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의 내부 혁명을 위하여

 

 

김종길 | 미술평론가.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예술사) 교수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에서 ‘문화예술’은 교육의 부재를 확인하는 ‘반짝 이벤트’ 프로그램이 된 지 오래다. 교육철학이 피폐한 학교나 사회에서 문화예술은 깜짝 쇼를 펼치거나 흥미유발 서커스를 위해 초대되니까. 그나마 이벤트의 감동수치가 높은 프로그램은 주 단위 혹은 월단위로 기획되기도 하지만, ‘시범성’ 프로그램은 근력강화 주사로 핏대를 세운 차력사들처럼 한 순간에 ‘문화예술교육’의 황홀경을 펼쳐내야 한다. ‘특종, 놀라운 세상’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법한 사건을 일상처럼 기획해야 하는 곳이 현재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다.


학교에서 교양학습이나 특별학습도 아닌 지친 뇌 근육 활성화를 위한 찰나의 이벤트가 될 때 문화예술은 수치심도 없는 뻔뻔한 돈벌이가 된다. 사회에서 교육의 이름으로 불려가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노래하고 입방정을 놀릴 때 문화예술은 앵벌이가 된다. 문화예술은 새 천년의 시대령을 넘어 와 그렇게 ‘분식교육’의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서 추방당한 문화예술교육이 정부주도의 정책 속에서 정부에 의한 정부를 위한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정부에 더부살이하며 삯을 받아 연명하는 그런 문화예술교육은 우리가 키운 민주주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독선과 아집에 항거하며 맷집을 키웠고, 주먹다짐과 격렬한 몸싸움도 불사하는 투사의 정신을 가졌으나 철학과 영혼은 광화문 근처나 여의도의 후미진 광장 귀퉁이 술집에 팔아먹었으니까. 둘은 ‘문화민주주의’로 이론화 되는 듯 했으나 철학이나 영혼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고, 그저 어딘가에 꽂아 둔 민주주의의 낡은 깃발 하나면 족했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은 낡은 패러다임의 수렁에 빠졌다. 하루속히 기대효과를 내야 하니 ‘속도주의’를 따르고, “너도 하면 나도 한다.”식 ‘평등주의’로 프로그램 질을 떨어뜨리며, “내꺼” “니꺼”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는 프로그램 도둑질을 우습게 알고, 사업성과를 최대한으로 부풀리기 위해 ‘최대주의’에 빠져 있으면서 그 자신을 제외한 사회전반을 냉소하는 ‘냉소주의’에 물들어 있으니.


문화예술교육은 내부 혁명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안교육, 미래교육의 본질이 썩어갈 때, 양적으로 팽창한 별별 문화예술교육은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이면으론 친(親)상업주의에 물든 진보지식인 사회의 얼굴을 반영한다. 그 모든 진보적 교육의 대안과 정책을 생산해낸 장본인들이 그들이니까. 그러나 그들은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대안교육도 잡아먹고 미래교육도 잡아먹는 괴물이 된 듯하다. 때때로 그들은 문화예술교육이 마치 교육의 만병통치약인양 선전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기성’ 사업을 펼치기도 한다. 철학은커녕 교육방법론 하나 변변치 못한 프로그램으로 말이다. 이런 고질적 병폐를 변혁하지 않으면 문화예술교육의 미래는 참으로 암담할 것이다.

내부 혁명을 위해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의 모색이다. 둘째는 문화예술교육 철학입론을 위한 지적 사유의 전개이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문화예술 유산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그런 문화예술을 창출케 한 경전과 성인들의 기록은 헤아릴 수 없다. 문화예술교육이 대안이 아니라 인간학의 본질일 수 있음은 바로 그런 위대한 유산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론이 필요할까?

 


두 가지 방법론의 예시


문화예술교육 방법론에 적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이론을 생각해 본다. 두 이론은 예술작품 분석에 사용되고 있는 분석 방법론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궁극적으로 전인적 인간학을 목표로 할 때, 이 두 이론은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흥미롭게도 두 이론은 대상이 된 예술작품만의 해석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예술적 문맥, 즉 총체적인 이해를 요구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예술작품과 연계된 역사, 철학, 문학(사), 예술(사) 등 인문학의 숲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론이 앞서 언급했던, 말 그대로 ‘콘텍스트(context:문맥)’ 이론이다. 이 이론의 방법론은 주로 문화적 배경에 의존한다. 독일 학자 바우어(H. Bauer)가 이 방법론을 성장시켰는데, 기존의 양식이론과 도상해석학에 의한 의미 분석이 오직 예술작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입했다. 대체로 예술작품은 그것들 간의 비교분석을 통해 의미를 추출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양식과 도상해석을 위한 비교대상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근접지역이나 동일 문명권에서 찾기 힘든 경우 바우어가 취한 방법은 문화적 배경을 역사인문학적 측면으로 넓혀 더 다양하게 제시해 보는 것이었다. 그럼, 뜻밖에도 아주 멀리 떨어진 문명권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래서 그들 문명과의 교섭관계를 확인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기도 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독일의 미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이 제시했던 ‘층구조’(層構造, Schichtungsstruktur)이론이다. 그 이론의 해석구조는 이렇다. 여기 미술작품이 하나가 있다 하자. 작품은 전경(Vordergrund)과 후경(Hintergrund)이 있다. 전자가 감성의 단순한 요소, 즉 형태와 색채에 관련하는 반면, 후자는 보다 깊고, 보다 심오한 요소에 집중한다. 후자는 다시 네 개의 층으로 나뉘는데, 첫째, 3차원적인 것, 둘째, 생명력, 셋째, 심리적인 것, 넷째, 정신적인 것 등이다. 이에 대한 하르트만 본인의 설명.

 

“후경은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초상화의 전경 배후에서 나타나는 것을 더 가까이 관찰한다고 하면, 우선 첫 번째 층에서는 그려진 인물의 순순히 외적인 측면, 즉 물적인 것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서 단순한 전경의 이차원성에 대립된 삼차원이 나타난다. 그 다음에 비로소 생동감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생동감이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서 다시금 심리적인 존재,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치 생명체에서 얼굴표정, 전체적 형상, 거동, 태도 등에 의해 만나게 되는 내면적인 것이 나타난다. 더 나아가서 얼굴표정 속에 감춰진, 예컨대 렘브란트가 그의 초상화에서 깊이 있게 표현해낼 줄 알았던 인간의 운명 같은 것이 드러난다. 그림에서 관념적 측면으로 나오는 이 운명성 역시 가장 최후의 층은 아니다. 이것을 넘어서서 우리들 모두에게 적합한 보편적 인간성이 두드러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후경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인간의 정신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작품에 이입된 작가의 창의적인 정신일 것이다. 예술작품에서 도출된 그런 미의 목적과 정신의 재인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살아있는 정신과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을 겪게 되며, 마침내는 작품의 해석에 이르게 될 것이다.(권영필,『미적 상상력과 미술사학』,253~256쪽 참조)


