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과 이론적 계파성

 

1980년대 한국의 리얼리즘 미술은 19세 중반의 리얼리즘(realisim)와는 다른 개념이다. 20세기 초반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리얼리즘(Realism)을 뜻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당시는 ‘리얼리즘’이라는 용어보다는 역어의 개념으로서 '사실주의'라 표현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현실동인 제1선언>에 명기된 현실주의 개념에 기대어 ‘현실주의’라 부르기도 했다. 최열은 “남한 사회 미술계에 있어 1980년대 10년간의 사실주의(현실주의, 리얼리즘) 미술에 관한 인식과 그 이해수준의 발전과정은 매우 의미 있는 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두 용어의 차별성을 굳이 구분하지 않고 있다. 라원식의 경우는 "민족․민중미술 작가들도 구미와 제3세계(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리얼리즘 미술을 한국의 전통시대 민족적 리얼리즘 미술을 토대로 하여 비판적으로 수용 검토하고 있으며, 정확하게 그리고 생생하게 소통할 수 있는 미술형식을 창작과 실천을 통하여 검증 개발"하고 있다며 '리얼리즘'으로 명기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주요 미술동인 소집단의 출현과 그들의 창립목적을 통해 미술운동의 향방을 추적해 보고, 선언문과 활동에 따른 이론적 경향성과 계파성을 분류해 보고자 한다. 광자협에서 활동했던 최열과 두렁에서 활동한 라원식의 경우처럼 각 소집단에 소속된 몇 몇 평론가들의 당시 글들은 경향성과 계파성을 구분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Ⅱ-1. 소집단의 출현과 미술운동

 

한국 현대미술에서 리얼리즘 미술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1979년 창립된 현발과 광자협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두 단체는 모두 1969년의 <현실동인 제1선언>을 미학적 뿌리로 두고 있다. <현실동인>의 작품 발표가 학교와 정부에 의해 차단당한 뒤 선언문만 남았음에도 이들이 선언문을 통해 제기한 “서구의 비판적 사실주의(Realism)와 민족전통 미술의 통일이라는 매우 탁월한 창작방법론”은 1980년대 미술운동에 있어 주요한 쟁점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역사적 의미로서 일종의 ‘이론적 교두보’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지하가 쓰고 김윤수가 교열한 <현실동인 제1선언>은 1980년대에 전개된 리얼리즘 미술운동의 미학적 계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선언문이 1969년 10월에 발표된 이후, 아니 <현실동인>이 결성된 후 정확히 10년이 지나서야 현발과 광자협이 출현하게 되는데, 그 10년의 공백기 동안 미술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우선 현발과 광자협의 출현이 어느 날 문득 발생한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 두어야 할 듯하다.


<현실동인>에 참여했던 김윤수는 1970년대에 <현실동인 제1선언>을 확장하는 비평적 글쓰기를 지속했다. 그는 1972년에 발표한 「폭력과 예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저 일시적으로 상상의 세계, 추상적인 가교의 미적 질서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의미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삶을 위협하고 현실의 구체성을 가리고 있는 장막으로부터 ‘진실’을 체감하고 확인케 함으로써 인간과 현실의 풍부함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예술은 언제나 구체적인 생의 진실과 자유 그리고 휴머니즘에서 규정되어져야 하며 이를 위협하는 갖가지 요소는 예술에 대한 폭력에 다름없다.”
그는 또한 1971년에 「예술과 소외」, 1974년에 「20세기 예술의 사회적 배경」를 발표했고, 일제하와 전후 미술의 본질과 그 성격을 폭로하는 『한국현대회화사』를 1975년에 출간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근대미술이 사회현실과의 관련을 부정하면서 시작했기에 올바른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사실과 그 주역들의 계급적 출신을 밝혀 놓음으로써 한국미술의 사회경제적 토대를 드러내 보여 주었는가 하면, 관변주의 미술과 현대주의 미술의 반사회성과 반민중성을 줄기차게 해명해 냄으로써 그 미학적 본질과 성격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다.


김윤수와 함께 미술의 사회에 대한 이론적 탐색을 추구했던 또 한 사람이 평론가 원동석이다. 최열은 당시 이 두 사람의 비평적 활동에 대해 “남한 사회의 사실주의 미술과 민족미술의 소생을 향한 이론투쟁의 과정”이라고 의미부여 했다. 원동석은 1977년에 「한국 추상미술의 외세주의」(대화, 1977)를 발표했는데, 이 글에서 그는 사회 발전의 동력으로써 비판적 자기성찰과 민중현실의 결합이라는 차원에서 사실주의를 상정하고, 그 당위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국전 중심의 보수적 아카데미즘과 전후 새 세대의 전위적 모더니즘이 갖는 반역사적, 반사회적 본질을 꼬집고 있다. 김윤수가 ‘현실동인 선언’의 한 축인 ‘비판적 리얼리즘’에 관점을 두었다면, 원동석은 또 다른 한 축인 ‘민족전통 미술’ 즉 민족주의적 관점을 보여준다. 원동석의 관점은 1975년에 발표한 「민족주의와 예술의 이념」(원광문화, 1975)에서 이미 잘 드러나 있었다. 그는 이 글에서 미술의 민중적 성격과 민족적 성격을 결합하는 민족미술론을 주창하는데, “민족의 실체는 민중이며 문화의 주체자도 역시 민중이다. 살아있는 민족문화의 발현은 주체자가 스스로 민중이 되는 창조적 활동에 의해서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밝히면서 민중예술이란 “민중 속에서 진실을 찾고 이를 확인하려는 예술”이며 “민중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민중의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의식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재발되는”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1976년에 발표한 「근대미술에 있어서 의식의 길들」에서는 18세기 봉건시대 미술의 성격과 그 귀족적 전통의 붕괴를 묘사한 다음, 민족미술의 주체성에 관한 문제와 그 민주적 성격의 획득을 주요한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의 이론적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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