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컬쳐 리뷰_9월호

김성룡展

2009. 8. 21~9. 18

아리랑갤러리


지난 달 7월 새로 개관한 부산의 아리랑갤러리에서 첫 초대개인전으로 <Kim Seong Ryong-검은 회오리의 숲>展을 개최했다. 김성룡은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상처받은 자아의 실체를 지독한 그리기를 통해 탐색해 온 중견작가다. 그가 주목해 온 것은 격동의 근대화 혹은 현대화의 정치성이 야기한 개인의 상처 즉 트라우마(trauma)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는 한 개인의 초상들이 등장하며 그 인물들은 어김없이 김지하 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흰 그늘의 미학’ 같은 것이 서려있다. 흰 그늘은 인간의 영성을 성숙시키는 카오스적 단련기제다. 슬픔과 기쁨, 공포와 환희, 죽음과 삶, 어둠과 빛처럼 서로 배치된 것들이 이종 교합하듯 한데 어울려야만 발아하는 것이 흰 그늘이다. 김성룡의 흰 그늘은 슬픔·공포·죽음·어둠의 색채들로 구성된 회화들이 기쁨·환희·삶·빛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어떤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 의지는 현실이라는 리얼리티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부조리한 세계의 찰나를 붙잡으려는 작가의 세계인식과 다르지 않다.


김성룡은 1980년대 후반부터 부산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대 초반에는 그 지역 출신 작가들이 모여 결성한 ‘해빙’이란 그룹에 참여했다. 민중미술계 선배 세대들의 비판적 리얼리즘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작가적 성취를 지향했던 이 그룹의 모토는 현재 김성룡 작가의 작품에서 여전히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1990년대 초반에 제작된 <봄날>과 <새벽>, <청산에 눕다>의 작품들이 내포하고 있었던 역사적 관점에서의 현실비판을 유지하되 보다 선명한 당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1980년대, 한국 현대사에 그어진 ‘오월 광주’는 현실미학을 초월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김성룡은 이 역사적 사건을 예술적 사건으로 전환시켜 집단적 트라우마에 가린 개인의 상처를 묘파해 냈다. 그는 놀랍도록 예리한 필체로 우울한 대지의 풍경과 인물들의 표정을 새겨 넣음으로써 그 시대의 ‘역사성’을 미학적으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그가 현재까지도 주된 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는 ‘볼펜 채색기법’은 그런 느낌을 전유하는 매우 효과적인 텍스추어(texture)다.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2000년대 이후 새롭게 관심을 가진 주제들이다. 그동안 그가 줄기차게 던졌던 화두는 ‘인간의 폭력’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제 그는 자연으로 눈을 돌려 그 폭력의 가면을 벗겨낸다. 심연의 상처를 치유하는 자연에 관한 명상적 작품이 있는가 하면, 휴전의 내공으로 가장 아름답게 성장했으나 슬픈 영혼들이 떠도는 DMZ의 초상도 있고, 더 이상 자신들의 삶터를 내어 줄 수 없어 이미 가파른 절벽에 다다른 동물들도 보인다. 이 동물들은 인간이 상실한 자연의 순수성 혹은 영성을 간직한 신령한 존재들이다. 이제 그의 작품들은 현대화의 정치성이 아니라 미학적 정치성으로 나아가 ‘현대화’ 혹은 ‘문명화’라고 하는 근원적 모순을 파고들고 있다. 하여 그의 작품들은 이전과 달리 훨씬 컬러풀해 졌고, 그 만큼 화면 속 대상들의 에너지도 커졌다. 기쁨·환희·삶·빛의 세계가 넘실거린다. 반면 그것들의 이면에는 그 반대의 정서가 깊숙이 내장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특한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1980년대의 비판적 리얼리즘을 1990년대를 거치면서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새롭게 실험하고, 2000년대에는 현실과 비현실,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리얼리즘의 미학을 독자적 경지로 끌어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은 쉽게 판타지의 영역으로 휩쓸리지 않는 그의 견고한 미학적 정치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그 미학적 정치성은 여전히 ‘현실’이라는 아주 강력한 리얼리티이다.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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