두 이론이 문화예술교육 방법론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들 이론에 다양한 문화예술, 즉 탈춤이나 판소리, 우리 옷이나 가구, 심지어 한옥과 같은 건축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이론이 예술작품의 의미만이 아니라 작가의 창작의도, 문화적 상관성, 그리고 인류의 정신까지도 파악하려는 매우 심도 깊은 방법론이란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문화예술교육이 문화교육이나 예술교육처럼 교양 또는 기능교육과 상관없이 인문정신의 성숙을 위한 매개교육이란 점과도 밀접하게 상관한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을 적용할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 사실, 한국 사회 문화예술교육의 기형적인 확장과 비현실성은 철학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부재가 우리 시대의 문화적 경향성, 즉 ‘아비투스(습속)’의 전형인지는 모르겠으나(그렇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일 것이지만), 문화예술교육의 작동원리를 위한 ‘마이크로코즘(microcosm:소우주)’의 교육철학은 반드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철학을 위해 몇 가지 전제를 생각해 보았다.

 

철학을 위한 다섯 가지 전제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을 추구할 것인 가에 대한 생각이 먼저 전제되어야만 위대한 스승과 만날 수 있을 터. 나는 여기서 다섯 개의 키워드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①신화 : 참나(眞我)의 신령한 뿌리 ②영성 : 참나의 푸른 수액 ③역사 : 참나의 오래된 옹이 ④지혜 : 참나의 흰 그늘 ⑤공감 : 참나의 이웃 둥지 등인데, 이 다섯 가지는 서로 나뉘는 것이 아니며,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하나면서 전체다.

 

① 신화 : 참나(眞我)의 신령한 뿌리


신화는 우리가 상실한 원문명의 가장 웅숭깊은 철학이요, 역사요, 사상이다. 신화는 “세계의 발생, 신들의 계통, 세계의 구조, 인간의 발생, 세계의 종말” 등을 주제로 하며, 사상을 개념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시적(詩的)인 이야기에 의해서 형상화 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신성한 서술(敍述)’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에 관한 신성한 전승 설화, 즉 여러 현실적 존재인 우주, 인간, 동식물, 특정의 인간행위, 자연현상, 제도 등이 어떻게 출현했는가를 들려준다.


신화는 ‘참나’의 신령한 뿌리다. 문화예술교육은 문화와 예술을 통한 ‘참나’의 재인식과 그런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성찰적 사유의 심오한 후경에 신화가 존재한다. 신화의 뿌리는 곧 참나의 뿌리이니 반드시 우리는 신화와 신화소의 맥점을 찾아야 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제주도에는 1만 8천여의 신이 있고, 그 중 ‘세경본풀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자청비로 그녀는 대지의 신이고 곡식의 신이다. 또한 생산, 양육의 여신이기도 하다. 일생을 제주신화 연구에 바쳤던 진성기 선생은 “신화는 인습에서 성장한 여러 신들의 근본 내력인 동시에 그것은 그대로 제주선주민의 시초를 설명해 주는”것이라 설명한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한반도에는 우리가 파악하기 힘들만큼 많은 신화가 잠자고 있다.


단군은 그동안 신화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요하문명의 발굴로 신화에서 역사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황하문명보다 1천년이나 앞 선 문명으로 연구되고 있다. 동북 3성인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은 옛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터전이었다. 바로 이곳이 요하문명의 발굴지인데, 이제 우리는 신화적 상상력에서 다시 역사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응결하는 다양한 인문지리학적 상상력을 키워야할 것이다.

 

② 영성 : 참나의 푸른 수액


문화예술교육의 형식주의가 낳은 가장 큰 폐단은 영성은커녕 인성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사람다움’의 실현을 위해 기획된다. 그 ‘다움’은 잘 성장한 나무들의 품격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영성의 ‘씨알트기’를 통한 인성의 완성에 그 핵심과제를 두어야 한다.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가 준비한 최소한의 사회적 윤리라면, 문화예술교육은 학교와 사회가 결코 성취하지 못한 인문학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가 기획하는 자발적 윤리에 가깝다.


영성은 내 안에 잠자는 ‘참나’의 본질이다. 그것은 어두운 페르소나(Persona:가면을 쓴 인격)일 때도 있으나 아브락사스(abraxas)의 실체이기도 하다. 아브락사스는 참과 거짓, 선과 악 그리고 빛과 어둠 등 모든 양극적인 것들을 포괄하는 하나의 신성이다. 영성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영성의 ‘깨움’은 붉은 피를 푸른 피로 바꾸는 작업이다. 마치 애벌레가 고치를 벗고 나비가 되듯 육체를 영적 신체로 ‘탈아(脫我)’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 영성이 충만한 인간이 가장 사람답다.


③ 역사 : 참나의 오래된 옹이


나의 역사는 고사하고 아버지의 역사, 어머니의 역사, 할아버지 할머니의 역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증조부 증조모 고조부 고조모에 이르면 우리는 거의 공백상태다. 내 역사의 가장 큰 옹이가 어딘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그런 잃어버린 ‘나’의 역사를 체현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획될 필요가 있다. 나는 다시 너의 역사로, 우리의 역사로 넓어진다.


우리는 여러 문명의 역사, 국가의 역사는 기억하지만 지역의 역사, 가족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라는 주체에 대한 인식 없이 대타자에 대한 정체성만을 부르짖는 형국이 우리의 현실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위한 ‘인정 투쟁’에 나서야 한다. 즉 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나를 둘러싼 세계의 역사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와 가족, 나와 지역사회, 나와 조국, 나와 문명, 나와 세계, 나와 우주로의 끝없는 확장선은 끊임없이 ‘나’를 묻는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언젠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를 탐사했던 권영필은 실크로드와 한반도의 역사적 연관성을 떠 올리며 이런 말을 남긴바 있다 ; “그 옛날 사마르칸트까지 갔던 고구려인의 투지와 웅지를 상기하면, 우리는 못 이룰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보는 시야가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한마디로 역사를 통해 진취적인 기상을 가진 존재의 자기 확인이 가능해진다.”

‘나’의 확장선이 가 닿을 수 있는 세계는 무궁하다. 그러나 역사적 인식 없는 확장선은 종착지 없이 굴러가는 열차와 하등 다를 바 없다.

