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회화

- 강강훈의 리얼리즘 회화와 그 의미 

 

작가 강강훈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었던 극사실주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필자가 작가 인터뷰를 위해 준비한 매우 시니컬한 질문 중 하나였다. 그의 작품들을 시대적 사조개념인 극사실주의로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 먼저 일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시대를 건너 뛰어 형식적 차용이라는 맥락에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에서 하나의 사조는 그 사조의 출현과 종결이라는 역사성에서 존립목적을 획득한다. 만약 극사실주의가 1960년 후반의 역사성과 상관없이 여전히 개념적으로 존립하기 위해선 반세기이상 지속된 광범위한 증거들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연 그것들이 과연 극사실주의 인가에 대해 의문할 수밖에 없다. 미국적 즉물주의가 낳은 미술사조, 팝아트의 강력한 영향, 추상미술과 사진에 대한 아이러니의 표현, 주관에 대한 극도의 배제, 기계적으로 확대된 화면, 슬라이드를 직간접적으로 이용해서 작업한 C.클로스, H.캐노비츠, M.몰리와 그렇지 않은 P.펄슈타인, S.틸림 등의 작가들…. 이러한 특징들로 정의되는 극사실주의의 역사성을 부정해야만 할 테니까.


상계동 작업실에서 나눈 두 시간여의 대화에서 그는 반세기 전의 이 사조를 언급하며 시각적 유사성에 의해 극사실주의로 규정될 수 있는 한계들에 대해 일일이 언급했다. 그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해석하고 적용해서 기존의 극사실주의와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극사실주의가 본질적으로 ‘리얼리즘’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일 뿐이다. 극사실주의가 취했던 “일상적인 현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그려내는 것”에 대한 태도와 “극명한 화면을 구성하는 것”, “우리 눈앞에 항상 있는 이미지의 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리얼리즘의 기본원리와 다르지 않다. 그는 오히려 리얼리즘 원리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극사실주의의 특질을 배제하려 했던 반극사실주의자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그의 작품들은 주관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기록한 작가노트에서 “나는 극사실의 표현 과정에 있어서 완벽한 감정의 배제와는 다른 것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미 극사실주의의 정신에 위배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2007)이라고 이미 고백한 바 있다. 그가 주관을 배제하지 않는 것은 회화적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인물의 초상을 ‘시간의 역사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의 노트에서 자주 발견되는 ‘아이의 연속성으로서의 어른’은 회화적 재현을 위한 감정이입의 단초가 될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재현의 차원에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내연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것이다. 그래야만 유아기와 유년기를 거쳐 청년기 혹은 장년에 이른 한 인물의 역사성을 그려낼 수 있고, 응물상형(應物象形)의 이치를 뛰어넘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의 이러한 미학적 태도는 전통적인 한국 초상화 제작기법에서 아주 중요하게 언급되는 전신사조(傳神寫照)와 맞닿아 있다. 인물의 형상재현에 그쳐서는 안 되며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대상 속에 숨겨진 정신과 본질을 그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상실된 자아(의 흔적)들은 표정들 속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그래서 인간의 표정을 그리는 것이 좋다”


