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터쉽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미술관 문화는 상당히 변했다.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은 1000개의 박물관/미술관(이 글에선 미술관으로 통일)을 짓겠다고 공언했지만 사실 당시에는 망상에 찬 선언에 가까웠다. 미술관에 대한 문화적 지반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10년 동안 1000개의 박물관 또는 미술관을 짓겠다니. 결국 문화부는 가치정책이 아닌 수치정책을 위해 미술관 대신 문화예술회관과 문화원을 양산해 내었고, 짧은 기간 동안 전국적 규모로 확장시키려는 전략적 구상에 의해 키치적 상황의 ‘문화건축’을 복제하듯 찍어내지 않았던가.


문화부의 선언 이후
정확히 10년이 지난 뒤에야 불이 붙은 공공미술관 건립은 이제 겨우 10년의 미술관 역사를 넘기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중앙정부가 현실적 정책으로 입안한 1도 1미술관 지원정책은 제대로 불이 붙었다. 지방정부마다 서둘러 계획안을 마련하고 건립을 시작하더니 최근 개관러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5년 안에 20여 곳이 추가로 건립될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국․ 공립 26곳, 사립 70여 곳까지 합치면 전국적으로 미술관이 130여 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2009년 현재, 미술관 추진현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도와 광역시를 넘어 시·군 단위까지 확장되고 있는 미술관 건립은 결국 하드웨어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 문화적 수준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멋진 미술관을 세우려는 욕망 뒤에는 사실 어떠한 콘텐츠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황폐한 소프트웨어가 떠돌기 때문이다. 미술관문화는 건축물이 뿜어내는 시각적 판타지와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그 핵심은 소장품이고 이를 조사·연구하는 인력의 전문성이며, 이를 바탕으로 기획되는 전시에 있다. 21세기 미술관 문화에 대한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고 있기는 하나 전통적 개념의 ‘museum’ 지반을 형성해 온 키워드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미술관 문화가 위태로운 것은 그런 지적 고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미술관 문화의 절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관장과 큐레이터의 전문성에 있다. 아니 아주 냉철하게 말하면 미술관의 수장인 관장의 전문성이다. 이미 이 문제는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거의 상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지난 6월 25일 개관을 하루 앞두고 도 문화정책과 김남근 지방행정사무관을 관장에 선임했다. 그가 관장에 올라야 하는 이유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준비 총괄기획단 과장으로서 정상회의 성공 개최의 숨은 주역”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 6월에 새 관장을 임명했는데 한국예총전북연합회 전문위원장 출신이다. 동국대에서 불교사학과 미술사를 전공했다고 하나 내년 6월 선거를 앞둔 지자체 장의 특별한 배려(?)라는 소문이 나돈다. 5월엔 대전시립미술관에도 새 관장이 선임되었다. 전 홍익대 교수였던 송번수 작가다. 그가 미술관장으로 선임된 주요 이유는 “판화가로서 국내외를 오가며 활발한 전시활동을 했으며, 문화공보부 주최 제3회 신인예술상전 수석상, 신상회 공모전 국제보도상, 제2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 대통령 국민포장 등의 수상 및 수훈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유희영 관장은 예술원 출신의 작가이고, 국립현대미술관 배순훈 관장은 1992년의 대우전자를 ‘탱크주의’로 내세워 인기를 끌었던 CEO출신이며, 김대중 정부에서는 초대 정통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배순훈 관장의 미술관장 지원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자 : 미술관장에 지원하신 이유는 뭔가요?

배 관장 : 저는 우리나라가 2030년이면 1인당 국민소득이 6만달러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때 사회구성원들이 문화적 안목 없이 배만 부른 상태라면 그건 재앙이에요. 그럴 거면 발전 안하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문화를 발전시키는 게 굉장히 급한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마침 현대미술관 관장 공모가 있어서 지원했지만 만약 음악분야에 자리가 있었다면 거기에도 응모했을지 몰라요(웃음). 업무를 잘 몰랐을 땐 막연히 좋은 그림과 함께 지내면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림 잡(dream job)이라고 해요, 제 친구들은. 그런데 관장이 되고 보니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참 중요한 국가기관이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할 일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것 때문에 요즘 압박을 많이 받아요. 정신적으로.

 