 

④ 지혜 : 참나의 흰 그늘


지혜는 울음과 웃음을 구분하지 않는다. 슬픔과 기쁨도 구분하지 않는다. 지혜는 지식의 충만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구분하지 않는 명석함에서 온다. 우리는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다. 무엇이 슬프고 기쁜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슬픔이 한이 없다가도 기쁨이 오면 금방 웃는다.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다.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강하다. 우리는 그 어둠에서 흰 그늘을 엿본다. 지혜는 그런 것이다. 참나의 내부에는 그런 감정의 빛 그늘이 가득하다. 그것들이 온전할 때 몸은 지혜로워진다. 그것들이 몸 안에서 ‘신명(神明)’을 이룰 때 지혜가 충만해진다. 시인 김지하는 신명을 ‘활동하는 무’라 했고, ‘율려(律呂)’라 했다 ; ‘율(律)’이란 운율 곧 질서, 코스모스를 말하며 생명의 펼쳐지는 힘을 말한다. ‘려(呂)’란 혼돈, 카오스를 의미한다. 음악적으로 본다면 2박이 ‘율’이며, 3박이 ‘려’이다. ‘흰 그늘’이라는 개념을 여기에 맞추어 보면, ‘흰’ 곧 밝음은 질서, ‘율’에 해당되고, ‘그늘’ 곧 어둠은 혼돈, ‘려’에 해당된다.
(이병창, 동아대 교수)


만약 우리 몸의 내부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때 지혜는 독선이 된다. 그래서 지혜는 시인의 시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문화예술교육은 시를 법문으로 하여야만 한다. 문화예술교육의 시작과 끝에 늘 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⑤ 공감 : 참나의 이웃 둥지


신화, 영성, 역사, 지혜가 있어도 공감하지 못하면 헛것이다. 다섯 개 철학적 키워드의 융합이 아니라 신화의 공감, 영성의 공감, 역사의 공감, 지혜의 공감처럼 각 개별적 키워드에 공감이 결합되어야 하며, 그것들이 크게 모여 공감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마치 큰 나무가 바람, 구름, 새, 곤충, 짐승들과 같은 온갖 자연의 생명을 그 안에 품듯이 문화예술교육도 그와 같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최근 펴낸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은 ‘호모 엠파티쿠스’라고 말했다.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에서 출발해야만 할 것이다. 공감은 문화예술교육 철학의 큰 울타리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상상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에 의하면, ‘상상의 공동체’는 특정한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서 구성되고 의미가 부여된 역사적 공동체이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실재로서 문화적으로 구성되고 경험되는 시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인류학적 명제를 깔고 있다.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상상의 공동체’를 근대적 국가주의로부터 우주적 지구주의로 확장하는 꿈을 꿀 수 있다. 이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우리 밖의 ‘상상의 공동체’와 만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제,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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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의 형상조각 연구

- 큐브의 개념적 리얼리티 분석과 형상조각론

 

김종길

 

 



Ⅰ. 머리말

 

1987년 서른두 살의 류인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983년부터 <홍익조각회전>과 <제2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긴 했으나 조각계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6년부터라 할 수 있다. 그 해, 그는 세 번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1987년,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조각을 세상에 알렸다. <'86향방전>(윤갤러리, 1986)의 인연으로 윤갤러리에서 첫 초대개인전 <'86향방초대전>을 갖게 된 것. 그로부터 1998년까지 네 번의 개인전과 예순 여덟 번의 단체전을 치렀다.

1986년부터 1998년까지 10여 년간 지속된 그의 조각적 대상은 대부분 벌거벗은 남자의 육체였다. 설령 그것이 “원형으로서의 남성(MAN)”이 내재되었거나 혹은 그것의 표상이라 할지라도 ‘남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강렬한 힘, 그는 남자의 육체에서만 표출되는 ‘강렬함’을 원했다. 그 강함이 육체의 근육과 같은 표피적 단단함인지, 지배와 같은 상징적 권력인지 혹은 그 무엇인지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자’의 육체로선 미흡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초기엔 여체작품도 했었죠. 그러나 여체는 美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엔 충분하나 제가 의도하는 강렬한 힘을 표현하는 데엔 부족하더군요. 남체보다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미흡했었죠.”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그는 단순히 사실적 재현이나 심미적 형상추구 따위의 조각과는 거리가 먼 ‘표현적 리얼리즘’의 작품들을 쏟아냈다. 표현주의가 예술의 목적을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에 두고 선이나 형태, 색채 등은 그것의 표현가능성만을 위해 이용되었으며, 그래서 구성(구도)의 균형과 아름다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감정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무시되고, 왜곡은 주제나 내용을 강조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듯이, 그는 표현주의를 밑 개념으로 하는 리얼리즘 조각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1999년, 21세기를 눈앞에 둔 1월의 어느 날 그는 마흔 세 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한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분석함에 있어 학습기와 습작기를 대학/대학원으로 상정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는 기다렸다는 듯 탈교(脫敎)와 동시에 조각적 세계를 드러냈다. 모색기, 전성기, 완숙기와 같은 진화론적 세계구축은 그에게 없었다. 순환론이나 불교적 연기론과 같은 전통적인 철학개념을 적용하는 것 또한 무색할 만큼 그의 출현은 갑작스러웠고 또한 그렇게 사라졌다. 많고 적든, 로댕(조은정), 바를라흐, 렘부르크, 케테콜비츠(최태만), 자드킨, 만주(류인), 김복진, 권진규, 김광진(최열, 최태만)과 같은 선배들로부터 예술적 세례를 받은 것이 분명하고, 그 만큼 격정에 찬 에너지를 조각에 응결시켰다. 한 순간의 폭발이었다. 그가 남기고 간 조각들은 그런 응결과 폭발의 증거들이다. 그러니 삶의 연대기를 나누고 나눈 것의 의미를 더해서 ‘작가/작품’의 입론을 조직하기란 쉽지 않다.

그와 그의 작품에 관한 연구는 ‘요절’(최열)의 운명적인 삶에 대해 또는 ‘실존적 성찰’(최태만)과 ‘존재적 절망․고독’(조은정)의 조형적 메타포에 대해 주로 다뤄졌다. 동국대(조병현, 2000)와 한남대(임정혁, 2006)에 제출된 두 편의 석사논문도 조형분석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선행 연구자들의 열정과 치밀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류인은 네 번의 개인전을 통해 조각적 분출의 다각적 면모를 한껏 과시했는데, 그때마다 그는 인체형상에 ‘큐브(cube:입방체)’를 결합시켰단 점이다. 그러니까 그의 응결, 폭발의 역동적 조각형상이, 어떤 예술적 세례의 마그마로부터 끌어올린 “포용과 배반, 숭고함과 천박함, 관용의 너그러움 뒤에 감추어진 포악과 잔혹성, 존엄성과 비열함, 자유와 존엄의 의지가 지닌 무게에 비해 공기보다 가벼운 인간의 무력함, 욕망의 열락과 덧없음, 내면세계로의 끊임없는 응축, 약탈과 자기모멸로 향한 달콤한 유혹, 절망, 고립, 탈출, 의식의 진보 등” 카오스적 혼돈의 부조리한 인간현실이라면, 큐브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혹시, 큐브야 말로 그의 작품을 해제하는 실제적인 단서는 아닐까? 남자의 육체와 그것이 뿜어내는 강렬함 또한 큐브의 비밀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원고는 그런 의문 속에서, 류인 조각의 형상에 대한 비평적 분석보다는 육체를 결박하고 있는 큐브의 해석에 목적을 두고 쓴 것이다.

