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상주의,

신개념주의 조각의 확장

 

김종길 |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인류의 역사 전체를 생각해보아도 유한한 삶을, 그것도 한 시대에 한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으로는 ‘삶의 혁명’을 성취하기란 쉽지 않다. 역사와 예술의 긴 알레고리를 깨트리고 돌연변이와도 같은 ‘예술의 혁명’을 실천하는 것 또한 그렇다. 날마다 사건과 이변이 터지고 전위와 실험이 쌓여도 관념과 이성을 뒤흔들 그 어떤 아성牙城의 완벽한 해체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변혁을 희구하는 따위의 ‘모순적 희망’을 삶에 투영시키는 것은, 우리 삶이 그 자체로 모순에 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들끓는 모순으로부터 예술가는 창조의 에너지를 응결해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는 이 현실에 창조의 제국을 선포하는 자들이며, 그 제국의 시민이자 통령統領consul이다.


2009년의 한국 조소예술계는 대체로 맑았고 그 밑은 어두웠다. 2000년 이후 주목을 받아왔던 작가들의 ‘아성 해체’ 시도를 볼 수 있었던 것이 그 맑음이고 그 외의 전시들이 모순보다는 안주를 선택했기 때문에 우울했다. 예컨대 아르코미술관에서 개최된 《대학로 100번지전》(5.21~7.5)은 문예회관부터 미술관까지 오는 30년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기획되었는데, 유사 기념전의 과대포장용 ‘회고’ 집착보다는 대항로對抗路의 새 길을 개척하려는 의지가 윤사비, 성기완의 <학림:왓칭미토킹>과 같은 작품으로 튕겨져 나와 놀랐고, 그 보다는 먼저 백남준아트센터의 두 번째 기획전이었던 《수퍼하이웨이 첫 휴게소전》(3.7~5.16)이 21세기 ‘신형상-신개념’의 조각을 백남준의 사유를 관통하는 후배세대들의 농염한 제시로 개최되었다는 점은 경이로웠다. 로댕이나 부르델에 휩싸였던 권진규, 류인, 구본주식 리얼리즘 조각이 오브제와 개념의 결합으로 속칭 ‘멀티미디어비디오매스컨셉츄얼’ 조각으로 전환하고 있는 사례를 ‘휴게소전’은 똑똑하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새로운 조각의, 그 절정에 있는 작가는 양혜규일 것이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에 제시된 조각의 개념을 낱낱이 해부하고 해부된 개념을 불태워 폐기처분해 버렸다. 그는 매스가 해체된 곳에 빛과 바람과 향기를 음각한 뒤 그것을 채운 오브제마저 부차적인 것들로 치부했다. 그의 조각을 해제하는 하나의 단서는 공교롭게도 어떤 인물, 어떤 역사의 단초들과 관련을 맺는다. 그가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초대작가로 선정된 사건은 그래서 ‘놀람’이 아니다. 2009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에 설치된 김순임의 <더 스페이스 17-인천2009>도 전환의 예시를 잘 드러냈다. 주목할 전시와 작가에 대해선 본문에서 다시 다루겠다.

 

뉴스와 경종의 타전!

6월 26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최성숙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관장, 임충빈 양주시장, 가나아트센터 이호재 회장이 ‘양주시립문신아틀리에미술관’ 건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조각아카데미에 2010년 가을 개관예정이다. 10월9일에는 광화문 광장에 세종대왕상 제막식이 거행됐다. 김영원 홍익대 교수에 의해 4월 25일부터 시작된 조형작업은 제막식을 며칠 앞두고 완성되었는데, 그 운송과정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여 화제가 되었다. 높이 6.2m, 폭4.3m, 무게20톤에 달한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진흥을 위해 제정한 <한국미술평론가협회상>의 첫 수상자로 창작부문에 조각가 정현이, <포스코스틸아트어워드> 대상에 이병훈의 <이미지를 쏘는 화포1.2>가 선정되었다. 이병훈의 작품은 “현대미술에 익숙하게 등장하는 프라모델을 모티브로 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대한 노력과 땀, 재료를 다루는 헌신적인 열정이 진솔하게 전해진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구상조각회가 주관하고 성남문화재단과 MBC가 공동 주최한 《MBC한국구상조각대전》의 시상식이 9월 22일에 있었다. 기성부 대상에 이철희, 신인부에 정의지가 수상했다.