그는 대상의 숨은 정신과 본질이 ‘표정’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하여 그는 작품 제작에 앞서 모델과 사진작업을 진행한다. 모델은 렌즈 앞에서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때때로 그는 모델의 어떤 표정들 속에서 예기치 않은 장면들과 조우하는데 그럴 때면 독특한 오브제를 결합시켜 희미했던 그 장면들을 현실세계로 끌어 들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Lost icon-Black Rudolph> 연작은 상처받은 루돌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외국인 모델에게서 피 흘리는 루돌프의 장면을 보았다. 총 네 개로 완성된 이 작품에서 루돌프(모델)는 입가에 약간의 미소를 띠고 있지만 어딘가 슬퍼 보인다. 그의 눈은 확고하지 않으며 얼굴은 들떠있다. 눈 밑은 피곤이 누적된 흔적이 역력하다. 작가는 이 모델에게 사슴 뿔 장난감을 머리에 착용하게 한 채 약간의 장치들을 덧붙였다. 이마에 상흔을 남기거나 비행용 고글(goggle)을 씌웠다. 그는 이런 식의 연출로 대상의 심부에 다가서려는 것인데,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이 장치들과 표정에 의해 진한 메타포를 형성하고 있다. 그는 “루돌프는 진실의 뿔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것은 “순수하고 목적성이 없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그 순수를 인정하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 잘려지고 피를 흘린다”고 통박하면서 “잔혹하고 이기적이지만 결국 사소하게 잊히고 말 개인의 미개한 상처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고백서를 남기고 있다. 우리는 이 고백의 지점이 바로 냉혹한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둘째 추상미술과 사진에 대한 아이러니는 없다. 미국에서 극사실주의의 이전 사조로는 추상표현주의와 팝아트가 선행한다. 추상표현주의는 미니멀아트를 거쳐 신표현주의에 가 닿기도 했지만 극사실주의가 출현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즉 추상에 대한 저항이 역설적으로 극사실이라는 상대적 개념을 출현하게 했던 셈이다. 사진기의 발명이후 회화는 ‘재현’의 개념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보다 더한 재현이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사실주의자들은 사진보다 더한 재현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그런 목적지향을 충실히 수행해 내었다. 육안으로 불가능한 부분은 돋보기와 슬라이드를 이용해서라도 재현했다. 하여 극사실주의 회화나 조각은 그 지독한 사실성으로 인해 ‘잔혹한 인상’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강강훈은 추상과 사진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다. 오히려 사진작업은 사실적 재현을 위한 접사(接寫)가 아니라 다양한 표정의 순간포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적 정신에는 추상미술의 개념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초현실주의 핵심적인 제작기법인 오토마티즘(automatism)은 “보는 사람이 거기에 갖가지 기지(旣知)의 영상(映像)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제작 과정 그 자체는 순수한 추상적 충동에” 가까운데, 이러한 기법의 시도는 추상미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강강훈의 작품은 오토마티즘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성되어진다. 그는 우회적으로 “예술에 정성을 들이는 시간은 영혼이 가장 풍요로운 시간”이라고 그 즐거움을 표현한 바 있으며, 또한 “과장을 보태지 않고 정말로 나는 붓 한터치마다의 시간들을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한 예로 우리는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의 작업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강강훈은 이상봉을 작업실로 초대해 사진작업을 시작한다. 이상봉에서 발견한 ‘어떤 장면’은 머리 위에 면도용 크림이 얹혀 진 형국이다. 하여 그는 머리 한쪽에 아이스크림 짜듯이 면도용 크림을 짜 놓는다. 그런 다음 이상봉으로 하여금 표정을 짓게 한다. 작가와 모델은 그 특수한 상황을 즐기며 내연의 표정을 끌어 올린다. 그렇게 해서 - 무표정으로 정면을 무섭게 노려본다, 눈을 치켜 떠 크림을 째려본다, 거슴츠레한 눈을 하며 고민에 쌓인다, 이를 드러낸 채 웃는다,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거품을 장비수염 같은 수염에 덕지덕지 바른다, 이마까지 바른다, 고개를 젖히며 웃는다, 눈만 남긴 채 다 바르고 환하게 웃는다 등 - 여러 가지 표정을 발굴하고 채집한다. 그 중에서 작가는 ‘이를 드러낸 채 웃는 이상봉’을 채택했다. 우리는 이 채택의 여과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하필 작가는 이 표정에 매료되었을까? 그것은 이 웃음 뒤에서 다른 모든 표정들의 공통된 감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진만이 그에게 가장 훌륭한 이상봉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런 다음 그는 이 표정을 화면에 옮긴다. 인물의 사실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이상봉과 나누었던 그 순간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낱낱이 기억해 낸다.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해 둔 이상봉의 향취와 품격조차 되살리기 위해 정신의 붓질을 놓지 않는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그는
‘현대인 이상봉’의 진정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셋째 그가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리얼리즘이다. 2007년부터 본격화 한 극사실 기법은 여러모로 그에게 화두였을 터이다.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극사실주의로 판명될 경우 그가 추구해 온 작품의 의미는 더 이상 확장선을 갖지 못할 위험이 뒤 따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개념에 예속된다는 것이 그 개념의 창조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을 때에는 모방자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 그가 2009년의 노트에서 자신의 작업을 리얼리즘이라 명기한 데에는 그런 배경이 한 이유였을 것이다. 리얼리즘은 19세기 후반의 사조이다. 그러나 리얼리즘은 “객관적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태도”라는 측면에서 사조 이상의 개념이고, 이는 미술사 전체를 통어하는 미학적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는 주장한다. “연출과 함께 지극히 현실의 세계 안에 갇혀있는 우리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은 제법 냉철한 리얼리즘이다. 나에게 있어 리얼리즘은 지금을 말해주는 시간적 개념이며, 현재 내가 있는 곳을 말해주는 공간에 대한 현실감각이다.”