 

Ⅱ. 본론

 

그의 큐브는 사전적 정의처럼 정육면체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니다. 어떤 것은 길쭉한 좌대와 같고, 어떤 것은 몸을 옥죄는 덩어리처럼 보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억압, 굴레, 포박의 상징어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그런 인상으로는 큐브 본래의 개념을 간파하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큐브는 그의 조각적 방법론인 표현적 리얼리즘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로도 보이기 때문에, 큐브를 분석하고 해석함에 있어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필자는 먼저 10여 년간의 작품 중에서 큐브가 결합된 작품을 선별한 후, 그것의 형상성과 인체와의 결합구조를 분석하여 큐브의 개념적 리얼리티를 파악한 뒤 조각적 형상론에 접근하고자 한다.



 


1. 큐브의 형상성과 인체 결합구조

두 권의 도록에 실린 작품만을 대상으로 할 때 큐브가 등장하는 작품은 총 10점이다. 연도별로 보면, <밤-혼>(1986), <입산Ⅱ>(1987), <입산Ⅲ>(1987), <지각의 주>(1988), <尹의 辨>(1988), <尹의 辨Ⅱ>(1988), <그와의 약속>(1989), <정전停電Ⅱ>(1989), <급행열차-시대의 변>(1991), <동방의 공기>(1992) 순이다. 그 외 <그와의 약속>(마케트, 1988), <급행열차-작품스케치>에서도 볼 수 있다. 큐브는 작품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결합되어 있는데, 그럼 개별적 작품을 살펴보면서 큐브의 형상성과 결합구조의 의미를 탐색해 보도록 하자.

<밤-혼>에서 큐브는 뒤로 축 늘어진 육체의 등허리를 받치는 기둥이다. 큐브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데다 육체마저 큐브 위에서 주검처럼 걸려있어 불안하기 짝이 없다. 큐브는 등을 맞대고 있는 상단부 윗부분과 맨 아래 하단을 제외하면 붕괴 직전의 기둥일 따름이다. 기둥의 중간부위가 낡고 삭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육체는 생명이 소진된 거죽처럼 말랐고 팔 다리는 중력이 당긴 시위만큼 쳐졌다. 이 작품에는 절망의 뼈아픈 격통(膈痛)과 참혹한 상실, 그리고 죽음의 긴 그늘이 짙게 깔려있다.






<입산Ⅱ>의 큐브는 이마에서 명치까지, 귀에서 어깨까지의 두 면을 맞은편에서 똑같이 입방체로 그렸을 때 드러나는 사각의 매스(mass:덩어리)다. 거대한 두 팔과 머리만 있는 육체. 오른손으로 대지를 딛고 왼 손을 뻗어 앞으로 혹은 위로 상승하려는 이 육체의 중심에서 큐브는 형벌처럼 틀어박혔다. 마치 목에 찬 칼처럼 그것은 형벌의 도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나 큐브는 형벌도 형벌의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그를 둘러싼 어떤 세계와 관련이 있다. 예컨대, 그것은 그 자신 스스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관념의 덩어리일 수 있으며, 그런 강고한 관념들의 독재가 지배하는 위험사회 및 제도일 수 있다. <입산Ⅲ>는 <입산Ⅱ>의 연속장면처럼 보인다. 왼손으로 다시 대지를 딛고 오른 손을 뻗어 나아가기 때문이다. 최태만은 이 작품에 대해 “시시포스(Sisyphus)나 아틀라스(Atlās)처럼 숙명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삶의 고통의 표상”이라 했고,
큐브는 그런 인간을 포박하고 짓누르는 것이라 했다. 형벌이든 관념이든 혹은 위험사회의 현실이든 그것이 이 육체의 고통의 표상인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입산’의 큐브에 대한 그런 인식을 바꿔 그것을 예술가가 천형처럼 지고 갈 순수예술의 본령, 그것의 절대미학으로 상정해 보면 어떨까. ‘입산’의 육체는 인간의 근원적 표상이 아닌 예술가 주체라 생각하고…. 절대주의 주창자였던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Severinovich Malevich)는 흰 종이에 검은 정방형으로 절대적 관념의 순수 이데아를 표현했고,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자연물의 순수추상을 수평, 수직의 구조에서 발견했으며, 심지어 근대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조차 미학을 제도화 했으니 그 큐브에 대해 절대미학의 상징체로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 황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류인은 대학 4학년 때 “기하학적인 것에 유기적인 것을 융합해 형상성을 배제한 실험 작업을” 한 바 있고, 1980년대 한국 미술계는 순수, 참여논쟁이 활발하기까지 했다. 자,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큐브와 형상은 어떤 의미일까? 우선 류인의 일지를 살펴보자.
 

 


“(기하학적인 것에 유기적인 것을 융합해 만든) 작품들에선 표현의 불확실함과 왠지 겉도는 감을 느꼈습니다. 내용보다는 재료에 빠지기 쉽고, 또 주제에 대한 안일함이 생기게 되더군요. 현대미술이 지니는 일반적인 관념과 형식논리에 빠지는 것보다 나의 체질에 맞는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체를 소재로 한 형상성 있는 작품이 등장하게 된 건지도….”

 

그의 말대로라면 ‘순수’의 그것은 내용보다는 질료라는 재료에 빠지기 쉽고, 주제에 대한 안일함이 생긴다. 한마디로 그것은 ‘관념과 형식논리’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형식논리는 그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육체의 형상성에 집중했다. ‘입산’의 육체는 그런 류인의 형상조각론의 시론일 수 있다.

<입산>연작의 형상성은 <지각의 주>에서도 이어진다. <지각의 주>에서 큐브는 두 개의 기둥이다. <밤-혼>의 기둥이 가늘고 긴 것이었다면, <지각의 주>는 대지에서 굳건하게 솟은 온전한 사각큐브다. 두 기둥은 앞뒤로 나뉘고, 앞의 기둥 상반부에서 남자의 벌거벗은 육체가 두 팔을 벌리며 깨어나고 있다. 기둥이 대지에서 솟았듯이 그 또한 이 기둥으로부터 탄생하는 듯하다. 이때, 기둥 즉 큐브는 대지로서 생명의 모반(母盤)을 상징한다.






