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과 피안의 경계에서

현실이 추락할 때

 

김종길 | 미술평론가//gimjonggil.tistory.com

 

 

이른 아침, 신문에서 “말씀이 육이 되었다”는 구절을 읽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구절이다.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을 펴낸 김진호 목사는 “이 말은 ‘가장 거룩한 것이 가장 천한 것이 되었다’는 뜻인데, 달리 표현하면 ‘더럽고 추하고 천한 것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성스런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라 말한다. 여기서 ‘육肉’이란 그리스어 ‘싸륵스’의 번역어인데, 성화聖化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육체인 ‘소마’와 달리 오염된 몸, 너무 더러워서 정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몸뚱이를 가리킨다.

김진호 목사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태생부터 불온한 책이었다. 이 텍스트를 낳고 유통시킨 신앙공동체가 1세기 말의 예수파 무리들 가운데 가장 기이한 소수집단, 요즘 말로 빌려 얘기하자면 ‘급진적 자유주의자들’의 동아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성서학자들에 따르면 이 복음서는 1세기 말 지금의 터키 서부에 위치한 어느 유대교 회당에서 폭력적으로 추방당한, 상처 입은 소수파 예수공동체의 진술이라고도 한다. 1세기 후반 다수의 유대교 추종자들이 일명 ‘유대교재건프로젝트’를 가동했을 때 그들은 ‘내부의 적’으로 지목돼 억압받고 추방된 자들이었다(이세영 기자, 「“요한복음은 2천년전 불온집단의 신앙고백”」, 한겨레, 2010.1.7).


기사를 읽는 동안 머릿속에서 2009년의 사건들이 겹쳐졌다.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들어선 MB정부는 전 국민과 국토를 볼모로 한 대규모 국책프로젝트를 준비했고, 2009년은 그 시행동력을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인 한해였기에 상대적 저항이 만만찮았다. 유대교 추종자들이 소수파 예수공동체를 내부의 적으로 몰아갔듯이 정부는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든 모든 국민을 반역의 무리로 규정했다. 촛불집회에 나섰던 유모차 어머니들까지 집회 1년 뒤에 은밀히 수사했던 간교한 정부의 변질된 정체성은 2009년 새해가 되자 더욱 노골화 되었다. 그들은 전 방위에 걸쳐 정책집행을 위한 공포전략을 펼쳤다.

 

2009년 ‘1.20용산참사’는 그 첫 희생이었고 순교였다. ‘용산4구역 철거 현장 화재 사건’이라 불리는 이 불의 순교는 국가가 경찰과 용역깡패를 동원해 펼친 ‘토끼몰이’ 작전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다. 눈 막고 귀 막고 입 막았던 군사정부보다 더 잔혹한 것은 벌건 대낮 시민들이 노려보는 순간에도 뻔뻔하게 작전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 1명이 죽고, 23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사건은 은폐되고 수사는 왜곡되었으며 언론은 무시되었다. 근대식 토건국가의 재건프로젝트를 꿈꾸는 MB정부의 재개발․난개발 정책과 그들의 율법 체계는 독선과 아집의 구린 욕망으로 가득했다.

 

2010년 벽두부터 정부는 고용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호들갑이지만, 사실상 실업자 330만명에 이른 한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중장기 고용정책 없이 7%성장과 일자리 300만개 창출만을 목맸던 초기 상황은 이미 물밑에 가라앉은 지 오래다.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1월 6일 보도자료에서 “‘말 따로 예산 따로’인 자가당착 일자리 정책”이라며 지난해 대비 24%나 준 일자리 예산을 비꼬았다. 고용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비정규직 제도에 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된 ‘기륭전자 노동자 투쟁’은 비정규직의 절망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켰다. 오죽하면 “기계가 빽빽하면 기름도 치고 닦아서 쓴다. 결국 우리 비정규직은 기계만도 못한, 한 번 쓰고 버리는 휴지 같은 존재였던 거다.”(오석순 前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절규했겠는가. 기륭전자 비정규직은 대부분 30~40대 여성들이었다. 한 달 월급은 기본급 64만 1,850원. 당시 법정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았다. 생산직 근로자 350명 중 300여명이 파견근로자였다. 월 100시간 추가근로를 했고 계약기간은 고작 3개월. 2006년 1월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 80여명을 해고했다. 삭발, 3보1배, 노숙, 고공투쟁, 단식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저항했다. 2008년 10월 15일, 경비직원과 용역깡패들에 의해 농성장은 해체되었고 노동자와 시민들은 폭행당했다. 폭력의 트라우마가 불러온 사회적 통증은 2009년 내내 지속되었다.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투쟁, 신세계이마트 용인 수지점 계산원 노동자 투쟁, 그리고 쌍용차 파업투쟁.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 쌍용자동차는 공동관리인 명의로 2405명에 대한 정리해고 계획서를 노동부 평택지청에 접수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자들!