장르로 볼 때 공예에 해당하겠지만, 2009년에는 탈장르적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건축도자’ 혹은 ‘현대도자’ 전시가 공공 미술관에서 기획되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건축도자 Now&New전》을 3월7일까지 개최했는데, 벽돌, 타일, 애자(절연체) 등 일상에서 친숙한 현대 건축도자 재료를 예술적 작업으로 시도한, 창조적 작품들이 출품되었다. 경기도미술관이 기획한 《2009경기미술연례전:현대조형도자전_세라믹스&클라이맥스》(4.24~7.5)는 도예라는 형식 혹은 도자라는 형식을 뛰어넘는, 대단히 조형적인 ‘현대미술작품’을 보여주었다. 점토를 이용한 대형 현장설치 작업, 미디어를 결합한 공간구성 작업 등 기존의 도예전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이었다. 특히 2001년 경기도자박물관에 설치되었던 백남준의 비디오 토기 설치작품 <흙으로 미래를 빚다>가 새롭게 재현, 제작되어 전시됨으로써 탈장르적 개념으로서의 현대도자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해외 전시 초대전이 러시를 이루지 않았지만, 조동환-조해준 부자의 <미군과 아버지>가 이스탄불비엔날레 출품된 것, 조각가 정현이 베이징 금일미술관Today Art Museum에서 초대기획전 《From Material to Life》(2.12~20)을 가진 것, 베이징에 거주하며 창작지형을 넓히고 있는 박성태 작가가 베이징 창아트와 서울 워터게이트갤러리에서 《인드라의 그물-존재와 신화Net of Indra-existence and myth》란 주제로 4월과 5월에 전시한 것, 조각가 배형경이 베이징 페킨파인아트Pekin fine arts에서 ‘카르마’ 연작과 70개 나무 상자안의 부처상을 전시한 것(5.9~6.15)은 조각계의 잔잔한 화제였다. 정현과 박성태, 배형경은 중진 조각가로 한국 형상조각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들의 태반은 20세기에 있으나 형상의 변화와 주제를 진일보 시키는 힘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LA카운티미술관 개최이후 휴스턴미술관으로 이동한 《당신의 밝은 미래:한국현대미술 12인전》(6.28~9.20)은 한국 현대미술의 오늘을 ‘생얼’로 보여주는 전시였다. 우리는 이 전시에 출품된 서도호의 <떨어진 별 1/5>과 <집안의 집>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간간히, 그러나 치밀하게 준비된 작품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들은 한국 현대조각이 헤쳐가야 할 하나의 지표로 상승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개인/집단, 사회/문화, 그리고 국가 정체성 혹은 탈정체성을 화두로 미학적 정치성을 탁월하게 성취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마티에르, 매스, 형상성 등에 갇힌 근대적 조형논리를 가볍게, 그러나 통쾌하게 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한국박물관100주년기념 기획특별전으로 개최된 《영원한 생명의 울림-통일신라조각전》(2008.12.16~2009.3.1)은 조각의 서구적 현대성에만 쏠려있는 한국 현대조각계에 전통조각의 미학세계를 타전한 묵직한 경종이었다.

 

조각의 변태變態, 신형상주의와 신개념주의 확산


20세기 형상조각, 개념조각으로부터 비동일성의 작업을 강행하는 것은 21세기 한국 현대조각계의 변혁적 과제라고 할 수 있을 터이다. 과거의 기억을 끊어내면서 동시에 탈아적脫我的 시도와 실천을 힘 있게 수행하는 일. 그러나 우리는 그와 동시에 동일성의 뿌리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의식/무의식의 관념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기억을 끊어내는 스스로의 결단이 근대 미학에의 극복, 즉 탈근대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기억의 고리를 결연히 해체하려는 의식은 단지 하나의 의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는 해변의 모래 둔덕처럼 파도에 휩쓸린 현재의 탈각이며, 현재는 바람에 밀려와 탈각을 준비하는 오늘, 그리고 미래란 오늘이 실존해야만 볼 수 있는 바람의 결이지 않겠는가.