<尹의 辨>은 두 발을 120센티미터나 벌리고 선, 키 190센티미터 정도의 건장한 남자인데, 큐브는 얼굴을 감싼 두 손과 머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크럼을 짰다. 이 큐브는 <입산>연작의 큐브와 달리 H빔처럼 위아래가 뚫렸다. H의 아랫부분에 명치 위 어깨와 머리, 두 팔이 꽉 끼었고, 열린 윗부분으로 깍지 낀 두 손이 살짝 보일 뿐이다. 이 작품은 199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개최된 두 번째 개인전 출품작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아홉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尹의 辨>은 <급행열차-시대의 변>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을 터. 두 제목을 결합해 보면, ‘尹의 辯’은 곧 ‘시대의 변’이자 ‘급행열차’라는 것인데, 흥미롭게도 <尹의 辨>이 <급행열차-시대의 변>중 맨 마지막 인물과 동일인물이다. 더군다나 그의 큐브가 철로의 H빔과 동일한 H빔이고. 그렇다면 <尹의 辨>의 큐브는 어떤 속도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尹의 辨Ⅱ>는 동명이작(同名異作)이다. 발에서 손끝까지 똑 같은데, 손이 쥐고 있는 물체만 다르다. 한 쪽은 긴 사각의 큐브이고 다른 한 쪽은 H빔이다. <尹의 辨Ⅱ>의 큐브는 손이 쥐고 있는 큐브가 아니라 상반신 전체를 옥죄고 있는 각목이다. 12개 각목에 못을 박아 만든 비정형의 큐브에 거꾸로 쳐 박힌 육체, 찢기는 고통으로 말라서 비틀어진 두 발을 두 팔처럼 들고 호소하는 육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으로 부여잡고 있는 굵은 두 손. 발가락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두 손의 손가락의 근육과 마디마디가 소름으로 뒤틀렸다. 이 작품에 대한 시인 조용훈의 시적 묘사는 고통의 강도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그가 묶였다. 갇혔다. 가녀린 종아리와 허벅지는 이제 툭, 뼛가루로 부서져 날린 것이다. 가는 종아리에 대비되는 큰 발은, 이미 종말을 예견하고 전율한다. 그러니 포기하라. 고통은 인내를 조롱하며 속살을 유린하고 난폭하게 찢지 않는가. 저항은 오히려 고통을 연장시키고 끝내 추잡하고 비굴한 신음을 강요할지 모른다. 손이 그 통증을 대변하지 않는가. 유독 강한 손. 그러나 고통에 일그러졌다. 생의 한 끝을 잡으려고 안간힘이다.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칠수록 틀은 더욱 견고하게 속박할 것이다. 곧 고통의 강도만을 증언하고 육체는 이제 잘려 나가리라.”






미셀 푸코는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을 ‘생체 권력(biopower)’이라 했다. 그것은 마치 기계장치처럼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신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통제 메커니즘이다. <尹의 辨Ⅱ>의 큐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육체를 옭아 맨 육체의 감옥이며, 생체 권력이다. 그런 그가 고통을 인내하며 부여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속도다, 급행열차의 속도!

<그와의 약속>에서 큐브는 덩어리가 아닌 선(線)이다. 가슴 아래가 뚝 절단된 육체. 한 손으로 대지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내밀어 무언가를 청하는 손과 시선. 몇 개의 철근을 용접해 덧 댄 큐브는 이 육체의 지지대다. 큐브는 그래서 ‘그와의 약속’이 이렇듯 연약한 지지대에 의해 겨우 지탱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정전停電Ⅱ>의 큐브는 사지가 절단된 토르소 어깨 위에 틀어박힌 사각 프레임이다. 그 프레임에, 가슴에서 돌출된 육체의 얼굴이 있다. 류인은 “내 작품은 자연히 작품 내부에 갖추어진 심리적인 내면구조, 갈등, 억압된 상태를 내러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고, 또한 ‘스스로를 억압하는 인체’를 탐욕하기도 했는데, <정전停電Ⅱ>은 잔혹하게 절단된 육체가 기립하여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를 타전한다. 큐브는 저항과 응시를 속박하고 있는 강력한 틀 같으면서도 타전의 진정성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발산한다. 대립적이지 않은 역설이 그 내부에 있다.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큐브는 속도에 대한 강박증이고, <동방의 공기>는 <尹의 辨>과 <급행열차-시대의 변>의 창조적 합작에 의해 탄생한 해체적이고 분열증적인 큐브를 보여준다. <동방의 공기>는 <尹의 辨>의 육체와 같지만, 큐브는 <급행열차-시대의 변> 맨 앞쪽 인물과 그의 두 팔에 걸린 덩어리를 해체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목 없는 육체 뒤로 상반신을 덧붙여 이중인체를 만든 뒤 긴 쇠 파이프를 목에 꽂았다. 큐브는 육체로부터 이탈되듯 두 갈래로 쪼개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동방의 공기>야 말로 억압이나 굴레, 속박이 아니라 해방일 것이다.

 

2. 큐브의 세 가지 특징과 의미

열점의 작품에 결합된 큐브의 형상성과 결합구조 분석에 의해 추출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밤-혼> : 기둥, 뼈아픈 격통, 참혹한 상실, 죽음의 그늘

<입산Ⅱ> : 형벌, 형벌 도구, 지독한 관념, 관념독재 사회

<입산Ⅲ> : 숙명, 근원적 고통, 표상, 순수본령, 절대미학

<지각의 주> : 기둥, 온전한 사각, 탄생, 대지, 생명모반

<尹의 辨> : 스크럼, H빔, 시대의 변, 급행열차, 속도

<尹의 辨Ⅱ> : 동명이작, H빔, 각목, 비정형 큐브, 거꾸로 박힌 육체, 고통의 소름

<그와의 약속> : 선(線), 절단된 육체, 철근, 육체 지지대

<정전停電Ⅱ> : 사각 프레임, 심리적 내면구조, 갈등, 억압하는 인체,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

<급행열차-시대의 변> : 속도강박증, 해체적․분열증 큐브

<동방의 공기> : 이중인체, 이탈, 해방

 

이렇듯 다양한 작품의 키워드를 분류하고 묶어서 다시 몇 개의 특징으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순수관념의 추상과 현실리얼리티의 대응이다. <밤-혼>, <입산Ⅱ>, <입산Ⅲ>, <그와의 약속>이 여기에 속한다. 네 작품의 큐브는 각기 다르나 형벌과 같은 도구의 형상으로서 근원적 고통과 절망, 상실, 그늘로 상징된다. 이러한 상징은 1980년대 후반의 한국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그는 창작의 아이디어를 “화장실에서 신문을 보다가 관심 있는 문자를 오려서 이를 조합”하며 떠올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은정은 “아무리 무심한 상태에서 시작했다하더라도 신문의 사회면은 인간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매체라는 점에서, 또 언어를 분절시켜 얻는 이미지의 파편화는 그가 작품을 구조적으로, 언어분석적인 관점에서 시작한다는 측면에서 아주 흥미 있는 부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 또한 그의 작품이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깨우침이며, 살아있는 모습과 이유에 대한 되물음이며, 확인”이라 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입산Ⅱ>과 <입산Ⅲ>이 제작된 1987년의 한국현실은 어떤 현실이었을까? 그 1년의 사회정치사를 간추려 보면,

