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겨울호

2010.10.28 14:06 from 분류없음

황해문화 겨울호를 위해 <행궁동 사람들>의 리뷰 원고 앞부분을 새로 고쳐썼다.




공감하라, 그래야 공존할지니

- 공공미술의 공공성과 ‘공감’의 뒷담화를 위하여

 

   

9월26일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에 이화마을의 날개벽화가 떴다. 방송이후, 이승기처럼 날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몰려들었고, 급기야 주민들은 벽화를 지우라고 작가에게 요구했다. 작가는 “다들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우리의 즐거움이 누군가의 상처와 불편을 담보했다”며 10월 4일 결국 벽화를 지웠다. 이 사건으로 공공미술이 뉴스의 이슈가 되었다. 물론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새천년을 맞아 ‘미술의 해’라고 호들갑 떨며 ‘공공적’ 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던 때가 벌써 10년 전인데, (위의 뉴스와 상관없이) 사실 최근에 와서야 공공미술의 진정성이 언급되는 듯하다. 중앙 정부 중심의 공공미술지원 사업이 지방 정부로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되는 양상이지만, 실제로는 공공미술이 아트레지던스나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들과 혼융되며 나타나는 ‘충격파’일수도 있다. 이제 와서 공공미술의 공공성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공공성의 핵심이 무엇인지, 왜 공공미술이어야 하는지 따져 묻는 것은 뒤떨어진 시대의식일 수 있으나, 어쩌면 이 시기가 가장 적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하는 존재, 인간


최근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주요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책의 정식 출간일이 10월 10일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쟁사회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심지어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생물/유전학자들이 최근 인간들의 공감의식을 가능케 하는 ‘공감뉴런’(empathy neuron.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에 주목했다.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아픔에 대해 ‘참 안됐다’하며 동정(sympathy)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다. 다시 말해,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의 동정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리프킨은 인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얘기이다. 이런 그의 주장은 다윈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다윈주의가 인간의 충동을 자신의 개인적 생존과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의 구현에서만 찾는 한계를 비판했다. 그는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예지했는데, 즉 ‘적자생존’과 ‘경쟁’, ‘부의 집중’을 부른 낡은 경제 패러다임 대신 이제 세계는 ‘협력과 네트워크, 오픈 소스, 경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제, 곧 ‘분산 자본주의’라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리프킨의 ‘공감’개념은 현 단계 한국 공공미술이 상실한 핵심어이다.

 

소통공간을 위한 미술,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근대적 미학개념으로 볼 때 불합치 개념이다. ‘공공’의 개념과 ‘미술’의 개념이 합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개념을 소유(컬렉션)와 향유(전시)의 차원으로 구분한 뒤, 향유의 개념에서 추출해 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다수의 공공이 소유하고 향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대미술관의 출현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성장하기도 했으나 그것은 미술관이었지 미술 자체의 공공성 담론과는 무관했다. 또한, 근대이전까지의 교회미술에서 공공적 개념의 미술활동을 살펴볼 수는 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율성을 획득했다. 미술의 종교적 창작활동(천정벽화, 성당 외벽 장식조각, 유리그림 등)을 21세기 공공미술의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교미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고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사회주의리얼리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34년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사실주의 묘사방법론을 취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자를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를 목표 삼는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한 미술활동은 구 소련이나 동독,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로파간다(宣傳, propaganda)로서의 공공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통치하의 로마에서 ‘신앙의 보급’(데 프로파간다 피데)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때의 라틴어 ‘프로파간다’를 말 그대로 ‘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상의 포교활동이 현재 프로파간다의 어원이며, 사회주의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단 얘기다. 그들은 공공적 공간에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한 벽화, 조각, 문장 등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 이념을 위한 미술이었지 결코 인민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의 공공성은 국가주의적 공공성에 다름 아닌 것이다.


주지하듯 공공미술(Public Art)은 공공의 대중을 위해 제작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이다. 한마디로 그 작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작용을 하며, 무슨 내용을 가졌던 간에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대중을 위한’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그 미술은 자율성과 상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렛은 미술계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어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서 공공미술을 생각해 냈다.


이후 공공미술은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 ‘스트리트퍼니처’, ‘환경조형물’ 등과 같이 일종의 오브제 설치미술로 이해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그 개념이 사회적 비판성을 내포한 미디어아트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제니 홀저(Jenny Holtzer)의 전자게시판 문자 작업과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광고판 작업, 건축물에 문명 비판의 영상을 만든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프로젝션 작업 등은 공공성에 대한 공간과 장소의 역할을 심화시키면서 ‘발언’의 심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공공미술이 실현되는 장소를 단지 물리적 장소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한다.

 

소통에서 공감으로


기업의 사회환원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이 사용되고(포스코는 포항시 공공미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 외 여러 유형이 있다.), 정부의 소외계층 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이 사용되며, 심지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을 투입하고 있다(문화부의 공공미술추진사업과 문전성시프로젝트사업이 그것이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안양시가 공공성 확장과 문화도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와 유사한 공공미술 지원 사업은 이미 전국적이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주도의 이런 공공미술이 과연 대중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주창하며 그 실천의 최전선에 있었고, 최근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도 참여했던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사회적 미술로서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잔 레이시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의 개념은 “참여에 기초하며, 폭넓고 다양한 관객과 함께 그들의 삶과 직접 관계가 있는 쟁점에 관하여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 전통적 또는 비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하는 모든 시각예술”로 1960년대의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열린 소통과 상호 작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는 공동체 예술을 꿈꿨다.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중시했고, 사회적인 현안들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미 우리시대에도 당면한 문제들인 노숙자, 실업, 에이즈, 증가하는 노년인구, 이민자, 성/인종 차별, 도시민들의 소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관심과 시대에 정합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작업 속에 융합시키면서 예술, 사업, 산업, 미디어, 노동, 사회사업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보다 현실에 뿌리 깊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 취했던 공동체 예술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미술에서 다뤘던 현안들에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도 그들과 유사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공공미술로서의 공동체 예술론에 덧붙여 ‘공감의 미술’이 되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이슈나 현안들을 공공미술의 의제로 설정한 뒤 공동체 예술로 저항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주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와 지역주민,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공감하는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은 결코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으로 등장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조형물과 무엇이 다른가. 기념비적 공간과 장소에 세워진 수많은 조각들, 공공적 장소라 불린 광장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환경조형물들, 공항과 지하철, 학교와 거리에 그려진 벽화들은 정치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교도적이며 훈육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수많은 공공미술조차 예술가들의 독단과 과잉 미의식, 허위에 가까운 공동체성으로 빚어진 쓰레기가 많다. 그런 것들에는 눈곱만큼의 공감의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공공미술은 공감의 미술이어야 하고, 그것을 지향해야 한다. 설령 융합과 충돌의 개념적 결과가 과거의 공공미술과 다른 새로운 공공미술일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공감’을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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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es in Progress

