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라, 그래야 공존할지니

; 행궁동 사람들-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생물학에서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은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쟁을 초래했고, 그 결과 다윈식 적자생존 대신에 공감이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가장 고차원적 욕구로 지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네트워크화 된 분산 자본주의 시대의 경제활동은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戰意)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다. 제로섬 게임은 끝나고 윈윈 시나리오가 대세를 이룬다.”


- 제레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중에서

 

 

경쟁사회에서 공감사회로


최근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가 언론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정식 출간이 10월 10일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여론이 움직인 것이다. 그 힘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기존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경쟁사회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리프킨은 사회진화론의 핵심적인 키워드였던 ‘적자생존’이 21세기와는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하며, 심지어 폐기하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의 사회구조는 2백년 가까이 변함없는 키워드였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며, 그것은 사람들 간의 ‘공감(共感. empathy)’에서 출발한다는 것.


그는 생물학자들이 최근 인간들의 공감의식을 가능케 하는 ‘공감뉴런’(empathy neuron. 거울신경세포)의 발견에 주목했다. 거울신경세포를 통해 인간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을 개념적 추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시뮬레이션을 통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이해한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윤창현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남의 아픔에 대해 ‘참 안됐다’하며 동정(sympathy)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 감정이입 수준까지 가면서 ‘같이 아픔을 느끼는’ 수준의 경지다. 다시 말해, 공감은 다른 사람이 겪는 고통의 정서적 상태로 들어가 이를 자신의 고통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며, 수동적인 입장의 동정과 달리 적극적인 참여로 나타난다. 리프킨은 인간이 그런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공감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1차적 특성이라 생각한다. 정리하면, 인간은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라는 얘기. 이런 그의 주장은 다윈주의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다윈주의가 인간의 충동을 자신의 개인적 생존과 번식을 보장하기 위한 생물학적 필요의 구현에서만 찾는 한계를 비판했다. 그런 다음 그는 그것을 토대로 21세기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예지했는데, 즉 ‘적자생존’과 ‘경쟁’, ‘부의 집중’을 부른 낡은 경제 패러다임 대신 이제 세계는 ‘협력과 네트워크, 오픈 소스, 경제적 이타주의’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제, 곧 ‘분산 자본주의’라는 제3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리프킨의 ‘공감’은 현 단계 한국의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공공미술, 대중을 위한 미술


공공미술이란 개념은 근대적 미학개념으로 볼 때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근대, 미술에 있어서 ‘공공성’의 개념은 소유(컬렉션)와 향유(전시)의 차원으로 구분한 뒤, 향유의 개념에서 공공성을 추출해 낼 수도 있겠지만, 미술작품을 다수의 공공이 소유하며 향유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근대 미술관의 출현과 더불어 미술관의 공공성에 대한 담론이 확장되긴 했으나 그것은 공공미술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또한, 근대이전까지 종교미술에서 공공적 개념의 미술활동을 살펴볼 수는 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미술은 종교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며 자율성을 획득했다. 미술의 종교적 공익활동(천정벽화, 성당 외벽 장식조각, 유리그림 등)을 20세기 공공미술의 개념에서 이해하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아니라 그 자체로 종교미술이기 때문이다.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이 강조되고 실현될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초반에 완성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이론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1934년의 소비에트작가동맹 제1회 대회에서 통일적 창작방법으로 확립된 문학예술의 방법으로서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강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회주의리얼리즘은 현실을 그 혁명적 발전에 있어서 올바르게 역사적 구체성을 가지고 묘사할 것을 예술가에게 요구한다. 그때 예술적 묘사의 진실성과 역사적 구체성은 노동자를 사회주의정신에 있어서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와 결부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예술의 자율성이 아니라 예술의 사회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술은 ‘역사적 구체성’이라는 사실주의 묘사방법론(진실성과 구체성으로서)을 취해야 하며, 그것은 노동자를 ‘사상적으로 개조하고 교육시키는 과제’를 가져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 입각한 미술활동은 소련, 구 동독, 중국, 쿠바, 북한 등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프로파간다(宣傳, propaganda)로서의 공공성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프로파간다의 개념은 16세기 그레고리우스 13세 통치하의 로마에서 ‘신앙의 보급’(데 프로파간다 피데)을 위한 교단이 설립되었는데, 이때의 라틴어 ‘프로파간다’를 말 그대로 ‘선전’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상의 포교(布敎)라는 ‘선전활동’이 현재 프로파간다의 어원이며,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단 얘기. 그리하여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공공적 공간에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한 벽화, 조각, 텍스트 등을 그리고 만들고 새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위한 미술이었지 결코 인민 대중을 위한 미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의 공공성 또한 현재의 공공미술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공공미술(Public Art)은 장소, 기능, 내용적인 측면에서 공공의 대중을 위해 제작되고 소유되는 미술품이다.
한마디로 그 작품이 어디에 있고, 어떤 작용을 하며, 무슨 내용을 가졌던 간에 ‘대중을 위한 미술’이라면 공공미술에 해당한다. ‘대중을 위한’이라는 대전제 안에서 그 미술은 자율성과 상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1967년 『도시 속의 미술 Art in a City』에서 공공미술의 개념을 처음 사용했던 존 윌렛은 미술계 소수 전문가들의 예술적 향유가 일반 대중의 미감을 대변하는 것처럼 만들어 소수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일반인들의 정서에 개입하는 미술개념으로서 공공미술을 생각해 낸 것이다.


