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식전 리뷰

2010.09.28 16:31 from 분류없음



자연예술가와 화가 : 임동식 개인전_ 월간미술 2010 10월호 리뷰

9.3~11.3 스페이스 공명

 

현대 자연미술의 미학은 한국 자연미술가 그룹인 ‘야투YATOO’에 의해 제창되고 수행되었는데, ‘야투’의 의미는 ‘들(野)=자연’에서 메시지를 ‘던진다(投)=표현’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들’은 기존 미술 영역의 외부 즉 미개척의 광야를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순수자연을 뜻하기도 한다. 임동식이 작성한 1981년 야투 창립전 서문에는 일종의 창작을 위한 행동강령을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과의 신선한 접촉을 통하라. 둘째,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모든 생명력을 예찬하라. 셋째, 사계절연구회를 가져라. 넷째, 작품집을 발간하여 의식의 영역을 넓혀라. 다섯째, 새로운 방법론을 개진하라. 여섯째, 들에 핀 야생초와 같은 생명력을 지녀라. 일곱 번째, 연구하여 좋은 작품을 발표하라.




1980년 이후 30년 동안 지속해 온 임동식의 자연미술은 그 스스로 제정한 강령을 인간의 방식으로 진화시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자연에 더 근접함으로써 ‘자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독일에서 귀국한 뒤, 1990년대에는 원골이란 마을에 띳집(草廬)을 짓고 홀로 살면서 ‘신선한 접촉’을 일상화 했고, 2000년대에는 그 접촉의 기억을 재현하는 회화와 풍경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재현이 삶의 성찰이라면 풍경화는 자연의 재현이면서 시간의 성찰이라 할 만하다. 그의 풍경화는 대상이 되는 장소에서 오랜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어떤 이는 그의 작품을 인상파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빛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거나 빛이 만들어내는 풍경의 인상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연의 전체를 본다. 큰 나무가 대상이라면 나무의 풍경을 이루는 빛과 바람, 흙, 잎과 가지, 향취 그리고 그것들의 결까지 풍경의 낱낱을 새겨 넣는다.




수개월에서 수 년 동안 한 작품 한 작품씩 시간의 결이 쌓이고 채워진다. 그것은 마치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봄의 푸릇함이 솟고 여름의 작열이 더해지며 가을과 겨울의 성숙과 쉼이 구분된다. 그의 붓이 농기구라면 물감은 씨알이고 그의 행위는 노동이다. 실제로 그의 풍경화는 대부분 농부인 벗이 추천한 풍경들이며, 그 농부의 차를 타고 들에 나갔다가 함께 돌아온다. 그들은 다르나 같은 농삿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원골에 살면서 “藝卽農 農卽藝”의 미학을 선언하기도 했다. 예술과 농사가 다르지 않다는 것.




선행 미술에 대한 극복을 통해 미술이 진화해 왔다면, 자연미술은 극복이 아니라 소급일 수 있다. 더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원초적으로 소급해야만 자연미술은 가장 투명한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석도(石濤)는 자신의 화론 들머리에서 태고엔 법이 없었는데 그것은 흩어지지 않은 통나무 같다고 했다. 그런데 통나무가 흩어지자 법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 흩어짐이 한 번 그음이라는 일획이다. 즉 나무가 흩어지자 일획이라는 법이 생겨난 것이다. 가장 숭고한 일획은 그 자리에 죽어 흙이 되고 자양이 되어 새 싹으로 부활하는 것일 테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의 완전한 흩어짐. 임동식의 자연미술은 석도의 일획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일획은 숭고하며 근원을 향해 있고 완전한 흩어짐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흩어짐은 그 자신이며 견고한 미학이고 우리의 관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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