2010.10.28 13:54 from 분류없음

Memories in Progress

9.2-10.10

마이클슐츠갤러리

 

 

동학에서 식민, 해방, 미군정, 4.3, 전쟁, 5.16, 4.19, 독재, 산업화, 5.18, 대투쟁, 사회변혁, 문민, IMF, 국민, 참여, 그리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정치적 키워드는 우리 현실이 얼마나 격변했는지 일깨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 중의 하나는 억압, 통제, 감시를 견디지 못한 ‘기억’이다. 크고 작은 사회정치적 사건의 쌍방향 주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강제적으로’ 기억상실을 요구받았고, 그런 문제의식은 사회전체 기류를 형성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예술조차도 그런 폭력적 사회를 증언하지 못해 오랫동안 불임의 시대를 가져야 했단 사실이다.


봇물이 터진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1978년 현기영이 4.3항쟁의 북촌리 학살사건을 「순이 삼촌」으로 승화시켰고, 1980년 홍성담은 5.18민주항쟁을 ‘오월 판화’로 길어 올렸다. 1980년대는 시대, 역사, 현실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했고, 그 만큼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예술가들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기획하지 않는다. 탄압의 시대, 억압과 통제의 시대로부터 민주 자율성의 시대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개인의 정치성에 대해 말할 뿐 그것을 사회화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술에 있어 ‘정치적인 것’의 요구는 예술적 패션이거나 대중 상품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가라타니 고진은 1970년대까지의 30년 일본문학을 해체 분석한 후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포했었다. 문학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완전히 상실하고 대중 통속문학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마침표였다. 그러나 그가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문학을 발견하고는 놀라워했다. 당시 우리문학은, 아니 예술은 그런 주제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우울하게도 우린 고진이 선언했던 근대문학 혹은 근대예술의 종언을 받아 들여야 할 만큼 통속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무수한 개발, 재개발지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기억 지우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견뎌온 근대화의 사건들을 깡그리 ‘기억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기억 투쟁’은 학술적 언사일 뿐 현실에서 거의 실천되고 있지 않다!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한 달 여 동안 진행된 핀란드와 레바논의 두 작가 전시 <Memories in Progress>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한국전쟁 60년, 4.19혁명 50년, 5.18광주항쟁 30년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떠올리며 살펴 본 그들의 작품은, 예술이 ‘사건의 증언’ 이후 사회심리적 기억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예컨대, 현기영과 홍성담 이후의 2세대, 3세대 작가들이 1세대의 ‘증언예술’에서 더 나아가 현대사의 사건들을 어떻게 환유해야 하는지의 지평을 예시하고 있단 얘기다. 그것은 1911년에 태어나 세계전쟁의 잔혹한 공포를 체험한 뒤 인간을 근원적인 악으로 제시한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의 예술세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상륙한 소년들의 원시적 삶에서 인간사회의 이기적 집단성과 폭력성을 전체주의적 ‘계급사회’ 형성과 그 사회의 존속을 위한 ‘배제’의 숙청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야르모 마에킬라에


흥미롭게도 핀란드의 작가 야르모 마에킬라에(Jarmo Maekilae. 1952- )의 회화 작품은 골딩의 그런 남성주의 사회체제의 근원적 악을 소년들의 기이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소년들은 마치 골딩의 소설 속 아이들이 그들만의 계급사회를 구조화하면서 그 구조를 부정하는 아이를 배제했듯이, 회화 속 소년들 또한 일군의 무리를 형성하며 무언가를 사냥하고 부순다. 오래된 숲의 녹음과 평온한 빛이 번지는 아름다운 숲에서 그들의 섬뜩한 ‘놀이-퍼포먼스’는 충격적인데, 무인도의 그것처럼 인간의 파괴적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자연의 농밀한 영혼 속에서 펼쳐지는 소년들의 광기와 살해, 음모, 배제의 풍경은 그래서 숲을 삽시간에 불온한 안개 끝으로 몰고 간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이 우리의 아버지들이었고 그래서 바로 우리일 수도 있다는 반전스토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모하메드 사이드 발바키(Mohamad-Said Baalbaki. 1974- )는 그의 조국 레바논을 둘러싼 내전과 외전, 그리고 그로인한 난민과 유랑의 삶을 회화로 직조했다. 레바논은 그가 1살 무렵인 1975년부터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에 휩싸인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 게릴라와 이스라엘간의 무장투쟁은 레바논을 거의 황폐화 시키고 말았다. 그 자신 또한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었으며, 유랑을 체험했다. 그는 유대인 빈민가에서 인종과 종교적 삶까지 점령당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난민과 유랑의 상징으로서의 ‘더미들’로 형상화 되었다. 또한 오직 ‘외침’의 소리, 발언의 목청만을 가져야 했던 상황을 통해 그의 시대를 고백하고 증언하며,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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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형경 리뷰

2010.10.27 20:07 from 분류없음



<2010년 하반기 오늘의 작가 배형경-생각하다, 말하다>

10월 15일 - 11월 11일

김종영미술관


2004년, 당시 인사동 학고재에서의 개인전은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가 주제였다. 2001년 모인화랑 전시는 “부처를 닮다”였고, 1999년 금호미술관 전시는 “바라본다”와 “생각한다”였다. 그 이전, 1994년의 작품들은 “손과 발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했고, “거푸집에서 이제 막 생을 얻은” 형상들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의 작품들은 성장과 변이를 반복하는 듯하고, 그 사이에서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의 생철학을 탐색하는 듯하다. 아프락사스의 알이 탈각(脫殼)의 과정을 통해 새 몸의 신화를 실현하듯이 말이다.