이후 공공미술은 ‘장소에 결합하는 예술’, ‘스트리트퍼니처’, ‘환경조형물’ 등과 같이 일종의 오브제 설치미술로 이해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그 개념이 사회적 비판성을 내포한 미디어아트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예컨대, 제니 홀저(Jenny Holtzer)의 전자게시판 문자 작업과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광고판 작업, 건축물에 문명 비판의 영상을 만든 크리지스토프 우디츠코(Krzysztof Wodiczko)의 프로젝션 작업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공공미술 개념은 공공미술이 실현되는 장소를 단지 물리적 장소로만 보지 않고 사회적․문화적․정치적 소통의 공간으로 간주하며, 그런 의미에 맞는 작품으로 지역공동체와 관람객의 참여, 일시적 작업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공성에서 공감의 미술로


기업의 사회 환원프로그램으로서 공공미술이 사용되고(포스코는 포항시 공공미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 외 여러 유형이 있다.), 정부의 소외계층 환경개선 사업으로 공공미술이 활용되며(문화부는 공공미술추진위를 발족시켜 지원 사업을 펼쳤다.), 심지어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공미술을 투입하고 있다(문화부의 문전성시프로젝트사업이 그것이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안양시라는 지방정부가 공공성 확장과 문화도시를 위해 전략적으로 기획한 것인데, 이와 유사한 공공미술 지원 사업은 이미 전국적이다. 21세기 초입에서 한국 미술지형의 화두는 당연히 공공미술이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공공미술이 대중을 위한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다.


나는 최근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수잔 레이시의 사회적 미술로서의 ‘새 장르 공공미술’에 주목하고자 한다. 수잔 레이시의 ‘새 장르 공공미술’의 개념은 1960년대의 대항 문화적이고 행동주의적인 공공미술의 성격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의 공공미술은 미술가와 관객 사이의 열린 소통과 상호 작용을 적극적으로 지향한다. 그는 공동체 예술을 꿈꿨다. ‘새 장르 공공미술’에 참여했던 작가들은 지역 주민들과의 협업을 중시했고, 사회적인 현안들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이미 우리시대에도 당면한 문제들인 노숙자, 실업, 에이즈, 증가하는 노년인구, 이민자, 성/인종 차별, 도시민들의 소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1990년대부터는 예술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심미적인 관심과 시대에 정합하는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작업 속에 융합시키면서 예술, 사업, 산업, 미디어, 노동, 사회사업 간 긴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해가고 있다.


