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NL노선의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이 ‘식민지 반자본주의론’(식반자론)으로 발전했고, NL진영이 ‘식반자론-반제반봉건(반파쇼) NLPDR-주체사상’의 사상이론체계를 갖추게 되었다는 점, 둘째, CA에 의해 전개되었던 ‘신식국독자론’의 성과를 계승하고 내용적 모순을 비판하면서 ‘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를 기본으로 ‘신식국독자론-반제반독점 NLPDR-ML주의’의 이론체계를 갖춘 PD진영이 나타났다는 사실, 셋째, NDR과 신식국독자를 주장하던 CA노선이 내부로부터 자기 분해되면서 NL노선과 PD진영으로 흡수되고 일부 소수파는 NDR론을 고수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1988년의 사구체논쟁은 결과적으로
NL의 식반자론과 PD의 신식국독자론의 대립이었다. 1989년에도 이 대립구도는 그대로 이어졌는데, 월간 『노동해방문학』이 창간되면서 NDR복권론이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변혁을 둘러싼 제입장은 NL-PD-ND의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또한 1989년 하반기에는 학계에서 ‘중진자본주의론’이 제기되면서 사회성격논쟁은 '식반자론-신식국독자론-중진자본주의'간의 논쟁으로 전화되었다. 1988년, 89년에 이러한 사구체논쟁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성격, 통일방안, 경로 등을 둘러싼 논쟁 등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는데, 학생운동은 이러한 전쟁을 거치면서 더욱 정교하고 체계화된 이론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구체논쟁을 요약 정리해 보면, 1980년대의 사구체논쟁과 변혁론은, 1980~83년의 준비기, 1984~85년의 1단계 논쟁(CNP논쟁), 1986~87년의 2단계 논쟁(NL-CA논쟁), 1988~90년의 3단계 논쟁(NL-PD논쟁)으로 변화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981년 전국총학생회연합(전학련)이 해체된 후 다시 조직을 건설하지 못하고 투쟁위원회(투위)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가 1985년 고려대에서 삼민투쟁위원회(삼민투)
투쟁대회가 열리면서 활동이 재가동되기 시작했고, 이 당시 일본 서적을 번역한 마르크스, 레닌 원전들이 유인물 형식으로 유포되기 시작했으며, 원전의 대중화로 인해 사상 투쟁이 확산된 것이 사구체 논쟁이 일어나는 다른 한축이기도 했다. 이후 사구체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해 삼민투가 분열되고 민족민주투쟁위원회(민민투), 자주민족투쟁위원회(자민투)라는 두 개의 조직으로 재편성되었다. 제헌회의를 주장하며 “헌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표방했던 민민투는 CA로, 민족해방을 주장했던 자민투는 NL로 명칭을 바꾸면서 조직을 재정비해 나갔다. NL이 주류가 되었고 CA는 소수로 전락했다.


NL은 기본 사상을 IT(Identity Theory), 즉 주체사상 및 반제반봉건주의로 정리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 CA는 제헌회의론을 폐기하면서 ‘민족민주주의’를 제창하는 ND로 재정리했다. 주체사상을 반대하는 NL좌파, 그리고 CA일부가 모여 ‘민중민주주의’ 계열의 PD를 조직했다. NL은 1987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 전신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ND는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구성했다. 그리고 사구체논쟁은 PD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기존 운동권이 한국의 상태를 ‘반(半)봉건’국가라고 설명했지만, PD는 ‘신식국독자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신식국독자론’이란 일국의 자본이 그 나라를 완전히 점유한 후 다른 나라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식민지화하여) 이윤을 더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이론은 우리나라가 식민지 상태이면서 다른 나라를 다시 식민지로 삼을 수 있냐는 문제 제기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았다. PD는 이러한 비판에,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임에도 동아시아에 경제적 식민지를 건설하고 있는 한국의 실제적인 현상을 증거로 주장을 강화했다. 한편 ‘한국-봉건주의’를 외치는 NL의 의견은 지극히 북한의 이론에 편향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북한은 우리나라를 봉건제 국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북한의 평가를 그대로 남한 운동권에 전파하기에는 현실적인 문제(이미 재벌 구조가 현실화되었다든지 등등)가 있었으므로 당시 IT(NL)에서는 반(半)봉건국가(절반만 봉건제를 유지하고 있는)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입장은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비판의 여지를 만들어냈다. 후에 수구
보수 세력은 이러한 명목으로 NL성향의 한총련을 이적단체, 즉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는 단체로 규정한 바 있다.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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