그는 ‘바라 봄’과 ‘생각 함’의 존재 형상을 ‘부처’에서 찾았는데, 그것은 이미 1994년의 ‘덩어리’였을 때부터 시작된 그의 일관된 형상조각론으로 생각된다. 인간 형상의 궁극과 근원의 굴착지에서 그가 발견한 것이 곧 부처라는 얘기. 그러나 그렇게 탄생한 인간 부처는 종교적 도상도 아니고 상징적 모뉴멘트도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면서 부처이고 부처이면서 인간인 ‘人佛合一’의 어떤 것이었다. 부처에서 인간의 본질을 찾는 것인지, 인간에게서 부처의 본질을 찾는 것인지는 이후의 작업들이 다만 하나의 단서였을 따름이다.


1999년의 ‘생각한다’가 108개 나무상자 속 결가부좌 인물이라면, 2001년의 ‘부처’는 그런 생각의 집적이 만들어 낸 본질적 형상이었다. 그는 부처를 인간의 본질과 합일, 접목시켜야 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를 닮다”에서 청동부처와 투명한 플라스틱부처를 똑 같은 거푸집에서 꺼내 전시했다. 두 인물/부처는 욕망 없는 사람들의 신실한 소망으로 읽힌다. 온갖 잡상의 근원인 머리(佛頭)를 제거했으니까. 결국 그가 사람과 부처를 합일해 가는 과정에서 선택한 본질의 한 형상은 목 없는 반가사유상이었다. 2004년의 “인간은 태어나서, 살다 죽는다.”에 등장한 작품들은 그렇게 목이 없거나 벌거벗었고, 몸은 반가사유의 모습이다. 그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지에 놓인 것처럼 보이고, 또한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에서 깊은 침묵에 든 것으로도 보인다. 제거된 불두는 이곳저곳에서 뒹굴고 있다.

2010년의 ‘생각하다’와 ‘말하다’는, 다시 원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원점은 동일반복지가 아니라 상승하거나 더 깊어지면서 회전하는 사유지다. 나는 그 사유지에서 그가 드디어 십 수 년 간 찾아 헤맸던 ‘人佛’의 본질성에 근접했음을 발견한다. 주지하듯 그의 형상은 남녀 인간의 성체를 구분할 수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형상은 우리 내부의 본질적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가 추궁했고 탐색했으며 또한 악취의 껍질을 벗겨낸 그 형상은 그래서 순수형상의 실체이면서, 진리이다. 부처 형상이 남녀 구분, 합일을 따지지 않는 그 모든 것의 성체이듯이 그의 형상은 태초의 형상들로 기립해 있다. 이미 그 화두는 수년 전에 완성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그 이후, 그러니까 최근 몇몇 전시에 출품한 개별적 작품들에서 그런 형상들과 더불어 부적이나 나무 혹은 어떤 덩어리들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역설적인 결론일지 모르겠으나 그는 그가 집요하게 찾아 나선 본질로서의 형상이 이 현실의 모순과 실상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한 듯하다. 그것은 페르소나의 실체조차도 결코 완전한 진리일 수 없다는 현실적 장벽에서 비롯된다. 왜 인간은 운명적인 삶 속에 처해 있으며, 그것을 극도로 거부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하여, 그의 작품들에는 다시 어깨위에 머리맡에, 주변에 해소할 수 없는 ‘운명적’ 오브제들이 등장한다. 그의 쉼 없는 ‘생각’과 ‘말’은 그렇게 놓인 조각들의 침묵 속을 떠돌고.


배형경의 조각은 권진규와 김광진, 그리고 류인으로 이어졌던 한국 형상조각의 아름다운 계보이며, 특히 여성조각이 보여주는 심미성의 깊이를 가장 극적으로 표출해 낸 작품들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성취하지 못한 인간의 본질적 형상에 대한 증거들이며 그 실체다. 권진규의 작품은 인간본성이 조각을 통해 노출된 드문 경우였다. 그는 건칠 작업과 테라코트를 통해 외형의 페르소나가 사라진 격조 넘치는 불상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비구니’작품은 불상이라는 조형적 형식을 따르지 않고 사람 본래의 모습에서 부처를 끄집어냈다. 그러나 배형경은 권진규와 달리 한국 불상조각을 시작으로 중국과 일본, 인도의 간다라까지 넘나들며 연구를 지속했고, 동북아시아의 불교조각을 자신의 작품의 한 테제로 들여와 결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에 의해 사람의 몸이 부처 몸으로, 즉 불상으로 표현된 신성의 이미지에서 사람의 실체적 실존은 무엇인지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김종길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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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의 한국사회와 풍자의 ‘은유적 현실’

- 설총식의 동물 의인화 기법과 신형상 조각론

 