미술관 관장에는 어떤 인물도 선임될 수 있다. 그것 자체에 제약이 있어선 안 된다. 그러나 그 인물은 철저한 미술관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미술관은 ‘꿈의 직업’도 아니고 “업무를 잘 몰랐을 때 막연히 좋은 그림”을 감상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관 관장에 대한 역할과 지위, 미션은 미술관마다 조금씩 다르고 또한 국가마다 어떤 표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우처럼 공공 미술관이 국가기구의 직속 기관으로 소속되어 있는 경우는 외국과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외국의 관장들이 전략적인 대외업무를 소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면, 국내 관장들은 사실상 대외업무라는 게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행사에 참석하는 따위의 업무를 대외업무로 착각하지는 않겠지만, 국내의 많은 관장들은 오히려 바로 그것을 주요한 업무로 파악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체로 외국의 경우 국립미술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공미술관은 법인으로 독립기구화 되어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로부터 예산지원을 받고 있긴 하지만 미술관의 조사·연구·전시·교육 등의 기획을 수행하기 위해선 외부 지원을 끌어 당겨야 한다. 하여 미술관장의 주된 임무중의 하나는 기금확보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발로 뛰는 문화세일즈맨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업으로부터의 스폰서는 물론이고 주요 콜렉터와의 만남, 사회지도층 인사들과의 교류, 의회 설득 등 그들의 스케줄은 수익과 소속 미술관의 가치 창출을 위한 것들로 채워진다. 또한 내부 조정자로서 미술관 전문인력이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소문이나 왜곡된 정보가 유출된 경우에는 이를 정정하거나 소문이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취한다. 미술관의 다양한 세포들이 제대로 안착되어 있는지, 세포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도 조정한다. 물론 미술관 내부 역할은 이럴 때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미 관장 밑에는 파트별 영역별 수석 큐레이터가 그런 조정을 1차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이다. 수석 큐레이터의 연령은 낮게는 40대에서 높게는 70대 이상까지 실질적인 미술관의 리더이다. 즉 미술관 관장은 상시적인 수석 큐레이터와의 회의를 통해서 내부의 문제들을 수렴하고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해외 미술관 관장이 수행하는 방식으로 보았을 때, 한국 미술관 관장의 대외업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밖이 아니라 안으로 눈을 돌린다. 지자체 장을 위한 충성경쟁이나 임기연장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관련된 대외업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관장의 스케줄은 얼굴마담으로 참석하는 의전행사 따위가 주요일정으로 짜여질 뿐 모든 관심의 영역은 미술관 내부로 향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도사리고 있다. 미술관 전문성을 갖지 않은 대부분의 관장들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표방하는데, 심지어 큐레이터들의 출장이나 사소한 휴가까지 조정하려 든다. 전시기획에 관여하는 것은 한국 미술관 문화에서 있어서는 큰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의 작품을 걸기 위해 작가명단에 자신을 끼워 넣거나 전시장으로 내려와 디스플레이를 지휘하기도 한다. 이것을 몇 가지 문제로 비틀어서 간추려 보자.

 

첫째 관장은 학예실장을 싫어해!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이 실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대체로 학예실장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들의 전문성에 맞게 업무를 분장하고 독려하며, 일의 성과와 효과를 협의하는 일들이 실장에서 관장으로 넘어간다. 큐레이터가 ‘가방모찌’ 하듯 관장을 모시고 소장품 수집과 관련된 외부협의를 나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의 기획에 참여한 관장을 위해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관장과 큐레이터 사이에 존재하는 학예실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낮게 엎드리거나 혹은 맞서야 하는데, 참 곤란할 수밖에 없다. 하여 그들은 학예실장의 계약이 끝나면 바로 내 보내고 뽑지 않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미술관만의 특수한 상황이 있겠지만, 수개월에서 몇 년 동안 국공립미술관들의 학예실장이 공석이었다는 사실과 최근에 와서야 다시 실장들을 채용한 것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둘째 관장은 전시기획을 좋아해!

관장은 전시기획에 작가를 추천하거나 전시개념을 돕고 자신의 작품도 출품한다. 어쩌면 그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큐레이터와 함께 이런 일을 수행했을 때 일지도 모른다. 그 감동의 순간은 직접 작품을 설치하고 조명을 맞추고 명제표 따위를 손질할 때이다. 포스터와 리플릿 디자인을 손수 디자이너와 협의하고 글자 폰트와 색상을 지정하는 ‘결재’의 위력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은 따로 있다. 오타 수정과 교열의 치밀함을 보일 때는 말이다.

 

셋째 관장은 소장품을 사랑해!

많은 관장들은 자신의 임기동안 자신의 정체성 혹은 정치성, 경향성에 맞는 소장품을 수집하길 원하다. 그것을 임기동안의 가장 큰 업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때문이다. 하여 그들은 직접 작가와 작품을 추천하는 과단성을 보여준다. 이 과단성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최소한 작품의 미술사적 우수성과 퀄리티를 확보했을 때인데, 그조차 담보되지 않은 저돌성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미술관 수장고를 업적 채우기용 창고쯤으로 생각하는 관장이 있는 한 한국의 미술관 문화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넷째와 다섯 째, 그 다음도 있다. 디렉터 쉽의 부재는 한국 미술관의 우울한 초상이다. 실상 그들이 수행하는 모든 일들은 역설적이게도 큐레이터 쉽과 관련된 것들이다. 십수년 동안 큐레이터들은 자신들의 역할 수행을 위해 정진해 왔다. 큐레이터 쉽에 대한 큐레이터들의 전문성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그 활동도 커지고 있다. 반면 디렉터 쉽은 점점 더 위험해 지고 있다. 그들은 이제 정규직 큐레이터조차 원하지 않는다. 계약직 큐레이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미술관 문화를 크게 위축시킬 것이 뻔하다. 올바른 디렉터 쉽은 큐레이터 쉽과 구분하는 데에서 찾아져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에 CEO출신의 관장을 선임한 것은 침체된 미술관 문화에 기업문화의 참신성과 기업마인드를 통섭적 방식으로 실험해 보라는 의지의 결과가 아닐까?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맥락에서 다각적인 경쟁력을 모색하고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큐레이터 쉽에 대한 논의만큼 다양하게 한국적 디렉터 쉽에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2009.8.18)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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