신형상조각과 신개념조각은 2000년 이후 후기 신세대 조각가들에 의해 실험된 탈근대적 전환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대적 지층은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을 이룬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사회변혁운동에 동참했던 민중미술로부터 비판적 현실주의의 미학을 전수받았고, 칼라TV와 올림픽,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현란한 이미지 속에서 “脫-모던, 제도, 권위”를 내세웠던 당시 청년작가 세대의 ‘신세대론’을 흡수했으며, 대안공간의 ‘얼터너티브alternative 정신’을 형성시켰다. 또한 인터넷의 일상화와 글로벌네트워크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세대론(1980년대 후반~1990년대 중반)의 편협성을 확장해 글로벌 후기 신세대(1990년대 후반 이후~현재)로 층위를 구성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서구미술계와 한국미술계의 시간차/시각차를 동시성으로 끌어 올렸으며, 아카데미 조형론에 구속되지 않는 자율성의 최대치를 실험했고, 모더니즘-리얼리즘-컨셉추얼리즘/비디오아트-팝아트…와 같은 특정 미학, 특정 경향보다는 그것들이 믹싱 된 개념, 즉 혼합개념으로서의 ‘비빔’을 더 선호했다. 조각은 더 이상 오브제에 갇혀 있지 않았다. 이제 조각개념의 화두는 “어디까지를 조각이라고 불러야 하는 가”의 질문에서 “지시되는 모든 것이 조각이다”로 기립시켜야 할 것이다. 그 기립현상의 단면을 2009년의 주목할 만한 전시들로 살펴보겠다.


첫 스타트는 KT&G 상상마당에 전시된 나현의 《실종MISSING전》(1.30~2.15)이었다. 그는 유사 다큐멘터리 PD가 되어 동영상 인터뷰, 사진촬영, 수집(아카이브), 퍼포먼스를 수행하여 그 결과물을 재맥락화하고 재구성 해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전》에도 출품된 바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도서관·박물관·미술관의 전시연출을 영민하게 차용하여 ‘실종’의 ‘실존’을 드러내고자 했다. 부재의 흔적들로 채워진 전시공간은 실종된 자들의 ‘실존’과 밀접하게 상관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산자들, 살아남은 자들이 전하는 기억의 정치학이기도 할 것이다. 같은 날, 스페이스 크로프트에서 개최된 유비호의 세 번째 개인전 《Flexible Landscape전》(1.30~2.15)은 ‘서브토피아sub-topia’를 주제로 다뤘다. 송도신도시 개발과 태안반도 기름유출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작가적 상상으로 혼합-재생산한 이 전시는 에코토피아의 깃발을 내건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모순적 현실을 담담하게 직조하였다. 그의 영상은 1980년대 <현실과 발언>의 일부 작가들이 ‘회화이미지’로 집약시켰던 소비사회 간판문화와 다국적 기업들의 상업전략을 몽환적 영상이미지로 전환하여 보여 주었고, 기름유출의 늪에 빠진 생명체들의 모뉴망moniment을 검은 조각상으로 형상화 했다.