신형상 조각과 특징 : 현실적 은유와 풍자


2009년의 조각계를 개괄, 정리하며 나는 2000년 이후 한국 조각계의 한 특징이 신형상주의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신형상 조각과 신개념 조각은 2000년 이후 후기 신세대 조각가들에 의해 실험된 탈근대적 전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대적 지층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을 이룬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사회변혁 운동에 동참했던 민중미술로부터 비판적 현실주의의 미학을 전수받았고, 컬러텔레비전의 등장과 88서울올림픽,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현란한 이미지 속에서 ‘탈-모던, 탈-제도, 탈-권위’를 내세웠던 당시 청년작가 세대의 ‘신세대론’을 흡수했으며, 대안공간의 ‘얼터너티브 정신’을 형성했다. 또한 인터넷의 일상화와 글로벌 네트워크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세대론(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의 편협성을 확장해 글로벌 후기 신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현재)로 층위를 구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한국미술2010』(월간미술) 그리고 신형상 조각의 기수로는 이원석을 필두로 박장근, 설총식, 이종희 등을 내세웠다. 이들의 신형상조각론을 잇는 후기 신형상 조각이 현재,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에서 다양하게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신형상 조각의 특징은 근대 조각의 선구자 김복진에서 현대 형상조각의 계보를 잇는 권진규, 심정수, 최병민, 임송자, 김광진, 정현, 류인, 배형경, 박희선, 이원경, 구본주 등의 형상조각이 표출했던 존재에의 자각, 시대현실의 응축, 인간형상에 대한 심미적 깊이, 전통과 역사에의 침윤 등의 상징을 계승하되 새로운 조형언어로 전환하는 데에서 찾아진다. 그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첫째, 형상 외부의 시각적 장치가 화려해졌다는 점이다. 선배 세대들의 작품들이 형상성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인해 주제나 형상 모두 대체로 어둡고 무거웠던 것을 상기해볼 때, 이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밝다. 그것은 다양한 채색기법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존재와 시대현실에 대한 비판적 현실주의의 개념을 놓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논쟁적인 내용에서도 그렇다. 둘째, 은유와 해학적 요소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이다. 주로 인체형상에 대한 집요한 탐색과 변형, 파괴를 통해 ‘발언’했던 앞 세대와 달리 이들은 우화적 형상을 곧잘 도입한다. 우화를 통한 현실적 은유와 풍자는 이전 조각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신형상주의 조각의 보편이다. 셋째, 위의 두 특징을 잘 드러내기 위해 작가들이 즐겨 취하는 방식인데, 전시공간연출을 극적인 구조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개별적인 한 조각의 상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천착했던 독립적 형상성에서 군상이나 집단 혹은 스토리텔링에 의한 극적 장치를 구상한 뒤, 이를 전시연출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관객과 더불어 소통하려는 ‘참여적 적극성’이 아닐까 한다. 설총식의 경우, 위의 세 가지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과정을 통해 여기에 이르렀을까?






모순에 찬 한국사회의 풍자 : 동물 의인화


학생시절인 1994년 <거리미술전 전야제>에 참여하며 현실적 조형감각에 눈떴던 설총식이 1996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2년 첫 개인전을 개최하기까지의 여정은 “근본적으로는 나의 환경과 인간으로서 갖는 실존성,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변증법적 유물론적 시점”(첫 개인전 도록에 실린 작가노트)이라는 고백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러니까 1997년부터 2002년까지는 한국사회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구제금융을 요청하고 이를 극복했던 심각한 경제위기의 시기이다. IMF가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를 통하여 가맹국의 고용증대, 소득증가,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하기 위해 탄생하였다고는 하나 ‘세계무역의 안정된 확대’라는 세계화, 신자유주의 시대의 촉진은 결국 수출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는 한국경제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한국 자본주의가 졸속 성장 전략에 의해 기형적으로 비대해 진 상황에서 누적된 무역적자라는 허기를 견디지 못해 결국 기절초풍으로 쓰러진 형국이면서, 동시에 천박한 자본주의 졸부들이 그저 먹고살만해 졌다고 물 쓰듯 돈을 쓰다 쪽박 찬 스토리이기도 했다. 애면글면 죽어나는 것은 대다수의 민중들이었다. 자발적이든 타발적이든 수년간 지속된 강도 높은 경제개방과 구조조정으로 기업파산이 줄을 이었고, 그로인한 심각한 불경기와 실업사태는 한국사회가 어떤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하는지 되묻게 만들었다. 350만 명의 국민이 약 21억 3천 달러어치의 금을 모았던 이때의 기적적인 사건은 사실 기적이 아니라 못난 국가를 탓하지 못한 민중들의 뼈아픈 통한일 터.


1980년대 후반, 민중미술의 사회변혁운동과 1990년대 후반의 자본주의 세계화 모순을 스무 살과 서른 살의 나이에 겪어야 했던 설총식은(그는 1968년생이다.), 그가 대학시절 학습했던 ‘변증법적 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 dialectical materialism)’으로서의 세계를 피부로 인식하게 된다. 한 마디로 그것은 모순에 찬 세계의 사유철학인 변증법의 논리로서만 해석 가능한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와 역사, 그리고 그 세계 내의 자기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통찰이었다. 가족의 절대적 가치를 위해 힘겹게 자신을 낮춘 어느 청소부의 초상을 통해 숭고의 미를 표출한 <청소부 K씨 가정을 위한 중도>나 IMF 직전의 실직자가 벌거벗은 자신을 상품으로 내 놓은 <Sale '97>, IMF를 아버지들의 세대인 ‘기성세대’의 처절함으로 상징화 한 <비명>, 세기말의 불안과 실존적 두려움을 탁월한 형상성으로 묘파한 <세기말 비가>, 그리고 샐러리맨의 한계상황을 자본의 낚시 줄에 걸린 물고기로 은유한 <무제>는 바로 IMF전후의 한국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한 수작들이며, 이때 이미 그의 신형상 조각의 조형언어가 형성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타 조각가들에 비해 우화적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그의 비장의 전술, ‘동물 의인화’를 통한 인간 풍자의 조형작품들이 눈에 띄는 것이다. 예컨대, 무한 경쟁사회의 기득권 싸움을 양장입고 꽉 다문 표정으로 묵묵하게 앉아 있는 두꺼비형상에 비유한다거나(<자리>), 북어대가리처럼 입을 쩍 벌린 채 낚시 바늘에 꿴 샐러리맨 물고기들이 그것이다(<무제>). 이후, 그는 구본주식 형상조각에서 벗어나 그 자신의 독자적 작풍(作風)이랄 수 있는 동물 의인화 작업을 심화시킨다. 참, 그가 실직의 시대를 풍자했던 첫 개인전의 주제는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였다(<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한다>(2002. 관훈갤러리 신관 2층).