 

40년 전 전태일은 죽음의 벼랑 끝에서 어머니를 붙잡고 마지막 호흡을 끌어 모았다.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캄캄한 세상에 빛이 스며들 조그만 구멍 하나가 생길 거예요. 노동자와 학생들이 힘을 합쳐 그 구멍을 넓힐 수 있도록 해줘요. 내가 다 못한 일을 엄마가 해준다고 내게 약속해 주세요.”

 

어머니는 다짐했다.

 

“내 뼈가 가루가 되어도 그렇게 하겠다.”

(방현석, 「“사람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그게 전태일 정신”」, 한겨레, 2009.12.31)

 

그러나 정부와 기업은 전태일이 뚫고 이소선 어머니가 키워 온 그 찬란한 구멍에 화염의 불쏘시개를 쑤셔 넣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종료되어도 말끔하게 정리되는 법이 없다. 긴 투쟁 끝에 해고된 자는 불령선인不逞鮮人이 될 뿐이었다. 권력은 자신의 정체성을 적의 상대적 관점에서 파악하고 누렸다. 반미엔 친미편, 진보엔 보수편, 노동자엔 사주편, 일반 노조엔 반노조, 공무원 노조엔 비노조, 그리고 파업엔 총칼을 들이댔다. 국가의 정체성이 ‘대한민국’인지 ‘代한 민국’인지 알 수 없다. 정책에 찬동하거나 침묵하는 자만이 착한 국민이고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제압하거나 구속해야할 범죄자이기에. 암묵적으로 모든 노조 노동자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사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일본 총독부가 3․1운동 이후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세웠던 역사를 이 시대로 불려낸 듯 ‘노조 노동자, 투쟁 노동자 초토계획’을 실행하고 있는 듯하다.

 

긴 터널을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몇 분의 거인을 보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셨고, 김대중 前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1975년 3월, ‘3․1명동사건’으로 불리는 시국기도회가 있었다. 정치인 김대중,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 추기경께서 함께했다. 추기경께선 박정희대통령에게 “의견이 다르다고 사람들을 단죄하고 하느님의 엄한 심판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대중, 문익환, 함세웅 세 분이 구속됐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위대가 경찰진압에 몰려 명동성당에 집결하자 치안본부장과 안기부 차장이 찾아와 “시위대를 모두 내보내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 해산하겠다”고 위협했다. 추기경께선 “공권력을 투입하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민주화 이전엔 민주화를, 민주화 이후엔 인간화를 실천했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났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의 태어나 1963년 서른여덟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된 김대중 前 대통령은 1972년 유신체제 이후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투옥과 수감, 망명을 거듭했고 1980년 5월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80년대 민주화를 이끌었고 국가 파산상태였던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어 IMF정국을 정면 돌파했다. 냉전의 남북 분단체제를 평화무드로 바꿨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남북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 통일의 싹을 활짝 틔운 그가 MB정부의 역설(남북관계를 다시 상호불신, 적대관계로 되돌렸잖은가!)을 지켜보며 눈을 감았다.

 

MB정권은 토건국가 재건프로젝트의 강력한 추동력을 얻기 위해 몇 가지 복안을 현실화했다. 그 중 하나가 전임자 죽이기였다. 세상의 많은 독재자들이 죽은 자도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관행을 이 정부는 너무도 명료하게 따라했다. 업적을 깎아내리고 누명을 씌워 인격 살해하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 남은 자존감마저 발가벗기려 했다. 죽이기는 ‘죽음’으로 답했다. 그래서 그 죽음은 ‘죽임’이 되어 버렸다. 국민의 절반이 울었고 운자의 절반이 길가에서 통곡했다. 그는 우리에게 ‘말(씀)’을 남겼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입는 것, 먹는 것…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신명 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988년 7월 8일 국회 첫 대정부 질문 중

 

“정부는 입만 열면 노사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조 한 번 해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고 수돗물도 끊고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폼 한 장 깔고 앉아서 생라면을 씹고 있는 이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준 주먹밥마저 빼앗겨서 불타버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 갔다가 해고되어서 길거리에 내쫓낀 이들 노동자가 그들을 내팽개친 기업주와 이 땅 위에서 서로 화합하고 살기를 기대하십니까.”