덕원갤러리에서 최수앙의 《The Pruritus전》(2.13~28), 대안공간 풀에서 강상훈의 《獸Animals전》(10.23~11.13)이 있었다. 그들은 이원석, 설총식, 박장근, 이종희 세대를 잇는 후기 신형상조각의 기수라 할 만 하다. 둘의 작품들에서 동일하게 떠오르는 개념은 ‘페르소나Persona’이다. 라틴어 미술 개념으로 페르소나는 ‘사람의 몸을 조각한 작품’이지만, 종교적으론 지혜와 자유의사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 심리적으로는 실체 뒤의 ‘가면’이다. 그들의 몸은 ‘가려움’과 ‘짐승의 탈’이라는 페르소나를 갖지만, 모두 사람의 몸이며 독립되어 있다. 이들 작품에서 ‘독립’은 개인의 자율보다는 ‘고독’, ‘자폐’와 같은 비사회적 개념에 가깝다. 최수앙은 그런 비사회적 세계에 갇힌 개인들의 실상을 ‘독립된 자화상’으로 창조했으며, 강상훈은 ‘거짓말, 허풍, 위선, 오만…’으로 가득 찬 페르소나의 실체에 짐승의 가면을 덧씌워 제출했다.


몽인아트센터에서 지니서의 《end of the Rainbow전》(5.21~6.19), 유현미의 《그림이 된 남자Bleeding Blue전》(11.19~2010.1.17), 아트선재센터에서 함경아의 《욕망과 마취Desire and Anesthesia전》(8.22~10.25), 국제갤러리에서 김기라의 《SUPER MEGA FACTORY전》(9.19~10.18), 신미경의 《번역_그리스 아르카의 조각상전》(11.19~12.19), 그리고 갤러리 팩토리에서 김주현의 《누구나 꾸는 꿈>(12.17~2010.1.17)이 있었다. 지니 서, 유현미, 함경아, 김기라, 신미경, 김주현은 2009년의 한국 조각계 단층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작가들이었다. 지니 서는 단일성의 조각으로서 공간에 점유된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그것의 역설, 그러니까 조각이 공간을 점유하면서 스스로 공간이 되는 조각을 펼쳐냈다. 강철의 판선들로 협곡과 바람 결, 빛 무리를 연상케하는 공간연출을 펼쳐내어 관객의 시선을 조각 내부로 진입시켰다. 관객은 그 내부에서 ‘무지개 끝’이라는 희망 없는 현실에 부딪혔으며, 반대로 ‘강철무지개’의 강렬한 아우라에도 휩싸여야 했다. 사진과 회화, 조각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유현미의 작업은 매 년 일정한 확장선을 타고 있다. 최근까지 사진작업은 그 자신의 작업실 문, 벽, 계단, 커튼을 배경삼아 오브제 사진(오브제와 배경에 페인팅을 한 후 사진작업)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조각’이라 단정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를 형성한다. 조각에서 출발했으나 최근 작품들은 ‘결과적으로’ 사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도미술관의 《창작의 해부학전》에 전시된 사진 속 풍경의 ‘모델공간(실제공간으로서)’은 조각적 설치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림이 된 남자전》은 현실 속 인물과 배경(소파에 앉아있는 남자, 책꽂이가 있는 방)에 여러 사람이 나타나 흰 색으로 바꾸고, 다시 회화적 채색을 가하는 퍼포먼스인데, 결과적으로 작품은 영상으로 제작되었으나 ‘살아있는 조각’의 개념을 차용했고, 또한 ‘회화적 조각’과 근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현미의 작업에서 회화와 조각, 사진과 영상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개념이며, 그것들이 동시적으로 작동되는 총체적 작품이라 할 것이다. 유현미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은 결과론에 얽매여서는 안 되며, 작품의 구상, 구상의 시놉시스, 시놉시스의 구성, 구성의 실현이라는 프로세스 모두를 창조적 연기론으로 분석해야만 한다. 함경아의 작품들 <뮤지엄 디스플레이Museum Display>, <훔쳐지고 뒤바뀐 사물들Switched Stolen Objects>, <스틸 라이프 시리즈Steal Life series>, <사기꾼과 점쟁이The Sharper and Fortune Teller>는 수년 동안 제시하고 있는 ‘훔쳐 온 것들로 이뤄진 컬렉션(혹은 약탈 문화재로서의 컬렉션)’에 관한 상징적 스펙터클이다. 전직 대통령의 화장실 폐자재로 재구성했던 <오데사의 계단>처럼 훔친 것들로서의 오브제는 훔쳐진 곳의 장소, 공간의 정체를 파고들어 그 이면에 똬리를 튼 착취, 약탈, 억압, 비정상성, 비일상성, 비현실성의 실체에 접근한다. 낮고 은밀하게 그러나 지속적으로 포복해 들어간 그의 육체와 정신은 한 순간의 영감과 미학적 순수에 열광했던 20세기 한국의 예술가상을 간단없이 해체하며, 그의 ‘도둑질’ 작품들을 아주 그럴싸하게 제시하고 있는 박물관 혹은 미술관식 진열과 보호용 유리케이스는 약탈의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페이소스를 발산한다.