 




은유적 현실 : 인간 사회학과 비판적 현실주의의 뼈대


첫 개인전을 치룬 뒤, 그는 IMF와 더불어 급속하게 상실해 가는 ‘가장의 권위’에 대해 고민한다. 21세기 벽두부터 언론에 오르내린 40대 가장의 실직과 명예퇴직(일명 명퇴), 스트레스로 인한 과로사, 결코 포기하지 못하는 흡연, 살아남기 위해 줄타기의 명수가 되어야 하는 이 기인들의 모습은 IMF를 건너 온 멋진 투사들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렵게 살아남았던 직장은 그들의 존재감을 부담스러워 하고, 겨우 견뎌낸 가족의 빈곤은 날로 커져만 가는데 그들이 가야 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그는 <자리 만들기>(2004. 관훈갤러리 특별전시관)라는 주제어를 끌어 올려 두 번째 개인전을 치른다. 다섯 유인원으로 분장한 다섯 아버지의 형상은 이 시대 가장의 당당한 풍채(風采)가 아니라 자기 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혹은 자리 확보를 위해 온갖 처신을 구사하는 슬픈 초상이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처연하다. 심리적인 불안감과 공허함이 가득한 눈빛이 그렇고, 공세적이지 못한 꿈 뜬 동작이 그렇다. 그들은 거울을 보듯 세상을 보고, 구경꾼이나 방관자처럼 무언가를 관망하며, 아무것도 없는 중심을 향해 으르렁 거린다. 그들에게서 ‘남성 중심사회’ 권력자의 폭력적 위풍당당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5년, 첫 개인전에서부터 선보인 동물 의인화의 전 작품을 전시한 <은유적 현실>(갤러리 도올)은 그가 그렇게 은유하고 풍자해 온 현실에 대한 재성찰의 계기였다. 이미 전시 제목에서 예감했듯이 그는 자신의 동물 의인화 작업을 ‘은유적 현실(Metaphorical Reality)’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단순히 우화적 상상이나 가벼운 풍자, 해학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첨예한 현실이란 사실을 잊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은유적 현실’은 우화이되 인간 사회학의 관점을 상실하지 않으며, 풍자이되 비판적 현실주의의 개념적 뼈대를 놓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은유적 현실’이라는 개념정립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작업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2007년, ‘은유적 현실’에 ‘콤플렉스(Complex)’를 부제로 단 관훈갤러리 신관에서의 제3회 개인전은 해석 가능한 현실적 풍경을 역시 동물 의인화를 통해 재현했다. 작품들은 이전보다 더 컬러풀해졌고, 의인화 한 동물들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The walker>만 보더라도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그가 채색에 매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곰에서 고양이, 제비, 사자, 뱀, 부엉이로 이어지는 동물 형상의 선택은 메타포가 훨씬 깊어졌음을 말해준다. 곰이 부지런한 뚜벅이를 표현한 것이라면, 고양이는 날렵하고 간사한 것을, 제비는 ‘철새 정치인’이라 부르듯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집시를, 사자는 남성성에 깃든 성적 욕망과 폭력을(뱀은 사자의 성기로 표현된 것이다), 부엉이는 밤을 잊고 노동하는 예술가를 은유한 것이다. 각각의 동물들이 내포한 은유적 상징을 적절한 동세와 표정으로 형상화 한 것도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지금 여기, 한국사회의 자화상


2010년 올해 전시는 2007년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지점에 서 있다. 그러니까 ‘은유적 현실’의 대주제 아래서 그가 이번에 탐색한 세부주제는 ‘욕망과 관계’이다. 이 세부주제를 그는 다시 세 개의 이야기로 나눠 표현했는데, 첫째는 물질 만능주의, 속물주의에 맹신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그린 것으로 카라칼이라는 고양이 낚시꾼이 물고기 인간을 낚는 것에 비유했다. 그 옆으로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사마귀(양귀비를 연상케 하지만 결단코 그녀의 풍만한 여체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의 농염한 자태가 ‘유혹’의 상징으로 서 있다. 첫 개인전에서 등장한 바 있는 물고기 인간이 여기에서 재등장하는 재미가 있다. 그는 마른 북어처럼 거의 무방비적 상태로 걸려 있는 <무제>와 달리 여기선 낚시 바늘을 향해 두 손 벌리고 달려드는 ‘욕망’의 화신들로 묘사하고 있다. 물질이 곧 세계의 전부인 것처럼 알고 살아가는 현 시대의 인간상에 대한 비참한 통찰일 것이다. 우리는 세대를 호칭할 때 해방동이 세대, 베이비 붐 세대, 4.19세대, 386세대, X세대와 같은 어법을 통해 한 세대의 역사성과 그 시대현실의 정치성 등을 상상할 수 있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88만원’ 세대와 같은 자본 상징어가 통용되면서 비정규직, 청년실업률, 최저임금과 같은 키워드로 그 세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세대들에겐 자본획득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며 진리인 것일까? 물고기 인간은 그런 청년 세대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하다. 둘째는 남녀의 삼각관계를 한 마리 여우(여자)와 두 마리의 늑대(남자)로 표현하고 있다. 관계로서의 여자와 남자는 늘 호의적이면서 동시에 적대적이다. 호의적인 것과 적대적인 것의 상대성은 사실 다르면서 같다. 늑대로 의인화 된 두 남자는 이 양면성의 실체라 할 수 있다. 그는 때때로 우호적이나 느닷없이 적대적 관계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우는? 그가 연출한 장면에서 여우는 남자들의 그런 관계의 바깥에 서 있다. 관계의 지형 안에 있는 듯하나 그는 독립된 자리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는 사실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이다. 세 번째는 시간에 대한 성찰을 다룬 것으로 사막여우와 나무늘보가 등장한다.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발을 디딘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막여우의 표정은 해 맑다. 느린 시간의 결을 오롯이 마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곳이 사막일 터인데, 사막여우로 형상화 된 인물은 그래서 마치 참선에 든 수도승처럼 그윽하다. 시계바늘 위에 올라 탄 나무늘보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유유자적의 세계를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설총식의 이번 작품들은 우리가 아직도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서 살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나는 해 맑은 사막여우에서조차 희망의 돛을 발견하지 못한다. 남북관계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더 큰 관계들은 적대적이지 못해 안달이고 청년 실업률은 위험수위에 육박하며, 사막을 향해 치달아가는 ‘폭도형’ 개발주의는 멈출 줄 모르기 때문이다. 시계를 바라고 앉은 사막여우와 나무늘보는 멸종의 도래에 대해 경종 울린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 공감의 연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사회, 공감의 언어를 상실하고 있는 사회, 2010년 한국사회의 자화상이 바로 설총식의 우화이며 우울한 풍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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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하라, 그래야 공존할지니