한국의 공공미술이 보다 현실에 뿌리 깊게 안착하기 위해서는 ‘새 장르 공공미술’이 취했던 공동체 예술로서의 ‘커뮤니티 아트’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이 공공미술에서 다뤘던 현안들에서도 주목해야만 한다. 한국에서도 그들이 주목했던 키워드와 유사한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동주의 공공미술로서의 공동체 예술론에 덧붙여 ‘공감의 미술’이 되기를 생각해 본다. 사회적 이슈나 현안들을 공공미술의 의제로 설정한 뒤 공동체 예술로 저항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행동주의 공공미술이 예술가와 지역주민, 공무원, 정치인 모두가 공감하는 미술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공공미술은 결코 공공성을 획득할 수 없다.


21세기 벽두의 활기찬 공공미술 활동이 은연 중 어떤 장벽에 부딪힌 것은 공감의 연대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기업이든 정부든, 예술가 주체든 지금까지의 공공미술은 기금 대비 기대효과를 충족하는 일종의 ‘사업’으로서의 공공미술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뉴타운 재개발 구역의 철거지에서 혹은 탄광촌에서, 쪽방촌에서 그리고 쇠락한 포구에서 펼쳐진 공공미술은 예술의 시각적 장치를 극대화할 뿐 그 곳 주민들의 상실감을 ‘공감의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과 더불어 상실의 정서를 나누면서 공감의 연대로 나아가기 위해 예술가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공공미술은 공감의 미술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 미술의 사회적 공공성으로 등장한 벽화나 조형물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환경조형물과 무엇이 다른가. 기념비적 공간과 장소에 세워진 수많은 조각들, 공공적 장소라 불린 광장에 위압적으로 서 있는 환경조형물들, 공항과 지하철, 학교와 거리에 그려진 벽화들은 정치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다. 그것들은 교도적이며 훈육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프로파간다에 다름 아니다. 나는 한국의 많은 공공미술프로젝트조차도 예술가들의 독단과 과잉 미의식, 허위에 가까운 공동체성으로 빚어진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눈곱만큼의 공감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감의 미술을 표방하라!


‘행궁동 사람들’은 공감의 예술을 표방했다.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프로젝트”. 이 프로젝트의 내용이 공감의 개념을 얼마큼 실천해 냈는가는 일단 차후의 문제로 놓더라도 기획의도가 그것을 향해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이들의 활동에 주목했다.

행궁동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철거 예정지였다. 화성이 유네스코에 등재되면서 수원시는 화성의 내부 도심지역을 옛 화성의 모습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행궁복원과 더불어 그 주변 일대는 우선 대상지가 되었다. 그 계획은 행궁복원과 함께 일정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행궁동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을 알고 있었고, 시가 건물이나 땅을 매입하고 나면 곧 떠날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프로젝트가 진행된 ‘대안공간 눈’주변의 행궁동 골목은 얼마동안 스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내력은 다음과 같이 기획취지에 반영되어 있다.

 

“수원시 행궁동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안의 행정구역으로, 문화재 보호와 화성 성곽 복원에만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인해 행궁동의 주거형태는 매우 낙후 되었으며 확정되지 않은 보상에 대한 기대와 실망 속에 삶의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프로젝트는 세 개로 구성되었는데 첫째, 기획전시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 둘째,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 셋째,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다.

<2010년을 사는 화성 담장 사람들>은 행궁동 사람들의 “삶을 마을 곳곳에 작품으로 표현해 유물로서의 화성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서의 화성을 탐색”하기 위해 기획되었으나 대부분 벽화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그중에서 브라질의 젊은 여성작가 라껠 심브리의 작품에 감동했다. 그는 자신이 그려야 할 주제와 장소에 대해 고민했고 그것은 실제화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벽화는 놀라운 상상력만큼이나 퀄리티가 높았다. 수원(水原)이 물의 도시임을 착안, 금보여인숙 출입구 양옆의 긴 담에 한 마리의 물고기를 그렸고, 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드는 오래된 담에는 작은 물고기들과 큰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거대한 은빛 물고기와 흰 새는 1970년대 풍의 세월이 가라앉은 고즈넉한 이 동네의 명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작품을 제작하기 전, 여인숙 주인과 만나기 위한 그의 긴 기다림은 공감의 에피소드이기도 할 것이다.