김기라의 작품들은 20세기 제국주의 신화를 형성했던 팍스 아메리카와 그 세계가 꿈꿨던 21세기를 우화적 상상력으로 빚어낸 기념비적 조상이다. 자본과 욕망, 권력의 하모니가 1달러 지폐에 새겨진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탑신의 제국이 된 아메리카는 더 이상 ‘드림의 제국’이 아니다. 그들의 제국이 약탈과 살인, 착취와 억압에 의해 탄생되었듯이 탄생 뒤의 역사 또한 그것들의 연속일 뿐이다. 오직 자본만이 유일선이 되는 세계의 확장 그 중심에 아메리카는 존재해 왔다. 악을 물리칠 선의 영웅은 늘 아메리카에서 탄생했고. 영웅은 아메리카(선. 친미)와 반아메리카(악. 반미)로 나뉘는 이분법의 구도 사이에서 선을 장악하고, 악의 세력을 물리쳤다. 관객은 영웅을 환호함으로써 선의 제국 아메리카에 경도되었다. 김기라의 <20세기 수퍼 히어로즈-Monsters>는 그런 영웅들의 일그러진 초상들이다. 자본도 욕망도 권력도 없이 꿈의 판타지를 유포했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영웅들은 괴물이 되었다. 그 괴물들에서 나는 친미와 반미, 보수와 진보, 전체주의와 민중/시민주의로 구분되는 우리의 실체를 엿본다. 신미경의 비누조각은 비누의 속성인 ‘소멸의 미학’을 ‘시간의 미학’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듯하다. ‘소멸’에는 시간성이 내재되어 있으나 그 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화장실 세면대에 설치한 일부 작품들이 손 세정에 의해 자연스럽게 ‘시간의 소멸성’을 획득했다면, 그의 많은 작품들은 비누의 ‘소멸성’만을 차용해 왔기 때문이다. 경기도미술관 앞 야외 수조공간에 일정기간동안 비누조각을 설치해 두어 자연의 시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도록 한 이번 작품들은 그런 맥락에서 ‘시간의 소멸성’ 개념을 완성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주현의 조각은 ‘생태성’을 내포한다. 세포분열 하듯이 무한 증식이 가능한 그의 조각은 ‘자라는 조각’이라 할 수 있으며, 그런 맥락에서 확장형 조각에 다름 아닐 것이다. 형상성이 완결된 매스로서의 근대조각과 달리 확장형 조각은 완결된 형상이 유동적이다. 이끼와 덩굴들처럼 그의 조각은 지표면을 넓게 확산하는 방식, 성장과 동시에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면서 확장해 나가는 방식 등을 취한다. 우리는 단일한 형상성으로 이 작품을 판독할 수 없다. 이음과 혼합의 알레고리로 이 작품을 해독할 때 드디어 그 본질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주목할 만한 개인전으로는 안규철의 《2.6평방미터의 집》(공간화랑, 3.11~4.26), 차기율의 《세 개의 장소》(공간화랑, 9. 23~10. 30), 최태훈의 《Dual Skin Project, Seoul》(갤러리아트싸이드, 11.25~12.8) 등이 있다. 2004년 로댕갤러리 이후 5년 만의 개인전이었던 안규철의 전시는 가장 작은 규모의 개인전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후기 자본주의에 귀속된 한국사회 현대인의 실존을 가장 단명한 방식으로 응결해 냈다. 오직 한 사람, 자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상실과 고립 사이에 매달린 ‘자존의 한계치’로서의 공간일 것이다. 차기율의 ‘공간 발굴’은 최근의 유적발굴프로젝트에서 시작된다. 공간 화랑에 들어 온 ‘발굴로서의 공간’. 공간 발굴은 역사의 탯줄을 이어 자아의 현존을 밝히려는 고독한 몸부림에서 시작된다. 최태훈은 철 재료를 다시 일상의 오브제로 치환하려는 구상에의 욕망을 펼쳐 보인다. 빛과 어둠의 코스모스에까지 가 닿았던 그의 사유는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상화 되는가에 주목한다. 모든 것이 점․선․면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현실 또한 그 개념 안에 포박될 것이다.