; 행궁동 사람들-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트워크화 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활동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戰意)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제로섬 게임은 끝나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 제레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중에서

 

 

경쟁사회에서 공감사회로


최근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정식 출간이 10월 10일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쟁사회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심지어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는 생물학자들이 최근 인간들의 공감의식을 가능케 하는 ‘공감뉴런’(empathy neuron.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에 주목했다.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창현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아픔에 대해 ‘참 안됐다’하며 동정(sympathy)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다. 다시 말해,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의 동정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리프킨은 인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얘기. 이런 그의 주장은 다윈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다윈주의가 인간의 충동을 자신의 개인적 생존과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의 구현에서만 찾는 한계를 비판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예지했는데, 즉 ‘적자생존’과 ‘경쟁’, ‘부의 집중’을 부른 낡은 경제 패러다임 대신 이제 세계는 ‘협력과 네트워크, 오픈 소스, 경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제, 곧 ‘분산 자본주의’라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리프킨의 ‘공감’은 현 단계 한국의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공공미술, 대중을 위한 미술


공공미술이란 개념은 근대적 미학개념으로 볼 때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근대,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개념은 소유(컬렉션)와 향유(전시)의 차원으로 구분한 뒤, 향유의 개념에서 공공성을 추출해 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다수의 공공이 소유하며 향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대 미술관의 출현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확장되긴 했으나 그것은 공공미술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또한, 근대이전까지 종교미술에서 공공적 개념의 미술활동을 살펴볼 수는 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종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율성을 획득했다. 미술의 종교적 공익활동(천정벽화, 성당 외벽 장식조각, 유리그림 등)을 20세기 공공미술의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교미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고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사실주의 묘사방법론(진실성과 구체성으로서)을 취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자를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를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한 미술활동은 소련, 구 동독,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로파간다(宣傳, propaganda)로서의 공공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통치하의 로마에서 ‘신앙의 보급’(데 프로파간다 피데)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때의 라틴어 ‘프로파간다’를 말 그대로 ‘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상의 포교(布敎)라는 ‘선전활동’이 현재 프로파간다의 어원이며,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단 얘기. 그리하여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적 공간에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한 벽화, 조각, 텍스트 등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위한 미술이었지 결코 인민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의 공공성 또한 현재의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공공미술(Public Art)은 장소, 기능, 내용적인 측면에서 공공의 대중을 위해 제작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이다.
한마디로 그 작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작용을 하며, 무슨 내용을 가졌던 간에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대중을 위한’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그 미술은 자율성과 상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1967년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렛은 미술계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어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서 공공미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후 공공미술은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 ‘스트리트퍼니처’, ‘환경조형물’ 등과 같이 일종의 오브제 설치미술로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그 개념이 사회적 비판성을 내포한 미디어아트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제니 홀저(Jenny Holtzer)의 전자게시판 문자 작업과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광고판 작업, 건축물에 문명 비판의 영상을 만든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프로젝션 작업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공공미술 개념은 공공미술이 실현되는 장소를 단지 물리적 장소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하며, 그런 의미에 맞는 작품으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 일시적 작업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공성에서 공감의 미술로


기업의 사회 환원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이 사용되고(포스코는 포항시 공공미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 외 여러 유형이 있다.), 정부의 소외계층 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이 활용되며(문화부는 공공미술추진위를 발족시켜 지원 사업을 펼쳤다.), 심지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을 투입하고 있다(문화부의 문전성시프로젝트사업이 그것이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안양시라는 지방정부가 공공성 확장과 문화도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와 유사한 공공미술 지원 사업은 이미 전국적이다. 21세기 초입에서 한국 미술지형의 화두는 당연히 공공미술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공공미술이 대중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나는 최근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잔 레이시의 사회적 미술로서의 ‘새 장르 공공미술’에 주목하고자 한다. 수잔 레이시의 ‘새 장르 공공미술’의 개념은 1960년대의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열린 소통과 상호 작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는 공동체 예술을 꿈꿨다. ‘새 장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중시했고, 사회적인 현안들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미 우리시대에도 당면한 문제들인 노숙자, 실업, 에이즈, 증가하는 노년인구, 이민자, 성/인종 차별, 도시민들의 소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관심과 시대에 정합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작업 속에 융합시키면서 예술, 사업, 산업, 미디어, 노동, 사회사업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보다 현실에 뿌리 깊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 장르 공공미술’이 취했던 공동체 예술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미술에서 다뤘던 현안들에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도 그들이 주목했던 키워드와 유사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공공미술로서의 공동체 예술론에 덧붙여 ‘공감의 미술’이 되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이슈나 현안들을 공공미술의 의제로 설정한 뒤 공동체 예술로 저항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주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와 지역주민,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공감하는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은 결코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다.


