 자주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삶을 보았다. 담백하게 그린 인물들의 표정 안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결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애숙은 작업과정을 고백하며 자주 눈물을 내 비쳤는데, 그들의 삶이 그의 삶에 어떤 공감의 파장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은 작가와 미술대학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프로젝트 팀을 꾸려 1인의 아트디렉터 지휘아래 공공미술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행궁동 주민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동네 입구, 골목, 담장, 옥상, 대문 등에 작업을 설치했다. 이정표, 문패, 우체통 같은 것들이 만들어 졌고, 작은 꽃밭과 벽화도 있었다.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는 작은 전시와 그야말로 개막당일 잔치로 실현되었다. 참여 작가들과 행궁동 주민들, 경로당 어르신들, 그리고 공무원, 관객들이 어울린 이날의 느낌은 이들이 얼마나 공감의 언어를 중시하는 가를 잘 보여주었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서 ‘행궁동 사람들’이 공감의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공공미술이 ‘공감’을 주요한 화두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궁동 사람들’에서 나는 그것의 작은 동기와 실천들을 확인했을 뿐이다. 프로젝트평가회에서 작가들과 기획자 모두 그들이 수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과정으로서의 미술일 수밖에 없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결과론에 집착하고 평가하는 한국의 현실이 도마에 올랐고, 특히 ‘과정’을 과정에서 풀지 못한 한계를 많이 지적했다.

‘행궁동 사람들’은 끝났고 작품들은 현장에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궁동 사람들’과 같은 공공미술이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기획자의 생각에 따라 공공미술은 천차만별, 천태만상이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적’으로 변질되지 않고 새로운 미학을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선 근원적으로 그것이 ‘공감의 미술’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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