근대적 조각에 의도적으로 저항하기 보다는 새로운 시대의 매체와 미디어를 활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저항이 된 조각. 서울시립미술관은 《조각적인 것에 대한 저항》(11.28~2010.2.16)으로 그 현상을 파고들었다.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은 3월 4일부터 4월 3일까지 《Sarubia Collection by SMILEPLANET》을 개최했다. 사루비아다방과 아티스트 브랜드 Smileplanet(웃음행성:아티스트 윤정원, 공간디자인 유영호)이 협력해 새로운 브랜드 ‘사루비아 컬렉션’ 을 론칭하는 전시였다. 이른바 쓸모없거나 미완의 오브제로 만들어진 의상, 가방, 신발, 조명, 테이블, 액세서리 등이 라인업으로 구성되었고, 이를 통해 탈의미화, 탈영역화 되는 미술의 경계에 대해 화두를 던지는 작업이었다. 우리는 이 전시에서 조각의 무용성보다는 탈조각적 영역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아니 그 실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탈주하는 현실 속 과거와 미래


5월을 수놓은 엄태정(성곡미술관, 5.20~6.28), 심영철(선화랑, 5.20~6.4), 김인겸(표갤러리, 5.6~6.5), 김청정(학고재, 5.6~7.5), 한애규(포스코미술관, 5.7~28)의 전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술대학 출신의 아카데미화풍이 어떻게 새로운 변모로 이어졌는가를 보여주는 의미있는 전시들이었다. 각각 3,4,5세대에 해당할 이 작가들의 다양성과 독자적 세계의 형성은 한국 조각계의 색다른 풍요가 아닐 수 없다. 전수천의 ‘新월인천강지곡’(서울대미술관, 10.16~12.12)도 마찬가지다. 그의 저력은 그 자신이 수행하는 프로젝트의 개념을 스펙터클한 공간연출로 창출해내는 ‘장면’에서 비롯된다. 우무길의 집요한 집착, 최울가의 조각적 회화, 이강소의 공간회화, 이우환의 ‘조각’은 여전히 그들의 인식이 미래를 향해 열려있다는 인상을 준다. 과거를 이어서 현재를 직조하는 조각의 개념은 이우환의 경우 순환과 연기緣起로서의 미래를 가늠케 한다. 새로운 것은 과거를 파괴하고 해체하는 개념의 단절, 개념의 전환에서 시작될 터이지만, 과거가 인식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안진우가 주장했듯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가짜’(<모든 것은 가짜다>, 노암갤러리, 6.19~28)라는 예술정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백남준아트센터가 제정한 국제예술상 2009년 수상자인 이승택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정신은 이미 선구적이었다. 탈장르적 실험으로 점철된 그의 역사는 한국 현대미술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전위적 유산에 가깝다. 이제 후배세대는 그를 전복하는 모험을 감행해야 할 것이다.


“1964년 <강에 떠내려가는 불붙는 화판>이란 작품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쓰레기 같은 그림들을 불살라 강물에 떠내려 없애려는 것이었다. 당시 한강은 국가 안보에 아주 중요한 군사기지여서 한강에서의 불장난은 이적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나는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감시가 느슨해진 틈을 타 007작전으로 이를 서둘러 결행했다. 불 지르고 사진 찍고 허겁지겁 달아나다시피 아슬아슬한 모험을 감행해 성공했다.”(이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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