그의 작품들은 인물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최대한의 사실성을 확보한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그가 극사실 기법을 활용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바꿔 말하면, 극사실 초상화 뒤에는 한 인물의 리얼리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루돌프에선 ‘잔인한 인간의 공격성’이 가한 ‘상처’가 리얼리티이며, <Modern Boy_golden egg>는 물질을 좇는 현대인의 초상으로서의 ‘어른 우상’이다. 황금알을 좇아가는 어른은 아이들에게 결코 우상화 될 수 없는 파괴적 자화상이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아이의 비늘(‘자아’라는 꿈)을 다 벗어야만 한다.


<Modern Boy_target>은 맹목적 경쟁에 노출된 샐러리맨의 초상이다. 20세기 중반 아더 밀러는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현대판 샐러리맨의 비극적 운명을 섬세하게 조율한 바 있다. 이 연극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었으며, 그 내부에서 죽음을 건 자기 주장으로 ‘자아의 투쟁’을 보여주었던 한 인간의 사회사이다. 특히 이 작품은 늙고 피로에 지친 주인공의 뇌리에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장면을 현실과 교차시켜 무대에 표현했는데, 이는 “현대인들은 시간이 없다.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천할 시간은 더더욱 없다”고 한 강강훈의 주장과 오버랩 된다. 그리고 현대인의 이 비극적 운명은 강강훈이 그의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상징 키워드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치호를 대상화 한 작품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다양한 오브제들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이유는 ‘김치호’가 일종의 가면을 들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이 가면은 김치호의 본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실상 우리가 그 내면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작가 혹은 우리는 다만 거기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찾고 있을 뿐이다. 강강훈의 작업들이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향해 가고 있으나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은 내면의 실체인 페르소나(persona) 때문이다. ‘김치호’의 작업에서 아예 그런 페르소나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이중전략을 펼치듯 연출해 놓은 것은 실재를 직접 가리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리얼리즘의 핵심은 리얼리티이고, 그것을 묘파하는 것은 곧장 실재로 가는 길 뿐이다. 우회하거나 지나치게 은유화 하게 되면 초현실이 되거나 비현실이 된다.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잡아챈 것이 이 장면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가 다음 작업으로 향하는 실마리라고 생각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에 우리 현대미술사에도 극사실주의가 등장했었다. 그때의 작가들이 현재까지도 극사실 기법을 버리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리얼리티가 중요한 맥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극사실은 뚜렷하게 초현실적이다. 젊은 강강훈의 극사실 회화가 미술사적인 의미를 획득하는 지점은 어쩌면 선배세대와 다른 이런 변별점일지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페르소나의 리얼리티를 구현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큰 힘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성인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연령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우리는 어쩌면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어느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회의 분위기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모습을 보라. 비록 다의성의 여지가 있겠으나 나는 상징을 통해 동일한 상황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2009.8.17. 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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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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