- 1988년 7월 8일 제142회 국회 19차 본회의 사회문화에 관한 대정부 질문

 

“정의롭게 사십시오. 약자의 편에 서십시오.”

- 1990년대 집회현장에서 한 마디 해달라던 대학생에게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경호원 한두 명과 남대문시장에, 자갈치시장에, 동성로에, 금남로에, 은행동 거리에 모습을 나타내는 대통령, 거기서 마주친 시민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일 수 대통령, 그런 친구같은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 2002년 4월 27일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

 

바보 노무현이라 불린 대통령은 그런 말을 남기고 부엉바위에서 승화했다. 민주, 노동, 정치, 인권, 평화, 불의, 그리고 정의의 낱말이 다시 타올랐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불과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뉴타운 개발정책이 연일 발표되고, 세종시 수정논란이 거세다. 수도권에 집중된 정치.경제.사회.문화, 인구의 무게를 남한의 전지역으로 분산시키려던 노무현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세종시는 짝퉁 행복도시.기업도시로 변질되는 중이다.

 

2009년의 클라이맥스는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에 있었다. 한나라당은 야당을 배제하고 신문법, 방송법, 인터넷멀티미디어법, 금융지주회사법 수정안 등을 단독 의결했다. 야당 측은 이 법들에 대해 심사보고, 제안 취지 설명 및 질의․토론절차 생략,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대리 투표 등으로 법률안 심의 표결 권한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헌재는 절차적 하자는 있으나 법적효력은 유효하다고 판결함으로써 한나라당에 면죄부를 주었다. 이 땅의 삼권분립이란 허울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통칭 ‘미디어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대기업 및 일간신문의 방송사 지분 소유 허용 : 지상파 방송 10%,종합편성 채널 30%, 보도 채널 30%까지(신문·방송 겸영 허용). 둘째, 외국인의 방송사 지분 소유 허용 : 종합편성 및 보도 채널 60%까지. 셋째, 지상파, 종합편성 및 보도 채널의 1인 최대주주 지분제한 완화 : 30%에서 66%로. 넷째, 대기업의 위성방송 지분 제한 폐지.

 

정부와 한나라당, 조․중․동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문·방송 겸영은 세계적 추세가 아니다. OECD 국가들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고는 있으나, 최소한의 겸영만을 허용하는 ‘매체 교차소유권 규정’을 운용하는 등 언론 독과점을 막으려고 다양한 규제를 하고 있다. 사실상 겸영에 대해 규제를 하지 않는 국가는 OECD 내에서 일본이 유일하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경쟁이 촉발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과점이 심화되어 여론 다양성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 뻔하고,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상황에서 국내 시장 규제 철폐가 국가 경쟁력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 현재도 대기업은 지상파와 보도 및 종합편성 채널을 제외한 다른 방송이 가능하다(예: DMB, IPTV, 케이블 방송, 위성 방송). 그러나 그들은 방송 부문 소유규제가 해외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다고 핏대 세우고, 국제 경쟁력을 향상을 위해 대기업 자본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규제완화로 신규 사업자가 늘고 추가자본 유치도 이뤄지며 사업자 간 콘텐츠 품질 경쟁이 확대될 것이라 예상한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며 신문방송 겸영과 교차소유 허용은 세계적 추세라 강변한다. 아, 그러나 나는 그들의 소리에서 꺼지지 않는 욕망의 불길을 엿보고 과욕의 썩은 악취를 맡는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의 경계에서 현실이 추락하고 있다. 민주주의 시민은 늘 “왜 그렇죠?”라고 묻기 때문에 ‘위험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 얼 쇼리스의 외침을 새겨듣지 않는다면, 그 추락은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추락했었고, 그보다 높게 상승해 왔다. 그런데 2009년의 연말정산 결과는 절망적이다. 추락의 절망을 다시 상승의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선 거인들이 남긴 말씀을 육화하는 용기가 필요할 터이다. 노무현은 말했다.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 해야 합니다.”

-1990년 민자당 창당과 3당 합당 때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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