 

1월 14일, 박종철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치사. 2월 7일, 박종철 추도식 및 추도집회. 2월 8일, 김만철 일가 탈북 망명. 2월 12일, 국내 첫 에이즈환자 사망. 4월 13일, 전두환 특별성명, 4.13호헌 조치. 6월 9일, 연세대 이한열, 시위 중 최루탄 피격으로 의식불명. 6월 10일, 전국 22개 도시에서 박종철 고문살인 및 호헌철폐 규탄 시민대회, 6월 14일, 전두환, 안보관계 장관 및 군, 치안 책임자 회의 소집, 전국적 시위 해산을 위한 군 출동 준비 지시. 6월 25일, 김대중 가택연금 해제. 6월 26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평화대행진(6월 항쟁의 절정을 이룸). 6월 29일, 노태우, 관훈동 민정당사에서 6.29선언 발표(직선제 개헌 및 김대중 사면, 복권 수용). 7월 9일, 이한열 영결식. 8월 17일, 울산 현대그룹 6개 사업장 노동자 4만명 연합 가두시위. 8월 19일 전대협 결성. 8월 29일, 대전 오대양주식회사 사장 박순자와 32명, 용인공장에서 집단변사(오대양사건), 11월 29일, 바그다드발 서울행 대한항공 858여객기,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 승객 전원 사망.

 

연표를 줄이고 줄여도, 거의 매달 사건이 터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는 참혹한 절망과 상실, 죽음의 그늘, 지독한 관념과 그런 관념독재의 사회를 경험했으며, 이를 조각에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상징은 ‘순수관념의 추상’이라는 하나의 응집된 큐브로 완성되었다. 그는 순수관념의 추상이란 것이 탐미주의자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라며 그것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예술이 아름다움을 찾는 건 일종의 의무지만 탐미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 아름다움이란 것에는 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을 가치가 없습니다. 혼자만의 만족을 저는 싫어합니다.”라고. 그러므로 그의 조각적 ‘현실’은 그런 ‘추상’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고행에 가까운 ‘입산’이며, 절대적 ‘약속’이어야 했다. 심지어 그의 육체는 발목 잡는 모든 것이 절단된 두 팔이어야 했다. 그것은 또한 질료에 과도한 개념적 관념만을 쏟아 부었을 뿐 현실도피, 현실부정으로 일관했던 1980년대 추상조각에 대한 반기였으며, 그런 저항으로부터 형상조각의 진정성을 확보하려 했던 그의 조각적 결의이기도 했다.

둘째는 창조적 모반과 질료이다. <지각의 주>, <정전停電Ⅱ>, <동방의 공기>가 그렇다. <지각의 주>는 1990년 제9회 국전에 출품된 <아들의 하늘>에서 더 구체화 되는데, 최태만은 <지각의 주>와 <입산>연작, <아들의 하늘>을 헤르만 헤세의 소설『데미안』에서 아프락사스의 상징을 빗대어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류인의 아프락사스는 인간이 스스로 옭아놓은 생존의 올가미, 그 가위눌림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할 수 있다. 류인의 작품 속에서 한 건장한 청년이 박차고 나오려는 올가미는 그의 의식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있는 ‘생존의 당위성’이며, 또한 억압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향한 모반이자 그 위기의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세계의 파괴로부터 획득되는 새로운 생명’에 다름 아니었다. 육체가 아닌 큐브 ‘주(柱:기둥)’는 신세계를 위한 파괴된 세계이면서 동시에 신세계의 모반이다. 그것은 창조적 질료라고도 할 수 있다. 구약성서는 전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아들의 하늘>이 알(모반 또는 생령이 깃든 흙)로부터 깨어나는 생명의 본질과 연속성을 형상화 한 것이고, <지각의 주>또한 대지로부터 솟아오른 육체일 때 큐브는 창조적 모반과 질료가 된다. 그리고 그 육체는 새 생명이요, 해방이다. <정전停電Ⅱ>과 <동방의 공기>는 <지각의 주>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기둥이나 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전停電Ⅱ>의 큐브는 토르소와 거의 합일된 상태에 있고, <동방의 공기>는 조각조각 갈라지고 터져서 부스러지고 있으니 모두 ‘흙’의 상태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프레임과 갈등, 억압이 해체되고 흩어진 상태, 거기에 해탈의 육체가 있을 것이다.

셋째는 속도에 대한 저항이다. 그 속도는 생체권력, 즉 통제 메커니즘의 민주적 화해 없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것을 말한다. 1988년, 89년, 90년, 91년, 92년…, 한국사회는 숨 쉴 틈 없이 달렸다. 하치타 마유미(김현희)의 기자회견이 있었고, 동구권 국가 최초로 헝가리가 서울무역사무소를 개설했으며, 현대건설 노조위원장 서정의 납치사건, 한겨레신문 창간, 6.10민주화투쟁 1주기 기념대회 및 판문점 출정식,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특별위원회 및 제5공화국에 있어서의 정치권력형 비리조사특별위원회 구성, 철도 총파업, 광주전남지역 재야단체 108명 광주학살 진상촉구 연좌농성, 지강헌 등 탈옥수 일당 서울 북가좌동에서 ‘무전유죄 유전무죄’ 주장 끝에 사살, 전경환 구속, 농민 1만여 명 농협민주화 시위…, 그리고 중국 정부는 텐안먼 민주화 시위를 무력진압 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소련이 해체되었다.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오는 시대령의 미끄럼은 급했다.


<尹의 辨>, <尹의 辨Ⅱ>, <급행열차-시대의 변>은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의 일방적 독주, 군부독재정치의 반민주적 독주, 언론의 독주, 폭력의 독주, 개발의 독주, 죽음의 독주에 대한 ‘맞섬’이었다. 그러나 그 맞섬의 저항은 좌우의 불일치, 부조화로 치달아 갔으며, 그런 모순에 찬 세계인식은 극단적인 육체표현으로 제시되었다. 고깃덩어리 같은 육체는 H빔에 갇혔고, 두 발을 벌린 채 철로 위에 늘어서서 온 몸으로 맞섰던 육체는 텅 비었고, 악어 이빨 같은 손가락으로 빔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는 물구나무는 화석인류다. 그의 육체는 쇳소리로 우는 숯에 다름 아니다.