21세기 벽두의 활기찬 공공미술 활동이 은연 중 어떤 장벽에 부딪힌 것은 공감의 연대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기업이든 정부든, 예술가 주체든 지금까지의 공공미술은 기금 대비 기대효과를 충족하는 일종의 ‘사업’으로서의 공공미술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뉴타운 재개발 구역의 철거지에서 혹은 탄광촌에서, 쪽방촌에서 그리고 쇠락한 포구에서 펼쳐진 공공미술은 예술의 시각적 장치를 극대화할 뿐 그 곳 주민들의 상실감을 ‘공감의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상실의 정서를 나누면서 공감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예술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공공미술은 공감의 미술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으로 등장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조형물과 무엇이 다른가. 기념비적 공간과 장소에 세워진 수많은 조각들, 공공적 장소라 불린 광장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환경조형물들, 공항과 지하철, 학교와 거리에 그려진 벽화들은 정치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교도적이며 훈육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나는 한국의 많은 공공미술프로젝트조차도 예술가들의 독단과 과잉 미의식, 허위에 가까운 공동체성으로 빚어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눈곱만큼의 공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감의 미술을 표방하라!


‘행궁동 사람들’은 공감의 예술을 표방했다.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내용이 공감의 개념을 얼마큼 실천해 냈는가는 일단 차후의 문제로 놓더라도 기획의도가 그것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들의 활동에 주목했다.

행궁동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철거 예정지였다. 화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수원시는 화성의 내부 도심지역을 옛 화성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행궁복원과 더불어 그 주변 일대는 우선 대상지가 되었다. 그 계획은 행궁복원과 함께 일정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행궁동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알고 있었고, 시가 건물이나 땅을 매입하고 나면 곧 떠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프로젝트가 진행된 ‘대안공간 눈’주변의 행궁동 골목은 얼마동안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내력은 다음과 같이 기획취지에 반영되어 있다.

 

“수원시 행궁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안의 행정구역으로, 문화재 보호와 화성 성곽 복원에만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인해 행궁동의 주거형태는 매우 낙후 되었으며 확정되지 않은 보상에 대한 기대와 실망 속에 삶의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프로젝트는 세 개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기획전시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 둘째,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 셋째,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다.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은 행궁동 사람들의 “삶을 마을 곳곳에 작품으로 표현해 유물로서의 화성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화성을 탐색”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나 대부분 벽화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그중에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껠 심브리의 작품에 감동했다. 그는 자신이 그려야 할 주제와 장소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은 실제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벽화는 놀라운 상상력만큼이나 퀄리티가 높았다. 수원(水原)이 물의 도시임을 착안, 금보여인숙 출입구 양옆의 긴 담에 한 마리의 물고기를 그렸고,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드는 오래된 담에는 작은 물고기들과 큰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거대한 은빛 물고기와 흰 새는 1970년대 풍의 세월이 가라앉은 고즈넉한 이 동네의 명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 여인숙 주인과 만나기 위한 그의 긴 기다림은 공감의 에피소드이기도 할 것이다.


그 외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강제욱, 김성래, 오상미, 최혜정&김보라, 한애숙, 틸만 크릭(독일)의 작품들도 인상 깊었다. 대체로 골목의 벽화 프로젝트보다 나는 이 기획전시가 공감의 미술을 잘 구현해 냈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영상작업을 제출한 오상미의 경우 첫 공공미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대한 소소한 장면들, 사람들에 주목하여 지역성의 향취를 잘 길어 올렸고, 최혜정&김보라는 경로당 할머니들과 함께 ‘늙음’의 상실감을 삶의 원숙기에 핀 진향의 꽃으로 치환함으로써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틸만 크릭이 인터뷰한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가 아님에도 ‘마을 뉴스’로 인식되었다. 사실 주요 언론이 다루는 이슈는 살인과 폭력, 사기, 어떤 화제들에 집중된다. 일상의 대중적 삶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틸만 크릭의 소소한 인터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행궁동이 주목한 이슈일 수 있고, 그들의 뉴스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마을 뉴스라는 새로운 지역 언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마을 뉴스와 같은 최소 단위의 지역적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애숙이 그린 연필 초상화 또한 공감의 언어였다. 그의 인물화는 전신사조의 진실성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그들을 그리기 위해 자주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삶을 보았다. 담백하게 그린 인물들의 표정 안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결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애숙은 작업과정을 고백하며 자주 눈물을 내 비쳤는데, 그들의 삶이 그의 삶에 어떤 공감의 파장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은 작가와 미술대학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프로젝트 팀을 꾸려 1인의 아트디렉터 지휘아래 공공미술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행궁동 주민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동네 입구, 골목, 담장, 옥상, 대문 등에 작업을 설치했다. 이정표, 문패, 우체통 같은 것들이 만들어 졌고, 작은 꽃밭과 벽화도 있었다.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는 작은 전시와 그야말로 개막당일 잔치로 실현되었다. 참여 작가들과 행궁동 주민들, 경로당 어르신들, 그리고 공무원, 관객들이 어울린 이날의 느낌은 이들이 얼마나 공감의 언어를 중시하는 가를 잘 보여주었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서 ‘행궁동 사람들’이 공감의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공공미술이 ‘공감’을 주요한 화두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궁동 사람들’에서 나는 그것의 작은 동기와 실천들을 확인했을 뿐이다. 프로젝트평가회에서 작가들과 기획자 모두 그들이 수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과정으로서의 미술일 수밖에 없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결과론에 집착하고 평가하는 한국의 현실이 도마에 올랐고, 특히 ‘과정’을 과정에서 풀지 못한 한계를 많이 지적했다.

‘행궁동 사람들’은 끝났고 작품들은 현장에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궁동 사람들’과 같은 공공미술이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기획자의 생각에 따라 공공미술은 천차만별, 천태만상이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적’으로 변질되지 않고 새로운 미학을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선 근원적으로 그것이 ‘공감의 미술’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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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공간에서의 실존의식, 그 사회적 풍경 

  


이창훈의 ‘타인의 방’은 전시공간을 획정하는 출입문 안팎의 뚜렷한 경계 짓기를 통해 21세기 고도자본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가 ‘위험사회(risk society)’의 이면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들은(그것은 나일 수도 있고 모두일 수도 있는 중층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일 터) 그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통제/억압/감시하거나 유폐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근대의 탄생을 감시와 처벌로 보았고, 판옵티콘(panopticon)의 구조 즉 감옥구조의 분석을 통해 그 실체를 해부했던 미셸 푸코와 닮았다. 통제의 주체가 다를 뿐.


