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ries in Progress

2010.10.28 13:54 from 분류없음

Memories in Progress

9.2-10.10

마이클슐츠갤러리

 

 

동학에서 식민, 해방, 미군정, 4.3, 전쟁, 5.16, 4.19, 독재, 산업화, 5.18, 대투쟁, 사회변혁, 문민, IMF, 국민, 참여, 그리고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사회정치적 키워드는 우리 현실이 얼마나 격변했는지 일깨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상실한 것 중의 하나는 억압, 통제, 감시를 견디지 못한 ‘기억’이다. 크고 작은 사회정치적 사건의 쌍방향 주체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강제적으로’ 기억상실을 요구받았고, 그런 문제의식은 사회전체 기류를 형성했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예술조차도 그런 폭력적 사회를 증언하지 못해 오랫동안 불임의 시대를 가져야 했단 사실이다.


봇물이 터진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다. 1978년 현기영이 4.3항쟁의 북촌리 학살사건을 「순이 삼촌」으로 승화시켰고, 1980년 홍성담은 5.18민주항쟁을 ‘오월 판화’로 길어 올렸다. 1980년대는 시대, 역사, 현실을 주제로 한 수많은 예술작품이 탄생했고, 그 만큼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다시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예술가들은 사회정치적 이슈를 기획하지 않는다. 탄압의 시대, 억압과 통제의 시대로부터 민주 자율성의 시대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작가들은 개인의 정치성에 대해 말할 뿐 그것을 사회화 하지 않는다. 이제 예술에 있어 ‘정치적인 것’의 요구는 예술적 패션이거나 대중 상품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았나 싶다.


가라타니 고진은 1970년대까지의 30년 일본문학을 해체 분석한 후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포했었다. 문학이 사회정치적 이슈를 완전히 상실하고 대중 통속문학으로 전락한 것에 대한 마침표였다. 그러나 그가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문학을 발견하고는 놀라워했다. 당시 우리문학은, 아니 예술은 그런 주제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우울하게도 우린 고진이 선언했던 근대문학 혹은 근대예술의 종언을 받아 들여야 할 만큼 통속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무수한 개발, 재개발지에서 벌어지는 폭력적인 ‘기억 지우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견뎌온 근대화의 사건들을 깡그리 ‘기억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기억 투쟁’은 학술적 언사일 뿐 현실에서 거의 실천되고 있지 않다!


마이클 슐츠 갤러리에서 한 달 여 동안 진행된 핀란드와 레바논의 두 작가 전시 <Memories in Progress>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한국전쟁 60년, 4.19혁명 50년, 5.18광주항쟁 30년의 역사를 혼란스럽게 떠올리며 살펴 본 그들의 작품은, 예술이 ‘사건의 증언’ 이후 사회심리적 기억투쟁을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예컨대, 현기영과 홍성담 이후의 2세대, 3세대 작가들이 1세대의 ‘증언예술’에서 더 나아가 현대사의 사건들을 어떻게 환유해야 하는지의 지평을 예시하고 있단 얘기다. 그것은 1911년에 태어나 세계전쟁의 잔혹한 공포를 체험한 뒤 인간을 근원적인 악으로 제시한 윌리엄 골딩(William Gerald Golding)의 예술세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상륙한 소년들의 원시적 삶에서 인간사회의 이기적 집단성과 폭력성을 전체주의적 ‘계급사회’ 형성과 그 사회의 존속을 위한 ‘배제’의 숙청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야르모 마에킬라에


흥미롭게도 핀란드의 작가 야르모 마에킬라에(Jarmo Maekilae. 1952- )의 회화 작품은 골딩의 그런 남성주의 사회체제의 근원적 악을 소년들의 기이한 퍼포먼스를 통해 재현하고 있다. 소년들은 마치 골딩의 소설 속 아이들이 그들만의 계급사회를 구조화하면서 그 구조를 부정하는 아이를 배제했듯이, 회화 속 소년들 또한 일군의 무리를 형성하며 무언가를 사냥하고 부순다. 오래된 숲의 녹음과 평온한 빛이 번지는 아름다운 숲에서 그들의 섬뜩한 ‘놀이-퍼포먼스’는 충격적인데, 무인도의 그것처럼 인간의 파괴적 문명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자연의 농밀한 영혼 속에서 펼쳐지는 소년들의 광기와 살해, 음모, 배제의 풍경은 그래서 숲을 삽시간에 불온한 안개 끝으로 몰고 간다.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이 우리의 아버지들이었고 그래서 바로 우리일 수도 있다는 반전스토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모하메드 사이드 발바키(Mohamad-Said Baalbaki. 1974- )는 그의 조국 레바논을 둘러싼 내전과 외전, 그리고 그로인한 난민과 유랑의 삶을 회화로 직조했다. 레바논은 그가 1살 무렵인 1975년부터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에 휩싸인다.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및 이슬람 게릴라와 이스라엘간의 무장투쟁은 레바논을 거의 황폐화 시키고 말았다. 그 자신 또한 전쟁으로 인해 난민이 되었으며, 유랑을 체험했다. 그는 유대인 빈민가에서 인종과 종교적 삶까지 점령당했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난민과 유랑의 상징으로서의 ‘더미들’로 형상화 되었다. 또한 오직 ‘외침’의 소리, 발언의 목청만을 가져야 했던 상황을 통해 그의 시대를 고백하고 증언하며, 폭로하고 있다.


Posted by 인씨투 액트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