H빔은 근대화, 현대화의 한 상징이다. H빔의 출현은 세계 도시의 마천루를 형성시켰다. 에펠탑은 순전히 고강도 H빔만으로 세워졌고, 뉴욕의 많은 근대 도시들도 H빔을 뼈대로 세워졌다.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었던 최초의 네트는 H빔 철로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 가속도는 모두 철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1세기 현대 도시의 마천루는 아예 완전한 뼈대를 구축한 뒤 살을 덧붙인다. 거대한 배의 갈비뼈, 평야를 뒤덮는 아파트의 척추, 엄청난 속도의 고속철 정강이에 모두 H빔이 쓰인다. 그런 H빔의 문명 구조적 메커니즘은 멈출 줄을 모른다. 세 작품의 큐브는 그런 메커니즘의 굴레 속에 놓인 인간의 실존을 탁월한 기획력과 형상성으로 표현해 낸 것이다.

 




3. 큐브의 해석으로 드러난 류인의 형상조각론

류인의 조각은 큐브의 해석과 더불어 동시에 드러났듯이 구체적인 현실모티프에서 형상의 원형을 찾았다. 그의 조각이 특정한 인물 혹은 사건의 실체나 그 주체를 형상화 했다기보다는, 현실적 이슈에서 형상의 상징적 주제를 길어 올렸단 얘기다. 그는 관념적 추상이나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형상만으로는 격변하는 한국현실의 개념적 리얼리티를 표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상조각이야말로 시대와 역사, 현실의 조형적 리얼리티를 담보할 수 있는 그릇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 실체를 <입산>연작의 큐브 해석에서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입산>의 큐브는 일반적으로 억압과 속박의 굴레로 판단되지만, 예술가의 천형으로 받아들이는 순수예술에 대한 관념적 본령일 수 있고, 그는 그런 ‘순수예술의 본령’이란 관념을 깨부수고 형상조각의 강인한 육체를 제시하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형상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쉽게 그의 작업일지에서 그 단서들과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는 “이 고깃덩어리들은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라거나, “메마른 이 시대의 한 인간”이라 말하고, 그런 인간 형상의 추구가 “내가 살아있는 기준”이며, 또한 그런 형상이야말로 “인간의 복잡한 심리표현의 최적의 수단”이라고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실에 대한 깨우침”을 얻고 “이 땅의 현실이 주는 억압에 고통 받고 또 이를 이겨”내려 애쓰며, 그럼으로써 탄생한 조각들이 “충격적인 감흥이 곧바로 되살아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또한 주장한다. 그래서 그의 모든 조각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현실”로서 “내 이웃의 고통과 동 세대의 갈등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측면에서 그의 형상조각론은 철저한 당대 현실과 그 현실 속의 인간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현실부정이 아닌 현실긍정의 힘으로 살아있는 그 시대의 민중, 깨어있는 민중, 역사적 주체로서의 강인한 민중이 그의 형상조각이란 얘기다. 그러나 그것을 1980년대의 사회벽혁운동이 추구했던 노동자, 민중의 계급운동과 상관해서 분석하는 것은 다소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의 민중은 있는 그대로의 민중, 무엇으로부터도 한계 지을 수 없는 해방적 민중의 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시대와 역사, 현실로부터의 상징적 민중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그런 민중의 상징으로부터, 그 실체적 진실로부터 ‘실존적 인간의 표상’을 형상화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그런 민중의 표상으로서의 실존적 인간이 ‘육체의 해체’를 통해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 형상조각의 개념과 류인 조각의 형상성

형상조각은 사물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이때의 형상성은 ‘재현의 형식’뿐만 아니라 추상에 가까운 작품이라 하더라도 형상으로부터 전제된 작품일 때, 그 시대적 구체성을 인정하는 한에서 제한될 수 있다. 형상의 개념은, 표현주의에서처럼 작가의 관심이 사물의 재현이라는 형식의 문제보다는 내용에 보다 비중을 둔 경우이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작품이 ‘시대적 리얼리티를 내포하고 있는가’이다. 김성호는 그런 형상조각이 “재현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넘어서고, 사물의 본질에 육박하여 삶을 반영하는, 그래서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형상미술”이라고 정의할 때, 그것에의 온전한 접근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형상미술의 개념은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프랑스 미술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전쟁을 겪은 작가들은 사실적 재현만으로는 자신들이 체험한 그 참혹한 상황을 표현할 수 없었다. 비정형의 미술인 앵포르멜이 등장하고 새로운 리얼리즘 미술이 대두 되었던 것은 그런 시대적 상황이 존재했기 때문일 터이다. 파리에서 결성된 ‘옴 테므앵(Homme-Temoin)’이란 그룹은 그 출발점이었다. 그룹 명칭의 의미는 ‘시대의 증인’이다. 이 그룹의 발기인에 베리나르 로르주(Bernard Lorjou),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등이 참여했으며, 1948년에 창립전을 열었다. 비평가 장 부레(Jean Bouret)는 이 전시의 팜플릿 서문에서 “회화는 시대를 입증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전쟁의 공포나 전후의 실존적 분위기 속에서 전후 도시인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압박과 고독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조각이 그런 형상미술의 개념을 받아들인 것은 1980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작되었다. 형상조각에 앞서 사용되고 있던 구상조각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장르 분과개념으로 사용되면서 보편화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개념은 시대적 리얼리티보다는 재현의 조각 작품 전체를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즉 프랑스와 달리 우리 미술계에서 구상조각(넓게 구상미술)은 ‘재현성’그 자체에 한정되는 정적구조를 취해온 게 사실이며, 이는 모순에 찬 현실과 부조리한 현실을 내포하는 당대성의 조각을 적극적으로 형성하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다.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조각의 위기는 매체의 진부성이 아니라 시대성을 상실한 채 재현의 장식적 요소만을 추구하는 그런 ‘구상조각’의 세태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각에 있어 형상이란 본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미학적 개념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형상조각의 형상은 하나의 꼴이며 대상이며, 구체적 실상이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6~27)라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형상은 신의 형상을 빗댄 형상이다. 인간은 신의 모방된 형상이란 얘기다. 조각가의 형상추구는 이러한 신의 창조성에 대한 대리 욕망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생령이 된’ 사람의 형상에 다가가기 위한 조각가들의 열망과 추구는, 서구조각사의 전모를 밝히는 주요한 단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허버트리드는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나 그 외에 주술적인 용도와는 다른 의미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실존을 형상화하려는 수단으로서 조각을 필요로 했다고 한다. 이는 그리이스 신화인 ‘나르시스(Narcisse)’에서 살필 수 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 곧 자신에 대한 ‘심상(心象, idea)’을 외부세계에 표출해 보는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는 그가 이러한 주장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형상’은 ‘의식의 일부’라는 점이다. 그는 말한다. “인류가 그들 스스로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이미지가 시공을 초월하여 항상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이미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에 대해서 우리가 발전시켜 나가는 의식의 일부로서 보아야 한다.”