근대사회가 지향했던 것이 사회가 개인을 통제하는 방식이라면, 이창훈의 ‘방’은 개인이 사회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그는 정미소 공간의 입구(문)에 다시 문틀을 놓은 뒤 그 문틀의 내부를 벽돌로 채워버림으로써 완전한 고립을, 경계 짓기를 시도한다. <입구-prologue>는 들어갔으나 나올 수 없는 상징적 체험을 관객에게 유도하는데, 내가 나를 그 안으로 인도하는 순간, 사회는 나로부터 갇힌다.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론’이 기후변화나 금융위기, 테러리즘과 같은 현대사회의 ‘내재적 위험’에 주목한 것이지만, 위험사회의 위험조건들이 단지 그것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사회는 근본적으로 위험사회일 수밖에 없다. 위험조건은 우리의 삶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그는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위험사회의 글로벌화를 경고하고 있다. 이창훈의 ‘방’은 그런 위험사회의 확장성이 불러 온 광장공포에 대한 예술적 장치일 수도 있다. 우리는 방을 나서는 순간부터 사회적 규율과 제도 속에 놓인다. 근대이후, 사회는 개인의 자율과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한 감옥으로 돌변해 왔기 때문에 광장의 민주성을 상실한지 오래다. 현실적 조건을 부정하지 않는 한에서, 우리가 이 사회를 탈출하는 것이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하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방 밖에서 위험하고, 방 안에서 더 쉴 만하다. 사회를 탈출하는 길은 ‘타인의 방’에서만 가능하다.


<Net>는 도시의 길을 그물로 바꾼 것이고, <A City>는 그런 길을 지운 것이다. <Net>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울리히 벡이 주장했던 위험사회의 보이지 않는 위험조건에서 비롯된 듯하다. 흥미롭게도 그는 그런 그물(잘 짜인 도로)들이 삶의 조건을 더 희망차게 하거나 행복지수를 높이는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한다. 도시의 그 수많은 길들이야 말로 통제로서의 ‘가둠’을 극대화 하는 조직적인 망이기 때문이다. <A City>는 도로를 지운, 길이 없는 도시다. 길이 사라진 도시는 오직 빌딩 숲이다. 그것은 마치 망망대해의 작은 섬과 같다. 그렇다면, 그 도시는 위험사회로부터 자유로운가. 미셸 푸코에 따르면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감옥구조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논리를 발견했다.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감옥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외부와 차단된 감옥에서 죄수들은 엄격한 재사회화 과정을 반복하는데, 우리 사회도 이런 감옥의 운영원리와 일치하는 ‘감금사회’이며, 바로 그것은 또한 사회통제의 제1 원리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A City>는 감금사회의 실상을 보여주는 끔찍한 도시 풍경이다. 그리고 그 도시는 현대식 감옥의 원형인 판옵티콘과 다르지 않다. pan은 “넓은, 포괄적인”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접두사이고, opticon은 “보다”의 뜻이다. 감옥의 중앙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간수들이 죄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사회, 그 사회는 지금 여기의 현대도시인 것이다.


<조용한 풍경>은 민주주의의 한 상징인 국회의사당의 창과 문을 모두 지워버림으로써(그 의미는 창과 문을 모두 막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력의 비민주성을 풍자한다. 통제로부터 제도로부터, 그리고 감시로부터 개인과 시민의 자율성을 복권시키고 유포시키는 국회의 기능이 얼마나 상실해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 제스처일 수 있으리라. 국회는 판옵티콘의 전망대에 해당한다. 그들은(감시자들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가, 자유가, 평화가 위협받는 것을 감시할 의무를 가지며, 폭력에 대해 감시에 대해 모든 은폐된 규율들에 대해 제제할 권리를 가졌다. 그러나 그들의 책무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때 사회는 급격한 반작용을 겪는다. 세계는 혼란에 휩싸이고 욕망이 난무하며 개인을 짓밟고, 그 사이 일그러진 권력과 부패한 권위주의가 상승한다. 광장은 사라지고 소리는 잦아들며, 침묵은 방에 고인다.


그러나 이 모든 사회적 해석의 정치성은 이창훈의 경우 ‘개인’에게 집중된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그 자신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모두 정치적이라는 사회적 정의가 아니라면 이러한 해석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아니 너무 과장된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 이창훈의 미학적 문제의식은 그 지점에서 다시 출발한다. <Open Studio>를 보라. 이 작품은 그가 수원의 한 건물 지하공간에 물을 채운 뒤 배를 띄운 것이다. 사진 속의 지하공간과 정미소가 의미론적으론 다르지 않다. 실제로 그는 정미소에 배 한 척을 띄웠다. 그가 고백하는 것처럼 그것은 표류하는 자아일 수도 있고, 고립에 대한 시각적 장치일 수도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들처럼, 자신의 존재적 자각을 위해 오직 한 그루의 나무만을 맴도는 그런.




이창훈은 미셸 푸코식 후기구조주의에 대한 탐색이나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미학적 현시로서의 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작가로서의(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그것이 무엇이든) 실존의식이다. 언어의 통제는 곧 <Babelstreet>의 경우처럼 소통 불가능한 사회의 단면이고, <벽>은 그 단면의 안쪽이다. 독일과 한국에서, 삶이 그에게 던져준 많은 문제의식은 곧 나와 타인에 관한 것이었고, 그것은 자율과 타율, 위험과 통제의 사회체제보다는 근원적인 존재의식이었다. 이번 전시는 수년 간 그가 방 밖에서 느꼈던 것들을 방 안으로 바꿔놓은, 아니 방 밖의 사회풍경을 뒤집어 까서 방 안의 풍경으로 제시한, 경계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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