그 외 기획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강제욱, 김성래, 오상미, 최혜정&김보라, 한애숙, 틸만 크릭(독일)의 작품들도 인상 깊었다. 대체로 골목의 벽화 프로젝트보다 나는 이 기획전시가 공감의 미술을 잘 구현해 냈다고 판단했는데, 그 이유는 영상작업을 제출한 오상미의 경우 첫 공공미술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에 대한 소소한 장면들, 사람들에 주목하여 지역성의 향취를 잘 길어 올렸고, 최혜정&김보라는 경로당 할머니들과 함께 ‘늙음’의 상실감을 삶의 원숙기에 핀 진향의 꽃으로 치환함으로써 모두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틸만 크릭이 인터뷰한 행궁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정 사건이나 이슈가 아님에도 ‘마을 뉴스’로 인식되었다. 사실 주요 언론이 다루는 이슈는 살인과 폭력, 사기, 어떤 화제들에 집중된다. 일상의 대중적 삶과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틸만 크릭의 소소한 인터뷰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행궁동이 주목한 이슈일 수 있고, 그들의 뉴스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마을 뉴스라는 새로운 지역 언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마을 뉴스와 같은 최소 단위의 지역적 실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애숙이 그린 연필 초상화 또한 공감의 언어였다. 그의 인물화는 전신사조의 진실성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그들을 그리기 위해 자주 만났고 이야기를 들었으며, 그 삶을 보았다. 담백하게 그린 인물들의 표정 안에서 나는 그들이 살아온 삶의 결을 찾아볼 수 있었다. 한애숙은 작업과정을 고백하며 자주 눈물을 내 비쳤는데, 그들의 삶이 그의 삶에 어떤 공감의 파장을 던졌기 때문일 것이다.


행궁동 주민들의 생활예술 프로젝트 “동네방네 골목 전시장”은 작가와 미술대학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프로젝트 팀을 꾸려 1인의 아트디렉터 지휘아래 공공미술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행궁동 주민들과의 공동 작업으로 동네 입구, 골목, 담장, 옥상, 대문 등에 작업을 설치했다. 이정표, 문패, 우체통 같은 것들이 만들어 졌고, 작은 꽃밭과 벽화도 있었다.

행궁동 사람들의 솜씨전 및 마침보람 잔치는 작은 전시와 그야말로 개막당일 잔치로 실현되었다. 참여 작가들과 행궁동 주민들, 경로당 어르신들, 그리고 공무원, 관객들이 어울린 이날의 느낌은 이들이 얼마나 공감의 언어를 중시하는 가를 잘 보여주었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서 ‘행궁동 사람들’이 공감의 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선 공공미술이 ‘공감’을 주요한 화두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궁동 사람들’에서 나는 그것의 작은 동기와 실천들을 확인했을 뿐이다. 프로젝트평가회에서 작가들과 기획자 모두 그들이 수행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과정으로서의 미술일 수밖에 없는 공공미술의 특성상 결과론에 집착하고 평가하는 한국의 현실이 도마에 올랐고, 특히 ‘과정’을 과정에서 풀지 못한 한계를 많이 지적했다.

‘행궁동 사람들’은 끝났고 작품들은 현장에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행궁동 사람들’과 같은 공공미술이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공공미술을 기획하는 기획자의 생각에 따라 공공미술은 천차만별, 천태만상이다. 공공미술이 ‘공공의 적’으로 변질되지 않고 새로운 미학을 끊임없이 창출하기 위해선 근원적으로 그것이 ‘공감의 미술’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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