류인은 장 부레(Jean Bouret)가 형상미술에 대해 시대를 입증하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작품에 대해 전쟁의 공포나 전후의 실존적 분위기 속에서 전후 도시인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압박과 고독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듯이, 그는 1980년대라는 한국적 현실 속에서 민중들의 ‘정신적 압박과 고독’뿐만 아니라 시대가 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가했던 폭력적 징후들을 실체화 했다. 그것은 또한 그가 인간에 대한 ‘심상’을 외부세계에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예술언어이기도 했다.

 



나. 육체에 대하여

류인의 형상조각은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표현주의에 기반한 표현적 리얼리즘이다. 그의 표현주의는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육체의 왜곡과 변형은 기본이고 과감한 분절, 절단, 절단된 신체의 조합, 오브제 결합 등을 시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형상은 시각적 충격은 물론이고 주제와 내용까지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바로 거기에 그가 남자의 육체를 통해 드러내려 했던 ‘강렬함’이 있다. 그 강렬함은 시대의 모순에 맞섰던 인간의 실존적 자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육체의 두 속성인 존재와 의식을 구분하지 않고 합일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의 잔혹하게 해체된 육체는 형상성을 다각적으로 모색하려는 실험적 의지이면서 동시에 실존의식을 내재한 미학적 오브제이기도 한 것이다.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는 신체를 “자기보존과 생성의 욕망”이며, “능동적인 변용의 능력을 통한 부분들의 결합체”라고 생각했다. 들뢰즈(Gilles Deleuze)도 스피노자의 신체개념을 이어받아 전체와 부분이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듯이 신체와 기관 또한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유기체주의적인 신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에 따르면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오히려 유기체는 신체의 적이라 생각했다. 그가 제시한 ‘기관 없는 신체’는 기관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적인 신체’로 한정되지 않는 보다 폭넓은 변용역량을 가진 신체를 뜻한다. 그는 그래서 “신체를 유기적인 큰 덩어리로 만들려고 기관들과 필연적인 관계를 상정하는 유기체를 거부”한다고 했고, 그 이유에 대해 “유기체가 생명이 아니라 생명을 가두기” 때문이라 했다.


유기체주의적 관점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이는 플라톤(Platon)이었다. 그는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 비유하면서 관료, 시민, 노예, 검투사의 계급적 분할을 정당화하려 했다. 콩트(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는 플라톤의 신체론을 사회유기체론으로 이론화했다. 그러나 들뢰즈는 그런 사회유기체론이 사회를 유기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통박하면서, 유기체주의는 분리차별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스피노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 또는 한두 부분에 관계되는 슬픔이나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은 인간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다.”

류인의 육체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의 육체는 시민, 노동자, 자본가, 농민, 학생 등과 같은 어느 특정계급의 육체라 할 수 없다. 그 모두를 대변하는 대변자도 아니다. 그의 해체된 육체는 근원적으로는 생명을 가두고 있는 육체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며, 그렇게 시대와 역사의 주체들을 분리하고 차별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가 기하학적인 것과 유기적인 것을 융합하는 실험을 통해 ‘표현의 불확실성’에 도달했던 경험은 ‘가둠’이라는 자기 유폐적인 유기체 미학의 체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과감히 육체를 해체하여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보했던 것이다.

 

다. 큐브에 대하여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큐브>는 17,576개 살인미로의 방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여섯 명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정육면체의 방이다. 그들은 상대방을 모를 뿐 더러 그들이 어떻게, 왜 이 방에 오게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 그들은 곧 자신들이 마치 육면체의 색깔 맞추기 퍼즐처럼 모두 똑같은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감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섯 명의 사람들은 각각 경찰, 젊은 수학도, 여린 자폐아, 여의사, 전과자, 그리고 이 미로와도 같은 공간에 대해 말하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한 사내다. 이 정육면체의 방들은 각각 치명적인 함정이 된다. 그들은 모두 이 감옥 같은 방에서 나오기 위해 이 시스템보다 더 영리해져야만 한다.” 영화의 캐릭터 이름은 모두 감옥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류인의 큐브는 상실, 고통, 갈등, 억압, 해방에 관한 조각적 장치다. 그 장치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그의 많은 대표작들은 하나같이 육면체의 큐브와 결합되어있다. 조각적 형상으로서의 그 육체는 큐브의 미학적 개념과 상관없이 큐브와 동거한다. 부정과 긍정의 충돌로서 또는 어떤 숙명의 알레고리로서 큐브는 형상의 상징을 보완하고, 때로는 그 자체로 주요한 개념이 된다. 큐브에 갇힌 대부분의 육체는 그 큐브로부터 탄생, 자각-탈각, 탈주, 해방을 꿈꾼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자해충동’을 일으킬 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큐브는 육체와 완전히 결별할 수 없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즉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운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그로부터의 이탈을 꿈꾸지만 허락되지 않는다. 육체는 그래서 분열증적인 히스테리를 표출하기도 하고, 강박증에 사로잡힌 인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탈리와 류인의 큐브는 뼈아픈 격통과 참혹한 상실, 죽음의 그늘, 지독한 관념, 관념의 독재, 절대미학, 속도-강박증, 절단된 육체, 억압하는 육체, 묵시적 저항, 해탈적 응시, 이탈, 해방 등 공통의 키워드를 갖는다. 류인의 큐브가 결박적인 상태로 자주 등장하는 매스의 상태이지만, 그 상징으로 보면 나탈리의 감옥과도 같은 큐브의 비사회적 공간, 미로의 공간, 치명적인 함정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류인의 육체가 1980년대의, 아니 현대인의 실존을 표상하는 것이듯이 큐브는 현대인의 그 실존적 시스템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Ⅲ. 결론

 

류인의 조각에서 큐브는 단순히 인체 형상의 부수적 오브제라 할 수 없다. 그의 조형적 육체는 실존을 표상하기 위한 장치로서 큐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또한 의미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큐브는 육체와 더불어 다양한 형상태를 취하면서 육체의 형상성을 보완할 뿐만 아니라 독립적 구조로서의 상징을 구축하고 있다. 그것은 상보적이기도 하고 상충적이기도 하다. 상보와 상충의 양가적 의미는 큐브와 육체가 어떻게 결합하는 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재질과 상황에 따라 구분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큐브의 중요성은 그것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곧 류인의 전체 형상조각론과 연계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좀 더 치밀하고 계획적인 연구가 수행되어야 하겠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그의 조각이 어떤 관념적 형상, 신화적 형상이 아니라 현실리얼리티에 기반한 표현적 리얼리즘이란 결론의 도달이다. 선행 연구자들에 의해 단편적으로 언급되고 주장된 개념들이 이렇듯 자칫 간과될 수 있는 조형적 부분의 해석을 통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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